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통일교육협의회가 주최하는 ‘대북정책 설명회 및 통일교육’에 통일교육위원의 자격으로 다녀왔다. 천안함 침몰 건 이후라, 때가 때인 만큼 안보를 철저히 하자는 내용으로 통일부를 비롯하여 유수 대학에서 저명한 패널들이 참석하여 발제와 지정토론을 하였다.
그런데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해 실망이었다. 새로운 내용이나 의견은 없었다. ‘대북정책 설명’이라고는 언론에서 보고 읽었던 내용을 되풀이 한 것에 불과했고, ‘통일교육’은 입을 맞춘 듯 모두가 북한 성토 일색이었다. 그리고 일부 발제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통일’은 없어지고 ‘안보’만 논하는 자리, 그게 지금의 통일 교육 현장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은 우리 역사에 남을 큰 사건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의 끝을 알 수 없는 아직 미완의 사건이다.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북한의 소행이 틀림 없다. 그럼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고 경계에 실패한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도발 행위를 한 북한을 규탄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확실하게 북한이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글이 쓰인 어뢰를 누가 쐈겠느냐, 북한이 했을 것이다’라는 식의 수사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다.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했다는 것은 엄밀히 다르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는 온통 의문투성이의 행위로 일관해왔고 지금도 완전히 의문이 풀린 것이 아니다. 또, 북한의 행위일 경우 당연히 지탄받아야 하지만, 그 행위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뒷짐지고 있었던 군과 사고 후에도 거짓과 오만으로 국민들을 오도했던 정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동안 숨기고 속였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것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어뢰에 파란색 매직으로 적힌 ‘1번’이 시중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퍼져 있을까? 정부 스스로 나라 전체를 불신(不信) 공화국으로 몰아간 것이다.
천안함의 ‘침몰’은 현 정부의 ‘침몰’이다. 민·군 합동조사단과 감사원의 발표를 보면 경계·정보·작전·위기대응·지휘체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고 무능한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보’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당연히 정부는 반성과 더불어 안보를 굳건히 할 수 있는 방안을 내 놓아야 한다.
‘안보’는 국가 존립을 위한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이념이 다른 두 체제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한 정부는 당연히 철통같은 국가 안보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고 적에게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이번 천안함 사건은 정부의 말대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할 경우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번 일을 반성하고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 사건을 풀어가는 방향은 생뚱맞게도 도발을 한 북한만을 몰아붙이며 반통일(反統一)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크게 유엔 안보리 회부와 경제 제제,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설치한 대북 확성기 정도다. 그런데 그 모두가 정부에서 말한 ‘강력하고 확실한 제재’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의 통일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게 아니라 두 마리 모두 놓치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북한의 정권이나 북한의 최근 행태는 많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인민들의 의식주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북한 정권을 어찌 일국의 지도자라 할 수 있으며, 북한이 호전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것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변호할 마음은 아예 없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남쪽을 휩쓸고 있는 보수 일색의 메커니즘(McCarthyism)도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좌익과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섬뜩하다.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면서 ‘통일의 정체성’도 혼란에 빠졌다. 무엇이 최고의 선(善)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일러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대북포용정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햇볕정책 이야기를 하다가는 ‘좌익’이라는 소리를 듣기가 십상이다. ‘퍼주기를 했다가 어뢰를 맞았다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먹기 십상이다. 통일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권의 교체를 떠나 통일 문제는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에서는 ‘통일’이 지상 최대의 이념이다. 통일은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하는 숙제다. 보수만의 것도 아니고 진보만의 것도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남한 국민이든 북한 인민이든, 이 나라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모두의 숙제다. 어느 쪽이든 자신만의 특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주장만 있는 통일, 혼자만의 통일을 부르짖는 것은 독재(獨裁)고 반통일적인 행위다.
그러기에 작금의 통일 교육은 방향이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의 다른 점만 들어내어 비교하고, 그들의 약점만 들추어내고, 많이 변색되었다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질성은 아예 무시한다면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남북한의 서로 다른 제도와 사실을 확인하는 통일 교육으로 국민들에게 통일의 의지가 과연 생겨날까?
이제 냉정해져야 한다. 안보만을 내세워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통일 정책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정부는 대결보다는 화해의 정신으로 통일을 지향해나가야 한다. 지금 양쪽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모습은 통일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확성기를 설치하고, 이를 폭파를 시키는 일은 갈등과 대립만 더해질 뿐 통일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안보와 통일은 손등과 손바닥처럼 공존해야 한다.
때마침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물밑접촉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포함한 남북관계 출구전략을 마련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정말 때맞추어 올바른 건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천안함 침몰 사건에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정부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건의를 받아 들여 출구 전략을 찾아야 한다. 미로를 벗어나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