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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지역을 바꾼다, 고성형 공공도서관의 길] 하룻밤 머물며 지역 이야기를 담아 직접 책을 만드는 체류형 도서관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하는 금산 지구별 그램책 마을
책 만들고 사진 찍고 개성 즐기는 고창 책 여행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28일
▣ 글 싣는 순서
① 도서관은 많아도 활용하지 못하는 고성
② 책을 넘어 예술이 머무는 곳, 문화예술 거점 도서관
③ 하룻밤 머물고 직접 책을 만든다, 머무는 도서관
④ 연결되면 더 강해진다, 지역 변화 이끄는 도서관 네트워크
⑤ 주민이 만들고 함께 키우며 마을을 바꾼 도서관
⑥ AI와 배리어프리, 모두를 위한 미래형 도서관
⑦ 책 읽는 고성, 지역 활력의 신호탄

↑↑ 고창 책마을해리에서는 고창을 비롯한 지역의 생태와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사진은 2026여름책학교 모습
ⓒ 고성신문
↑↑ 금산 지구별그림책마을은 세대를 누구나 함께 읽는 책들인 물론 식당과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머물며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고성신문
도서관 이용자 수를 늘리는 것과 지역의 체류인구를 늘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 시간 머물고 돌아가는 사람과 하루를 보내며 밥을 먹고 다른 공간을 찾고 숙박하는 사람은 지역과 맺는 관계부터 다르다.
특히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면 새로운 관광시설을 계속 짓는 대신 이미 있는 문화시설에 ‘굳이 찾아갈 이유’와 ‘오래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금산과 고창에서 눈여겨볼 것은 시설 자체보다 사람의 시간을 붙잡는 방식이다.

# 책과 별이 함께 잠드는 금산 지구별그림책마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한적한 시골마을. 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고도 책과 음악, 맛과 쉼이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0세부터 100세까지 3대가 함께 읽는 그림책마을’을 내세운 이곳은 그림책을 어린이자료실의 한 분야로 두지 않고, 가족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책을 읽고 쉬며 시간을 보내도록 꾸몄다.
그림책마을 관계자는 “책을 읽다가 걸을 수도 있고 음악을 듣거나 밥을 먹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고, 하루가 부족하면 여기서 잘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라면서 “도서관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을을 꾸리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다 지치면 숲길을 걷고 음악을 듣거나 정원과 한옥을 둘러본다. 배가 고프면 건물 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다시 다른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볼 수도 있다. 읽을거리와 볼거리, 먹을거리, 산책과 휴식이 한 공간 안에 겹쳐 있다. 책을 오래 읽게 해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는 시간까지 함께 설계한 셈이다.
북스테이와 고택스테이도 이런 흐름의 연장이다. 숙박객에게는 일반 관람객이 돌아간 뒤에도 도서관을 더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공간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도 강점이다. 차를 세워둔 뒤 책을 읽고 걷고 먹고 쉬고 잘 수 있어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동선이 마을 안에서 대부분 해결된다.
책마을 관계자는 “단순히 책을 많이 보게 하는 것보다 책과 함께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만 둔 것이 아니라 산책길과 음악, 식사와 숙박을 함께 넣었다”라면서 “책을 덮었다고 이곳에서 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산면의 한적함도 이곳에서는 약점이 아니다. 주변에 상점과 볼거리가 적다는 농촌의 조건을 억지로 도시처럼 바꾸는 대신 조용하고 느린 시간을 책 읽기와 연결했다. ‘갈 데가 없다’는 조건을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로 바꾼 것이다.

# 읽고 쓰고 만드는 고창 책마을해리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해리는 바다 가까운 작은 농촌마을의 폐교 나성초등학교에서 출발했다. 책숲시간의숲과 버들눈도서관, 한지활자공방, 책감옥, 북카페와 숙박공간 등이 옛 학교 곳곳에 자리한다.
이곳의 모토는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다. 누구나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시인학교와 그림책학교, 출판캠프 등에 참여하면 직접 글과 그림을 만들고 편집하고 제본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다.
책마을해리가 체류시간을 만드는 방법은 구경하는 사람을 만드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읽고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시간이 필요하다. 캠프가 며칠씩 이어지고 북스테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다. 책마을해리는 고창의 역사와 문화, 생태와 농업, 지역생활사를 책의 재료로 삼는다. 고창 한지와 선운사에 전해온 판본 같은 지역의 출판문화도 책마을의 정체성을 이루는 자원이다.
참가자는 고창의 마을과 자연을 살펴보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이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책으로 만든다. 고창을 여행하는 일이 책을 만드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 고창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관들
2025년 12월 문을 연 고창황윤석도서관은 개관 1년도 되지 않아 주말 하루 평균 약 1천500명이 찾는 고창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건축가 유현준이 종묘 정전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목조 건축물로, 높은 천장과 길게 이어지는 목조 기둥, 지식의 산을 형상화한 계단식 서가 북마운틴이 눈에 띈다.
공간 자체를 구경하고 사진을 남기려는 방문객도 많다. 목조 기둥과 북마운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오고, 이를 본 사람이 다시 도서관을 찾는 흐름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 도서관이 고창다운 이유를 건축에서만 찾아서는 부족하다. 이름부터 고창을 대표하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에게서 가져왔다. 평생 방대한 기록을 남긴 그의 학문과 기록정신을 도서관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약 7만4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일반자료실과 어린이자료실, 책마루, 다목적강당, 문화강좌실, 배움실 등을 운영한다. 작가와의 만남과 어린이 특강, 문화체험, 전시 등도 연중 이어진다. 주민에게는 독서와 문화, 평생학습을 누리는 일상의 도서관이고 외지인에게는 건축과 사진, 책과 지역인물을 함께 만나는 여행지가 된다.
좋은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방문을 다시 책과 고창의 인물·문화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황윤석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 지역 관광의 목적지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대산면에는 여섯 독립서점이 모인 고창서점마을이 있다. 철학과 그래픽노블, 그림책, 생태환경, 독립출판물, 여행 등 서점마다 다루는 분야가 다르다. 각 서점지기가 자신의 취향과 전문성을 작은 책방 하나에 담았다.
고창과 영광의 경계에 가까운 한적한 농촌마을에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책방을 옮겨 다니다 카페에서 쉬고 원한다면 북스테이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 책을 따라가면 고창을 여행한다
책마을해리와 황윤석도서관, 서점마을은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운영주체도 공공과 민간으로 다르고 생겨난 과정도 다르지만 모두 고창의 지역성과 책을 연결하고 있다.
해리면에서 책을 만들고 고창읍에서 도서관을 즐기고 대산면에서 책방을 찾으려면 자연스럽게 지역을 이동해야 한다. 그 사이 고창의 들과 마을을 지나고 식사를 하며 다른 관광지에도 들를 수 있다. 하루가 짧으면 책마을이나 서점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여행왔다는 한 관광객은 “처음에는 책마을 한 곳만 볼 생각이었는데 황윤석도서관은 외관부터 멋졌고 서점마을은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어 머물면서 책 보는 재미가 있었다”라면서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달라 다음 장소도 궁금해졌다. 책을 만들고 멋진 도서관에서 사진도 찍고 작은 서점에서 책도 고르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갔다. 책을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고창 여행이 됐다”라고 말했다.
금산은 농촌의 자연과 느린 시간을 문화자원으로 바꿔 관광객이 한곳에 오래 머물게 했다. 고창은 지역의 인물과 역사, 자연과 주민의 삶을 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엮어 지역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두 지역의 책 공간은 지역의 특색을 담아 외지인에게도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까지 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을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바꾼다면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생활시설에서 지역 체류를 이끄는 출발점으로 역할을 넓힐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6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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