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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弔問)과 카톡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14일
ⓒ 고성신문
“카톡”하고 울리는 가벼운 경고음 뒤에 숨어, 우리는 타인의 죽음마저 너무 가벼이 지워 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어느 모임 중 친구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지인 한 분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한 후 나도 너도 할 것 없이 지체 없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자 몇 자를 눌러 차가운 액정 너머로 날려 보낸다.너나 할 것 없이 편리한 힘을 빌려 슬픔을 전송한 탓에, 사방에서 “카톡” “카톡”전자음이 들렸다. 
애도의 마음을 담았다는 소리치고는 참으로 서글프고 역설적이다.현대인들의 손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과 수많은 SNS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혀 주는 고마운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현실의 인간 관계에서는 오히려 진정한 소통과 뜨거운 정을 단절시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고 있다. 세상이 살기 편해졌다고는 하나, 액정 화면 하나로 조문을 대신하는 세상이 과연 온전한 예(禮)에 걸맞는 세상일까? 나 역시 이 질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무겁게 반문 해 본다. 
오래전 읽었던 어느 수필의 한 구절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옛날에는 이웃의 부고를 들으면 꽤나 먼 길을 묵묵히 걸어서 조문을 다녀 왔다고 한다. 온종일 걸어 상가에 당도해 슬픔을 나누고 돌아올 때면 해는 이미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러한 옛이야기를 꺼내들면 요즘 젊은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며 핀잔을 주거나 흉을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명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 한들,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산 자의 슬픈 마음 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다.한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맞이하는 거룩한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예를 표하는 방법은 바쁜 일상에 쫓기는 생활이라 할지라도 고인의 영정 앞에 정중히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빌며 술 한 잔 올리는 것이 산 자의 도리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지켜 온 미덕이며 예의일 것이다.조문이라는 것은 다시 보지 못할 먼 길을 떠나는 망자의 넋을 기리는 일인 동시에 남겨진 슬픈 가족들을 위로하는 데 더 큰 본질이 있다.어버이를 향한 자식의 정, 그리고 피붙이 간의 인연은 인간의 얕은 말과 글로는 감히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중국 진(晉)나라 시절의 옛 고사에 따르면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를 붙잡아 배에 싣고 떠나자 어미 원숭이가 울부짖으며 강변을 따라 수백 리를 쫓아 왔다고 한다. 마침내 배가 정박하자 어미 원숭이는 배에 뛰어 들었으나 이내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자식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 극심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전한다.이 가슴 아픈 ‘단장(斷腸)’의 고사처럼, 자식이나 부모를 잃은 산 자의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 그러기에 망자를 애도하는 일 못지않게 그 끊어진 창자를 안고 살아내야 할 살아있는 이들의 슬픔을 보듬고 위로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남겨진 더 중요한 책무일지 모른다. 물론 살다 보면 도저히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빈소를 직접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문자로 마음을 전해야 할 불가피 한 상황이라면, 상주 개인의 연락처로 마음을 담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그나마 슬픔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법 일성 싶다. 
간혹 “상주가 내게 단체 톡으로 부고를 보냈으니, 나도 단체톡방에 조의를 표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주는 지금 세상을 잃은 슬픔 속에서 경황이 없지 않는가. 그 커다란 슬픔을 마주한 상주에 비하면 메시지를 보내는 우리는 적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는가. 그 작은 여유조차 베풀지 못하는 인색함이 못내 서글프다.우리 곁을 떠나 고요히 누워 있는 망자의 영전 앞에서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도, 거창한 위선도 필요치 않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으며, 따스했던 손짓 하나조차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내 소중한 인연들이 마지막 길을 떠날 때면, 편리함이라는 스마트폰의 유혹을 기꺼이 뿌리치고 님의 영전 앞에 정성을 가득 담은 그윽한 술 한 잔 올리리라. 그리고 향기로운 국화 한송이 정중히 바치며, 남겨진 이들의 시린 손을 따스하게 맞잡아 주리라 다짐해 본다.스마트폰의 알림음 소리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아파할 줄 아는 그 따뜻한 가슴이야말로, 오랜 역사속에서 우리가 지켜 온 미덕이며 예의일 것이다.이제부터라도 스마트폰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 참으로 가슴 따뜻한 이웃이 되고 싶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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