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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성의 문화 체험의 장으로 자리잡은 공룡나라축제는 봉사도 하고 고성오광대의 수준 높은 공연도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큰 행운이었다.
고성오광대는 광대가 탈을 쓰고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아내는 고성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제로서 모두 5과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제1과장인 문둥이북춤은 엇박자인 듯 아닌 듯한 굿거리의 절도 있는 춤사위, 탈을 쓴 광대의 흥겨운 몸부림은 나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았다.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는 성숙된 삶을 깨닫게 했고, 실천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문둥이는 격리, 소통 거부 같은 섬뜩한 이미지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늘 편하게 대했고, 애써 거부만 했던 것은 아니다. 경상도 상징어라 착각할 만큼 만연하게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아주 절친한 사이에서 무척 반가울 때 인사말로 "문둥아, 우째 살았노?” 또는 “문디 가수나 지랄병 안하나”등등 문둥이라 불러야만 더 친근감 있고 자연스러운 때가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고향에 계시는 집안 어른께 오랜만에 안부전화 드렸더니 어김없이 “문디 이기 누고, 아직 고성 사나?” 하시는 한 톤 높은 전화목소리는 서로 떠나 있었던 10여 년간의 공백을 거침없이 허물어 버렸다.
각박한 삶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추억이 있고, 신의가 있는 관계에서만이 문둥이라고 서슴지 않게 부르는 것이 아닐까? 원래 문둥병은 흉측한 것인데 경상도 사람들은 이 말을 외모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기준 점에서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그 잘못된 행태에 대해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해 없이 써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은 쓰지 않고 막역한 관계에서 반가움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끼리는 결례가 되는 표현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더군다나 나촌 친구들에겐 아무리 절친해도 사용할 수 없다. 욕된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여학교 시절 얼굴 예쁜 고향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배의 친구가 나병 병력을 전혀 모르고 예사로 “이 문딩아 빨리 가자”며 선배에게 어깨동무를 했을 뿐인데 울고불고 하다가 결국에는 면학의 꿈을 포기한 채 고향으로 가버렸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의 그 선배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며 상처였을까? 그 때는 그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오광대 공연을 보며 난 상대방 입장을 전혀 이해할 마음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엉거주춤 탈을 쓴 광대가 손가락이 꼬부라진 춤사위로 시선을 모우더니 힘든 삶을 갈등하듯 애끓는 춤이 이어지다가 신명 난 북춤으로 관객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다. 우리문화, 예술은 올바른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올바른 삶이 된다. 말뚝이, 비비, 승무, 큰 어미 모두 공통적으로 기구한 운명을 예술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감명적인 한마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