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위대한 도시 고성을 떠난 지 24시간 만에 스페인에 도착한 것이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이젠 다 왔나! 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버스에 몸을 싣고 2시간 30분을 줄기차게 달려야 한단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의 도스에르마나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올리브가 주생산품이며 인구는 10만이란다. 이 축제는 27년 역사를 가진 나자르나 세계민속축제이다.
이 축제에 초청받아 온 나라는 대한민국, 포르투칼, 파라과이 3개국이며 스페인 자체 참가국을 더하면 5개 주 초청 공연팀과 일반 공연팀이 참가하는 국제 민속 축제이다.
도착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새벽 3시. 숙소에 도착하니 스탭들이 마중을 나와 환대해 주며 간단한 식사를 준비했다며 식당으로 안내를 한다.
다음날 오전 일어나 밖을 보니 너무나 청명하다. 내가 바라본 이 작은 도시의 아침을 인생으로 표현하자면 황혼기라는 단어가 적합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아침은 출근이다, 등교다, 왁자지껄한 역동적인 모습과 힘찬 모습이 있는데 비해 너무나 조용하고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절제된 것 같은 기운이 풍긴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팀별 공연 일정을 논의한 후 리허설 장소로 이동하려고 나오는데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큰 은혜 중의 하나인 ‘이상기온’을 몸소 겪을 기회를 준 것이다. 오! 감사 하나이다, 자연이시여. 실외 온도가 36~40도에 이르러야 느낄 수 있다는 위대한 ‘자연사우나’를 체험할 기회를 주시어….
스페인의 6월 일몰 시간은 저녁10시 30분이다. 저녁 10시 까지는 훤한 대낮이다. 저녁인데 저녁이 아니고 아침인데 아침이 아니다.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밤의 소중함을…. 그리고 토끼가 사는 달님에게 빌어본다. “무지한 백성이 밤의 소중함을 몰랐나이다. 이젠 밤에 술집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달님이 오시면 바로 귀가하겠사오니 부디 이곳 스페인까지 빨리 오시길 바라나이다. 오시어 저녁 8시쯤이면 달님을 뵈올 기회를 주시옵소서.”
우리나라 축제는 가설극장(무대)을 꾸며 공연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는 기본적인 문화기본시설의 취약함도 있겠으나 실제 지역민을 위한 어울림의 마당이나 광장 등이 일제에 의해 사라진 후 정권을 잡은 세력들의 문화에 대한 무지도 한 몫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OECD 11~12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문화적인 기본시설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작년 체코의 이름 없는 도시에도 2,000석 이상 되는 야외극장이 4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허름하지만 존재하고 있었고 이곳 작은 도시에도 족히 3,000석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야외극장이 존재하는 것을 보며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문화에 대한 말씀이 떠오름은 지나친 나의 오만일까?
6월 27일 알게리아 공원 야외극장. 긴장의 순간, 개막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페인 시간으로 오후 10시30분,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4시 30분이다. 4개국 5개 팀이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자기나라의 문화적 명예와 예술적 기량을 선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 번째였다. 3,000석의 객석에는 벌써 2/3이가 차있다. 시차 적응이 아직 안된 상태로 서로를 격려하며 리허설을 생각해보며 드디어 무대에 오른다. 첫 번째는 동양적인 요소가 스며있는 승무, 두 번째는 젊은 탈춤인들의 힘과 패기가 느껴지는 기본 춤을, 세 번째는 절제된 표현의 미학 문둥북춤, 마지막은 교감과 소통의 버나놀이로 우리는 한국의 대표 탈춤 고성오광대를 그렇게 그들에 앞에 펼쳐보였다.
숨 막히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러 무대에 서니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잠시 후 기립박수를 보낸다.
아! 위대한 대한민국의 조상님들이여, 고성오광대 선사님들이여. 감사, 감사, 또 감사하나이다. 그렇게 공연을 끝내고 숙소로 출발하려 하니 스페인 시간으로는 새벽 2시30분 한국시간으로 아침 9시 30분경이다.
꼬박 밤을 지샌 것이다. 위대한 고성인의 타고난 체력 ‘댓나 고마’ 성분의 변이종 엑기스가 피 속에 있다 하더라도 시차와 더위는 눈꺼풀이 자연스레 닫히게 만들고 마음은 고향 고성으로 향하게 한다.
6월 29일 저녁공연은 45분이었다. 이날은 스페인과 독일의 유로 2008 결승이 있는 날 이다.
주최 측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공연 계획을 세울 때 자국 대표가 결승에 진출할 줄 몰랐단다. 이런 이유로 관람객이 얼마나 모일지는 장담할 수 가 없는 사항이다. 우리나라의 2002월드컵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아이구 썰렁하다. 하지만 어쩌랴, 유로 2008 결승인데. 우리는 결승전이 끝마친 후 스페인의 승리를 축하하며 공연을 펼쳤다.
개막식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우리의 문화를 그들의 가슴에 심고자 탈을 쓰고 장구를 치며 그렇게 불림을 넣었다. “청노세 청노세”
6월 30일 라스포르타다스 광장에서 공연이 있었다. 이 도시에는 작은 소공원과 광장을 합쳐놓은 것 같은 공간들이 많이 있고 그 주위를 주택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오늘은 우리군 출신으로 일찍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온 이석재 엑스포 홍보대사가 우리 공연단을 위로하기 위해 600㎞를 날아왔다. 물론 공연장까지 같이 동행하며 이것저것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공연 사이 사이에 공연내용을 소개해 주니 훨씬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곳 스페인 우리 숙소의 에어콘 성능이 너무나 탁월했다. 역시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숙소 뒤편의 거리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매장이 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반갑다. 그리고 제법 우리나라 자동차가 이 유럽의 시골에서도 보이면 서로가 또 몇 마디씩 거든다.
나는 우리의 이러한 공연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큰 이해와 관심을 나아가 동경 등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장단에 손뼉치고 우리장단에 어깨짓한 저 할머니와 저 학생들이 대한민국과 고성군을 가슴으로 느껴보고 기억하는 모티브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문화, 특히 탈춤은 약자의 편에서 가식과 편견의 틀을 깨는 어울림과 소통, 교감을 전달하기에….
7월 1일 스페인 광장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다. 이 스페인 광장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있고 저녁시간에는 늘 사람으로 북적인단다.
이 공연을 마치고 드디어 우리나라로 돌아간다. 돌아간다는 설렘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우리는 탈을 들고 그들 앞에 섰다. 40분간 쉼 없이 한국의 호흡을, 멋을, 느낌을, 탈춤의 교감을, 장단 너머로 전달했다. 그리고 마지막 뒤풀이까지….
서로가 땀이 뒤범벅이 될 때까지 뛰고 또 뛰고 놀았다. 그들의 입으로 엑스포를 외치고 전단지를 흔들어 되며 ‘꼬레아’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우리를 따라 어슬픈 어깨짓으로 하늘 높이 외친다. ‘코레아 고성 파이팅’이라고…. 우리는 동서양을 넘어 하나가 되었다.
스페인 현지시간 오후 11:00. 공연을 마친 후 우리는 아쉬움을 가슴에 새기며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바삐 샤워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르는데 늘 지켜보던 경비아저씨가 볼을 부비며 안아준다. 그리고 “잘 가요”하고 인사를 한다.
가슴이 찡하다. 아~, 짧은 일주일이지만 정이 새록새록 쌓여 가슴 밑바닥까지 침전되었나 보다. 이제부터 또 인내심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숙소에서 말라가 공항, 말라가에서 파리, 파리에서 직항으로 인천공항까지, 그렇게 26시간을 기다리고 날아서 돌아온 대한민국 고향 고성. ‘으흠’ 역시나 고성이다. 공기부터가 다르다.
이번 스페인 공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위상, 경제력, 문화적인 이미지와 글로벌 리더로서 우리 군의 현재 노력과 엑스포 등….
나는 우리 군이 문화적으로 전국을 선도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선도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당장 지역민의 시야에 경제적인 성과로 도출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이러한 작업들이 언젠가는 우리군의 미래를 성장 동력산업으로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화이기에…. |
질문있어요
02/25 19:23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