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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축산, 정부의 관심 그리워

1968년 고성군 한우비육 사업
이은숙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7월 25일
ⓒ 고성신문

1960년대 초반 농촌과 농가들이 몹시 가난했다.



축산업은 닭 몇 마리에 돼지 1~2가 고작이었고 소도 한 동리의 상위농가나 농경지 경운과 운반용으로 1두 정

도를 사육하는 영세하고 소규모적인 부업경영으로 축산물 생산량이나 소비량은 몹시 적었다.



부잣집 아이의 점심시간 도시락 반찬에 계란이 나오면 꿀꺽 침을 삼키기에 여념이 없었고, 금지옥엽 소 한 마리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이토록 저조한 축산물 생산량에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근대화를 위해 식량자급 증산과 더불어 축산진흥을 서두르겠다는 소신을 밝히곤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우선 한우의 번식기반인 육성우 농가입식과 쇠고기 증산을 위한 비육사업 지원과 협동축산단지조성계획을 수립해 전국 각 시·군별로 협동축산단지 196개소에 한우 100~200두 규모의 사육시설과 가축입식비 지원 등으로 조성시켰다.



1968년도에는 정부의 기업축산업 육성시책에 따라 번식우 40두, 비육우는 100두를 기준으로 기업목장을 등록시켜 국공유지의 우선 불하를 비롯해 장기성 자금대부와 사료공급, 세금감면 등의 큰 혜택을 주면서 육성시켜나갔다. 당시 1968년 정부의 한우비육사업으로 많은 지원을 받아 고성읍 또한 한우생산을 촉진하고  농가소득증대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62년도 당시 국민 1인당 연간소비량이 육류는 2.7Kg, 계란은 1.8Kg(31개), 우유는 불과 10g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1980년도 육류는 11.3Kg, 계란 6.5Kg(119개)로 62년 대비 4.2배와 3.6배 증가되고 우유는 10.8Kg로 무려 108배로 크게 증가 시켰다.



축산의 양과 질의 많은 변화로 인해 부잣집 아이의 도시락에 보였던 계란은 소시민 아이들 도시락으로 늘어났고 양과 질이 뛰어난 한우는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과거 60년대 정부의 축산진흥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일궈낸 사업이 현 정부의 외면과 무관심으로 한미 FTA 같은 사태가 빚어졌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박 대통령의 농가소득을 위한 축산진흥사업은 오늘날 정부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면 유난히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이은숙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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