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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과 강냉이죽

이상근 논설위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5월 23일











▲ 이상근 논설위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다. 60년대 초 그 때는 절대 빈곤시대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60명 정도 되었는데 도시락을 싸 오

학생이 20명 미만, 도시락을 싸 올 형편이 아닌 급식대상 아이들이 30명 정도였고, 그 중간에 10명 정도는 도시락을 가지고 올 처지가 못 되는 아이들이었다.


 


즉, 이 중간빈곤층의 아이들은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도시락의 형편(밥의 상태라던가 반찬의 수준정도)을 갖추기가 어려운 처지였으며 그 당시 철제로 된 도시락 용기를 살 형편이 못되어 아예 포기해 버린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염량 체면은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풍요에 젖어 약간은 어리광스러워 보였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생존본능도 강하고 배짱도 좋았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중간하게 가진 것보다 차라리 없는 것이 훨씬 편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극빈 학생들에게 급식으로 강냉이죽을 끓여 주었다. 그 따끈하고 노르끄름한 강냉이죽 색깔과 구수한 맛은 정말  별미였다.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은 자기 도시락과 그 강냉이죽하고 서로 바꾸어서 먹기도 했다. 부와 극빈의 자연스러운 상생이다. 그들은 오순도순 잘 어울려 먹었다. 문제는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도시락 아이들, 급식아이들, 그리고 학교에서도 관심 밖으로 가려진 아이들이었다. 누구 하나 같이 먹자고 권하는 경우도 없고, 그렇다고 좀 달라고 달려 들 배짱도 없다.


 


말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서는 운동장 한 구석 나무 밑에서 허기진 배를 쓸어안으면서 그 숨 막히는 점심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점심 굶는 일이 가혹할 정도로 슬픈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엔 의식주 문제는 이제 각자가 선호하고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질적 절대빈곤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부익부 빈익빈 시대이다. 부와 빈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다시 중간빈곤층이 소외되어가고 있다. 요즘 들어 이들을 신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도시락을 싸올 처지가 못 되어 점심시간이 되면 구석진 곳에서 혼자 배고픔을 삭이는 아이들처럼 분배의 차등화와 배려의 무신경이 날로 심화되는 현상이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탁상공론의 거창한 명분 속에 묻혀 버린다.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것을 법과 제도의 시행 이전에 우리들이 가까이에서 챙겨주어야 할 몫이다. 도시락 못 싸오는 처지의 아이들, 즉, 신 빈곤층의 경우가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이 있다. 우리가 진정 이러한 것을 밝혀 해결해 줄 때 작은 것의 소중함, 가치성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정부마다 인재육성차원에서 조성한 교육기금이 소위 유명 일류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 위주로 주어지고 있고, 학교마다 지급되는 장학금 형태를 보면 성적 우수자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현상을 볼 때, 수월성의 기준도 중요하지만 보편성, 타당성도 어느 정도 적용하면 차등화하면서도 종다수에게도 장학금이 분배될 수도 있을텐데 정말 아쉬울 때가 많다.


 


교육기관에서 요구한 예산 내용을 보면, 속이 훤히 보이는 경우도 있어 이 아까운 예산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도 된다. 등록금을 마련하기위해서 험한 경험을 겪어야 하고, 등록금을 사기당해 자살한 경우도 있고, 당국을 향해 삭발로 저항을 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국가와 지방정부, 작은 것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거창한 명분과 탁상공론적 논리로 포장하려드는 지도자들의 이중성이 정말 위험스러울 정도이다.


 


지금 누가 뭐래도 우리 아이들에게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초·중·고는 학교급식문제, 대학은 등록금 문제 해결이다. 이 기본적인 문제 해결은 국가와 지방정부, 학교의 몫이다. 진정으로 힘을 모운다면 충분히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을 살려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보살피고 챙길 수 있다면 신이 나는 상생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수천, 수십, 수백억을 들여서 교육 인프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우리들을 챙겨주고 있다는 믿음, 든든함과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교육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우리 모두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MB정부 초기에 한동안 반짝(?)하던 신(빈곤층)사각지대에 대한 정책적 시행과 배려가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시절 그 도시락과 강냉이죽의 추억이 되살아나 씁쓸하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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