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돌 앞에 서면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하다.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침묵 속에서 먼 옛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고성의 들녘과 마을 곳곳에 자리한 고인돌이 그러하다. 지금은 무심히 지나칠 만큼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수천 년 전 이 땅에서 삶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흔적과 공동체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유산이며, 고성 역사의 가장 오래된 층위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고성을 이야기하면 소가야의 역사를 간직한 송학동 고분군이나 세계적인 공룡 발자국 화석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고성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가야 이전, 문자로 기록을 남기기조차 어려웠던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땅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왔다. 고인돌은 바로 그 사실을 말없이 증언하는 ‘돌의 역사책’이다. 고인돌을 단순한 옛 무덤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거대한 돌을 산에서 떼어내고,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여 받침돌 위에 올려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협력과 지혜가 필요했을까. 그 과정에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노동력을 함께 동원할 수 있었던 사회적 질서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인돌은 한 사람의 무덤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장례문화와 사회구조, 공동체 의식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다. 남해안의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들녘을 품은 고성은 일찍부터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터전이었다. 하일면 오방리·학림리와 하이면 석지리를 비롯하여 상리면 무선리, 구만면, 대가면, 마암면, 회화면, 동해면, 거류면, 고성읍 등 곳곳에서 고인돌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로 보호받는 지석묘도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고인돌은 비지정 상태로 마을과 들판에 남아 있다. 2017년 향토사 사무국장으로 일할 당시 군 관내 고인돌의 분포와 보존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비지정 문화재로 확인된 것만 55개소 118기에 이르렀다.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반가움보다 안타까움을 더 많이 느꼈다. 밭둑과 과수원 한편에서 잡목과 나무뿌리에 묻혀가는 고인돌이 있었고, 경지정리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개인 주택의 정원석이나 식당의 조경석으로 이용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뜻깊은 발견도 있었다. 구만면 효락리·광덕리와 대가면 유흥리 일대에서 기존 대장에 기록되지 않았던 지석묘 7기를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그때 큰 도움을 준 것은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이었다. 어르신들은 고인돌을 ‘칠성바위’ 또는 ‘무덤’이라 부르며, 예부터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돌로 여겨왔다고 했다. 문헌에는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문화유산은 돌이나 건축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유산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까지 있어야 비로소 문화유산이 된다. 돌은 수천 년을 견딜 수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한 세대를 넘기기 어렵다. 세월이 흐르고 마을의 어르신들이 떠나시면 고인돌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남아 있는 것을 보존하는 일’인 동시에 ‘사라져가는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어야 한다. 조사 이듬해 행정의 지원을 받아 고인돌 주변을 정비하고 안내 표지판을 세웠다. 그러나 최근 다시 현장을 찾아보니 세월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표지판이 훼손된 곳도 있었고, 예전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고인돌이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한 번의 조사나 정비사업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지속적인 조사와 관리, 그리고 지역사회의 관심이 함께해야 한다. 이제 고성의 고인돌에 대해서 체계적인 보존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군 전역을 대상으로 정밀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고인돌의 위치와 형태, 보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은 문화재 지정을 확대하고, 군락을 이루는 지역은 역사문화 공간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리면 무선마을과 거류면 은월리 칠성바위 군락, 구만면 일원의 고인돌 군락, 동해면 양촌리 등도 정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송학동 고분군을 비롯한 가야문화유산과 선사시대 고인돌을 연결한다면 의미가 더 커질 것이다. 고성의 역사를 가야시대에 한정하지 않고, 선사시대에서 소가야로, 다시 오늘의 고성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적 흐름을 하나의 문화유산 체계 속에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화려하지 않다. 궁궐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고분처럼 높은 봉분을 이루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곁을 지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 돌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이 땅을 지켜보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들판의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져도 한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한 선조들의 삶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고인돌 앞에서는 역사가 반드시 글자로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때로는 돌 하나가 한 권의 역사책보다 더 오래 말한다. 고성의 고인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문화원장으로서 나는 이 질문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낡은 돌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그 돌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이 이루었던 공동체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며, 아직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우리 역사의 뿌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고성의 고인돌은 우리 역사의 가장 오래된 증언자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돌을 단순히 ‘오래된 돌’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수천 년의 시간이 응축된 역사이며, 우리 고성의 뿌리를 품은 문화유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돌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그 침묵을 읽어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내일로 이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문화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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