# 사랑의 매가 사라진 자리
교사는 교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침이 유지되는 장소는 국한되지 않고 학교 외 학교 바깥 세상까지 확장 심화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학생이 학교 밖에서 탈선행위를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 교사가 조를 편성하여 교외 생활지도나, 교외순찰을 하기도 했다.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면 가정방문을 하고, 몸이 아파 학교에 나오지 못하면 학생과 함께 병문안을 가고, 집안에 흉사나 우환이 생기면 찾아가 함께 슬퍼하기도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육계에서 이런 풍토가 사라지고 학교 폭력과 체벌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경기도에서 제일 먼저 체벌금지 등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것을 시작으로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자 일선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마찰이 급증하고 있다. 학생지도를 위해 체벌을 한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학생은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소연까지 할 정도이다.
“체벌금지로 학생들은 해방감을 느끼는 반면, 교사들은 권위와 통제력을 잃어 교실 붕괴 현상이 커지고 있다”며 대책 없이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감이 있다고 한다. 교사는 ‘교편을 잡는다’는 말로 자신의 직업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교편이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서의 막대기이지만 옛날 서당 훈장님 손에 들려 있던 회초리와 크게 의미가 다르지 않다. 세월이 많이 흘러 회초리는 사라지고 몽둥이와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의 매’로 제자를 올바르게 인도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서당에 맡길 때 아버지가 회초리 한 다발을 훈장에게 전달하는 초달문화(楚撻文化)가 있었다고 한다. 초달이 회초리를 의미하니 현대의 교편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서당시대에는 체벌이 관행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수단으로 인정 받았지만 훈장이 제자에게 회초리를 들 때에도 중요한 격식을 지켜 상호 존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교육방법 또한 다르다 하더라도 사랑의 매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한 교훈이라 하겠다.
현재의 교육현실을 지켜보면, 주의와 경고를 주어도 개선되지 않는 제자를 불러내 훈장은 종아리를 걷게 하고 옆으로 서게 하여, 잘못을 고지하고 몇 대의 종아리를 때릴지 예고한 뒤에 제자가 직접 헤아리게 하면서, 옆으로 선 제자의 종아리를 때리니 제자는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훈장은 제자의 표정을 보며 감정적으로 더욱 분노하게 되는 일이 없었다. 사소한 관행 같지만 상호존중이 바탕에 깔린 교육행위가 아닐 수 없다.
#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교육의 근본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과 상호존중심이 회복되지 않는 한 체벌금지에 대한 어떤 대안도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남을 가르치는 행위는 무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남에게 배움을 받는 일은 무한 감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교육의 출발점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교육에 있다고 본다. 태어나서 학교에 갈 때까지 일차 교육이 이미 가정에서 이루어진 뒤임에도 부모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학교에 일임하거나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정교육을 무시하는 학교교육, 학교교육을 무시하는 가정교육은 ‘반편이’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체벌이 사라지고 꾸짖음과 훈육이 사라진 시대, 그것은 곧 어른이 사라진 시대이기도하다. 어떤 어른도 선뜻 회초리를 들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자랄 것인가? 잘못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고, 방치하는 교육이 무슨 교육인가?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가 자라서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이나 해 보았는지? 나무라는 스승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현 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쯤 우리 교육에 대해 깊은 반성과 교육의 근본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본다.
끝으로 진정한 교육은 열과 성에서 이루어지듯 매사에 열성을 가지고 헌신적인 모습이 가장 값진 교육자의 모습이며 “교육은 혼과 혼의 대화요, 인격과 인격의 부딪힘이요, 정성과 정성의 호응이요, 정열과 정열의 만남이라고 하듯이, 남을 움직이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하고, 남을 감격시키려면 내가 먼저 감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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