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6-10-10 06:09: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특별기고

농업만 왜 제 땅에서 제손으로 지어야 하는가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02일
ⓒ 고성신문
40년 농사지은 여든 어르신이 며칠 전 나를 찾아왔다. 손에 든 것은 수천만 원짜리 이행강제금 고지서였다. 무릎이 성치 않아 몇 해 전부터 서울 사는 아들이 주말마다 내려와 대신 농사를 지어 왔는데, 그것이 ‘불법 임대차’라는 것이다.
자기 땅을 자기 아들이 부치는데 범죄가 된다. 어르신은 “내가 뭘 잘못했노”라고 물었다.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정부가 농지 투기를 뿌리 뽑겠다며 전국 단위 전수조사에 나섰다.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까지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투기를 막겠다는 뜻은 옳다. LH 사태로 드러난 공직자 내부정보 투기, 지분을 잘게 쪼개 파는 기획부동산의 농간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문제는 칼끝이 향한 곳이다. 진짜 기획부동산과 법인 투기꾼은 이미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다 찾아 두었다. 정작 그물에 걸리는 것은 법을 모르는 고령 농민, 부모 땅을 물려받은 상속인, 기획부동산에 속아 쪼갠 지분을 떠안은 영세 피해자들이다.
주식시장을 보라. 작전 세력이 판친다고 금융당국이 전 국민 계좌를 까뒤집지 않는다.
정밀한 감시망으로 내부자와 작전꾼만 핀셋으로 솎아낸다. 그런데 농지 시장에서는 모든 농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세워놓고 초토화하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우리 고성만 봐도 농지 소유자의 대부분이 예순을 넘긴 고령층이다. 이들에게 농지는 투기 대상이 아니라 평생의 땀이 밴 노후 자금이다.
땅을 파는 사람은 농민이지만, 그 땅을 사줄 사람은 도시의 자본이다. 그런데 매수자를 죄다 투기꾼으로 몰아 거래를 막고 양도세를 60%가 넘게 물리면, 고성 땅을 사러 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결과는 거래 절벽과 자산가치 폭락이다. 감정가가 떨어지고 거래가 끊기면 담보대출을 낀 지역 단위농협과 농가 경제가 함께 무너진다.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구호가 현실에서는 농민을 ‘땅 가진 극빈자’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근본을 짚어야 한다. 규제를 밀어붙이는 이들은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자가 땅을 가진다”는 원칙을 절대적 도그마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원칙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해방 직후 우리는 전체 국민의 80%가 농업에 종사했고, 나라 전체 소득(GDP)의 50%가 농업에서 나왔다. 농업이 곧 나라 경제의 근간이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 밥줄인 땅을 소수 지주가 움켜쥐고, 농사짓는 이들은 수확의 절반을 소작료로 빼앗기는 병작반수(並作半收)의 수탈 구조에 놓여 있었다. 이 착취를 끊기 위해 나온 것이 농지개혁이고 경자유전이었다. 일본도, 대만도 같은 이유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농사로 먹고사는 인구는 국민의 5%도 되지 않고, 2023년 기준 농림어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농사지어 수확의 절반을 지주에게 바치는 병작반수는 이제 존재할 수도 없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땅을 두고 누가 절반을 뜯어가겠는가.
착취의 구조가 사라졌는데, 그 착취를 막으려 만든 규제만 홀로 남았다. 대만은 2000년에, 일본은 2009년에 이미 이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고 일반 기업의 농업 진입을 허용했다. 그런데 우리만 GDP의 2%도 안 되는 산업의 생산도구인 토지를 두고, 여전히 1950년의 논리로 농민의 손발을 묶고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어부에게 “네가 직접 그물을 당기지 않으면 배를 소유하지 마라”라고 하지 않는다. 상인에게 “네가 직접 물건을 팔지 않으면 가게를 갖지 마라”라고 하지 않는다.
기업인에게 “네 손으로 직접 만들지 않으면 공장을 갖지 마라”라고 하지 않는다. 고용하고, 위탁하고, 도급 주는 것이 모든 산업의 상식이다.
유독 농업만 “농작업의 절반 이상을 내 몸으로 해야 한다”는 족쇄를 채운다. 이미 농기계가 대신하고,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손을 보태고 있는 현실에서 이 조항은 죽은 규정이다. 땅 주인이 기획하고 기계와 고용 인력이 농사를 짓는다.
지금 고성 들녘의 이 실제 모습을 그대로 합법으로 인정하면 된다.
농업인을 다시 정의하자. 자기 땅이든 남의 땅이든, 고용을 하든 위탁을 하든, 농업을 기획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 농업인이다.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양성화하고, 도시 자본과 청년이 들어올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비어가는 고성의 논밭에 사람과 돈이 돌아온다. 네덜란드는 소유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이용하느냐’를 기준으로 삼아 세계적 농업강국이 되었다.
식량안보가 걱정이라면 그것대로 답이 있다. 원유를 전략적으로 비축하듯 우량농지를 국가가 확실히 보전하고, 쌀 자급률을 관리하면 된다.
그것은 ‘우량농지 보전’의 문제이지, 시골 어르신에게 강제처분 고지서를 날리는 문제가 아니다.
농민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목표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지금의 수단이 그 목표를 배신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첫째, 처벌 위주의 전수조사를 지원 중심의 실태조사로 전환하라. 공포로 농촌을 얼어붙게 하지 말고, 데이터로 진짜 투기 세력만 핀셋으로 규제하라.
둘째, 농지법 제23조를 개정해 사인 간 임대차를 자유화하라. 소유 집착을 내려놓고 ‘이용 중심’으로 가야 자본과 사람이 돌아온다.
셋째, 농지를 두 갈래로 나눠 관리하라. 지킬 우량농지는 인센티브를 주어 확실히 보전하고, 영농 기능을 잃은 한계농지는 규제를 풀어 거래와 전용을 열어주라.
정부가 시장 위에 군림하려 할 때 남는 것은 농촌의 붕괴와 농민의 저항뿐이다. 지금 빠르게 확산되는 국민동의청원은 생존권을 위협받는 농민들의 마지막 경고다.
규제의 족쇄를 풀고 농지법을 시대에 맞게 고치는 것, 그것만이 고성의 논밭과 이 나라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그 어르신께 다음에 뵐 때는 “이제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02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김근 / 편집인 : 황영호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