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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

대가면 성베네딕도수도원 자주 찾아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2월 23일
ⓒ 고성신문

대가면 송계리 성베네딕도수도원을 찾은 날은 김수환 추기경의 입관일이었다.



참으로 상투적인 이야기이나, 하늘도 추기경과의 이별이 아쉬운 듯 잔뜩 찌푸렸다가

이내 비까지 뿌린다. 성베네딕도수도원과 올리베따노수녀원은 깊은 슬픔에 잠긴 듯, 고요했다.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물결이 전국에서 일고 있다. 지금까지 24만명의 추모객이 김수환 추기경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울음을 삼켰다.



김수환 추기경은 할아버지 대에 신유박해 때 순교한 광산김씨 일파의 후손으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는 돈을 많이 버는 장사꾼이 꿈이었지만, 아들이 성소(聖召)를 받기 원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제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서른이 채 되기 전 사제로 서품을 받고,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거듭났다.



김수환 추기경은 고성과도 인연이 깊다. 성베네딕도수도원의 풍광에 반해 생전 고성을 찾을 때면 항상 대가면의 성베네딕도수도원에 머물렀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제들과 올리베따노수녀원의 수녀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소탈하고 인자한 할아버지의 성품이었다고 회상했다.



똘로마이집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서 만난 한 사제는 “추기경께서는 우리 수도원의 풍경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셨고, 성베네딕도수도원에서 조용히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셨다”며,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을 회고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수도원 내의 똘로마이집을 지을 당시 첫삽을 뜨고, 고성을 방문하게 되면 베네딕도수도원의 똘로마이집, 올리베따노수녀원에서 피정했다.



일반인들을 만나는 것도 즐겨하는 일 중 하나였다. 생전 침대 머리맡의 작은 곰인형을 좋아하던 것처럼,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품었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사랑과 베풂의 미학을 알렸다.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라는 묘비명처럼, 남김 없이 모든 것을 베풀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20일 오전 장례미사를 마지막으로, 추기경으로서의 그리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사로서의 생을 완전히 마감한다.
서울대교구는 22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추도미사를 열기로 했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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