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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역사와 삶이 깃든 곳, 객사 마당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02일
ⓒ 고성신문
고성읍 한복판에 자리한 객사 마당은 오늘날 옛 건물이나 연못의 흔적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에는 조선시대 객사의 역사에서부터 근현대 장터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 그리고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의 함성에 이르기까지 고성의 역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켜켜이 쌓여 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평범한 공간일지 모르지만, 그 땅을 밟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 보면 객사 마당은 고성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특별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객사, 아사, 창고 등 관아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객사는 단순히 외지에서 온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가 아니었다.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지방관이 임금에게 예를 올리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던 곳으로, 지방 관아 가운데서도 왕권과 지방 행정의 상징성을 함께 지닌 중요한 공간이었다.
또한, 아사(衙舍)는 지방 수령이 업무를 맡아보던 곳이었다.
고성 객사는 세종 때 고성읍성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653년 최웅천 현령 때 중건되고 1734년 김성용 현령 때 중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객사 북쪽에는 제법 넓은 연못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은 공간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1900년 10월 8일, 음력 8월 15일에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객사 건물과 귀중한 서책 등이 소실되었고, 이후 객사는 복원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못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며 메워졌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깃든 역사의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객사 마당은 고성의 대표적인 장터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
장날이면 쌀과 농산물, 각종 생활용품을 사고팔려는 상인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장터는 물건을 거래하는 곳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웃의 안부를 묻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이곳의 ‘총재이 국밥집’​은 장꾼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장터에는 사람의 삶만 모인 것이 아니었다. 야산대, 오늘날의 오광대 공연과 서커스가 열리고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달집을 태우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했다.
어린이들에게도 객사 마당은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었다. 연을 날리고 자치기를 하며 고무줄놀이를 즐겼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이제는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처럼 객사 마당은 관아의 공간에서 장터로, 다시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그 역할을 이어왔다.
객사 마당의 역사에서 더 주목해야 할 장면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다.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고성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한 뜨거운 함성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22일과 4월 1일, 당시 고성읍 장터였던 객사 마당에는 수많은 군중과 학생들이 모였다.
안태원·서주조·김진만·문상범 등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과 군중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곳은 물건을 사고팔던 장터를 넘어 고성인의 독립정신이 분출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평범하게 오가는 이 땅 위에서 100여 년 전 고성의 선조들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나라의 독립을 외쳤다. 그 함성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절박함과 자유와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염원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객사 마당은 고성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객사 건물은 사라지고 연못은 메워졌으며 옛 장터의 풍경도 이제는 주로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한 지역 사람들이 살아오며 만들어낸 이야기와 기억, 생활의 흔적과 역사적 사건 역시 우리가 소중히 보존하고 이어가야 할 문화유산이그런 점에서 객사 마당은 고성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을 향해 예를 올리던 객사가 있었고, 근현대에는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장터가 되었다. 주민들의 놀이와 문화가 펼쳐졌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외치는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한 공간에 행정의 역사와 서민의 삶, 지역 문화와 민족정신이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제 객사마당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옛 건물의 흔적을 찾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더욱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지역 어르신들의 기억과 구전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특히 3·1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역사적 의미를 알릴 수 있는 안내시설이나 기념공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하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다음 세대가 그 의미를 이어가도록 하는 일이다.
객사 마당은 오래된 빈터가 아니다. 고성 사람들의 삶과 애환, 문화와 독립정신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고성의 역사책이다.
사라진 건물만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그 터에 남아 있는 이야기와 정신을 찾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역사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길일 것이다.
고성의 역사문화유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오가는 익숙한 공간에도 선조들의 삶과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객사 마당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고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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