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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데아’를 다시 부르다

이진만 논설위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10월 16일











▲ 이진만 논설위원


‘교육(敎育)’이란 말을 사전에 나온 어의(語義)를 그대로 빌리자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교수·학습하는

일과 그 과정으로, 교육의 양태(樣態)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에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활동이다’라고 적고 있다.



30년 가까이 교육계에 몸담아 아이들을 가르쳐 온 사람이 새삼스럽게 사전에서 ‘교육’이라는 낱말을 다시 찾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정말 ‘교육’을 받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사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투사로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오로지 지식 위주의 점수만을 외치는 교육 현장을 쳐다보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성적 지상주의 교육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더욱 심해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작년에 치러진 일제고사 이후부터 우리나라 교육계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덕체(智德體)의 전인교육을 외치는 교사는 순진한 교사다. 교원평가제도가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교단에서 쫓겨나갈 사람들이다. 인성교육이란 말도 이제 없어져 버렸다. 2009학년도 중학교 1학년부터는 예체능 과목은 성적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5개 과목만 남았다. 이 5개 과목이 일제교사의 평가 과목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5개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0교시 수업 부활과 강제 보충수업의 부당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뭐라고 하든 일제고사의 성적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를 서열화하기 때문에 결국은 5개 과목 우수 학교가 ‘명문학교’로 남게 된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일제고사 성적이 우수한 학교에 포상금을 내려 보내고 있다. 아예 교육당국이 비교육적인 행위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교육 현장에는 교육은 없고 거짓이 교육인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우리 교육은 언제까지 이렇게 파행적으로 나아갈 것인가? 언제부터 교육의 본연의 모습인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를 교수·학습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활동’으로 돌아갈 것인가?



작년 이맘 때,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력이 부진한 학생을 가려내어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해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다며 일제고사의 실시를 확정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전체 학생의 학습 효과 향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객관적 근거는 아직까지 없다. 도리어 전국의 학교 현장이 기형적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우수학생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발언 역시 잘못된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공부를 시키든 말든 우수 학생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공부를 시켜도 1등은 1명일 뿐이다. 100명을 공부시킨다고 100명 모두가 1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고사 실시는 그러지 않아도 과열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풍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버렸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것이 성취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더 중요하다는 교육 이론을 교육당국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일제고사가 가져다준 부작용은 너무 심각하다. 그 폐해(弊害)는 초등학교까지 미쳤다. 최근 많은 초등학교에서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0교시 수업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부진 학생은 공공연하게 전학을 보내거나 특수학급으로 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또 성적부진의 결과를 두려워한 일선 학교에서는 성적부진 학생들을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비교육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한 때 병든 교육을 바로잡는 특효약처럼 이야기하던 특기적성 교육도 이제 먼 나라 이야기다. 특기적성 과목은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의 모든 목표를 일제고사에 걸고 올인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현재의 학창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건강한 학교일까, 아니면 병든 학교일까? 지금의 교육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정말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일까?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그걸로 족해 이젠 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 놓을래 /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썩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교육 풍경과 어떻게 그렇게 같은지…….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이 노래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교육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니, 20년 전의 ‘교실이데아’가 다시 불려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지난 10월 13일 초등학교 6학년, 그리고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일제고사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12월에는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계획되어 있다. 거기에는 미래의 희망이라는 아이들도 없고 교육도 없다. 오로지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만이 최고의 선(善)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전국의 교육 현장이 울고 웃으며 들썩거릴 것이다. 



지금 우리 교육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일제고사는 잘못된 교육의 지표(指標)다. ‘교실이데아’는 지나간 우리의 추억이지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갈 수 있도록 ‘깨어있는 당신’에게 부탁한다. 제발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소서. 더 이상 아이들이 거짓교육의 고통을 받지 않고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소서.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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