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고성지역 대중교통의 광고판이 어느새 전국제일의 보육·교육도시라는 아름다운 도안 글귀로 뒤덮여 가고 있다. 2~3년 전 조선산업의 메카 고성조선산업특구로 뒤 여 지더니, 어느사이 전국제일의 교육도시라는 화려함으로 변신하였으니 지역지도자의 지역발전을 꿈꾸는 놀라운 정치적 감수성에 경탄을 금하며 존경스러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란 어느 한 지도자의 의지만으로 이끌어지는 단순한 지역개발정책 정도로 급조될 사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논어의 첫장 3절에 ‘인불지이 불온이면 불역군자호’라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라고 위안하며 인구 10만의 자립형 소도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정치적신념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바느질은 많은 민중에게 정치적 냉소주의와 패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에 무관심한 군중으로의 삶을 강요 당할 수밖에 없다. 바로 민주주의로 위장한 우민정치의 표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선거라는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통하여 우민정치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며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보고 싶다. 첫번째 조선산업특구, 조선산업의 메카는 어디로 갔는가? 고성지역의 그 아름답던 자연환경을 버리고 조선산업으로 이 지역을 한강의 기적처럼 재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던 그 의지와 열정은 어디로 다 갔나?
그 아름답던 자연환경을 지역경제발전의 주춧돌로 삼겠다던 무지개빛 청사진은 어디로 갔는가? 새벽별 보며 일자리를 찾아 거제지역을 오고갔던 이 지역 조선노동자의 꿈은 녹슬어가는 블록공장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생계유지의 불안함이 먼저 다가옴은 쓸데없는 기우일까? 할수만 있다면 동해면 지역의 아름다운 추억의 낭만이라도 그리자며 원상회복이라도 소리높여 외치고 싶음이 간절함은 소시민 근성의 발로일까? 명쾌한 답을 달라.
세계 조선경기가 불황이어서라는 이런 무책임한 답변으로 지역민중을 기만치 말라. 당시에는 지역발전을 위해 지역민과 합의하여 특구를 추진했으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정책을 입안 실행했음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그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지도자의 최소한의 양심이지 않겠나? 그래야 현장에서 망치질하며 땀흘리며 미래를 준비하는 많은 노동자의 때늦은 한탄의 울부짖음은 없지 않겠나?
두번째 당항만 지역 농업용수 담수화사업이다. 학창시절 너희 집이 어디냐?라고 물을 때면 즉 답은 당항만 맞은편이라고 서스럼없이 답했다. 이런 역사적 현장이 농업용담수화 사업이라는 경천동지할 허구적인 사업으로 물길을 막고 있다. 당항만요트학교 개원, 공룡엑스포 현장에서 불과 1㎞로 거리에서 방조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과의 격렬한 반대시위 등으로 김태호 지사 시절 재검토하겠다던 그 약속은 성난지역민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꼼수였단 말인가? 혹자는 가두워진 물을 기폭시설을 통하여 정화한다면 담수화물은 썩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기발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들도 물이 가두어지면 썩는 것은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1천억원이라는 거금의 국책사업이니 받아쓰고 다음에 시화호처럼 방조제를 무너뜨리면 되지 않느냐고, 지금 당항만은 병들었다. 중증환자상태라고 할까. 그 중증환자를 완전한 회복불능한 환자로 만들어 기폭시설 등 온갖 의료기술을 쏟아부어 의료기술의 엑스포장으로 만들겠다는 그 착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논리싸움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함께 더불어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라는 우리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의 표현물이다. 겸손히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예수와 석가와 공자를 들추어 내지 말고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갈 것인지, 죽어가는 당항만의 혈이라도 끊지 말자고 광인처럼 노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