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은 580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상에 반포한 뜻을 기리고,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이다. 한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전화로 글을 읽고,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며, 장을 보러 가기 전 필요한 물건을 메모한다. 농사일을 기록하고, 자녀와 손주에게 안부를 전하는 데도 한글을 쓴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한글에는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당시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는 익히기 어려운 한자뿐이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은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글로 알릴 길이 없었다. 세종대왕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어 1446년 반포했다. 그 가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데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배워 쓸 수 있게 했다는 데 더 큰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글날의 의미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군 마을 곳곳을 돌아보면, 한글은 주민들의 일상 속에 살아있다. 밭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돌아와 적은 메모에도, 장날 필요한 물건을 적어놓은 종이 한 장에도 한글이 있다. 자녀에게 보내는 문자 한 통, 손주에게 남기는 편지 한 줄, 마을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에도 한글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곁에 계신 어르신들의 말 속에는 오랜 세월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도 있고, 이 지역에서만 통하는 표현도 있다. 농사를 지으며 사용해 온 말, 계절을 가리키는 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에도 이곳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배어 있다. 그 말들은 단순한 옛말이 아니다. 부모와 조부모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 주는 생활의 기록이다. 그런데 요즘은 언어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영향으로 신조어와 줄임말이 생겨나고, 외국어도 일상에서 흔하게 쓰인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 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다만 그사이 세대 간 말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어르신은 “요즘 아이들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고, 아이들은 “옛날 말만 고집한다”고 해서는 서로 가까워질 수 없다. 상대의 말을 들어 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의 하나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다. 어릴 적 어떤 놀이를 했는지, 옛날 장날은 어떠했는지, 농사는 어떻게 지었는지,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듣고 글로 남겨 보는 것이다. 그렇게 기록된 한 줄 한 줄은 훗날 고장의 역사와 문화가 된다. 특히 우리가 사는 군 지역은 도시보다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곳곳에 오랜 사연과 정서가 남아 있다. 그 속에는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말과 지난 세월의 흔적이 있다. 지명 하나에도 유래가 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다. 한글은 그런 기억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한글날을 맞아 거창한 행사를 떠올리기보다 생활 속에서 그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고,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어린 시절을 여쭤보고, 평소 무심코 쓰는 우리말을 한 번 더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아가 세종대왕이 백성에게 글을 선물했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글에 삶과 이야기를 담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한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다. 우리 모두가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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