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의 진짜 영혼, 고성읍 덕선리에 있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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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학사의 최고 걸작을 꼽으라면 단연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토지라고 하면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하동 평사리의 광활한 무덤이 들과 그곳에 우뚝 솟은 최참판댁 고택을 떠올린다. 학계와 대중 역시 하동 악양의 조씨고가(화사별서)를 최참판댁의 공식 모델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외형적 배경이 하동의 것이라 하여, 그 소설을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의 영혼까지 온전히 하동의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문학의 뒤편에 숨겨진 진짜 인간들의 아픈 역사, 즉 소설의 ‘진짜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 고장 고성군 고성읍 덕선리와 마주하게 된다. 예로부터 덕선리는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유서 깊은 집성촌이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남부러울 것 없는 부를 누렸던 만석꾼 가문이 실재했던 곳이다. 향토사학자들과 함안이씨 문중의 오랜 구전, 그리고 무엇보다 박경리 작가가 살아생전 사석에서 직접 시인했다는 내밀한 증언에 따르면, 토지 속 최참판댁 비극의 서사적 뼈대는 바로 덕선리의 만석꾼 이한수 씨 가문의 실제 역사에서 출발했다. 문학계에서 ‘소설의 모델’을 찾을 때, 단순히 외형적인 배경만 보고 하동의 조씨고가만을 정설로 다루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하지만 창작자의 관점에서 보면, 소설에 진짜 숨을 불어넣는 것은 눈에 보이는 기와집이나 들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처절한 갈등과 아픔이다. 실제로 토지의 1부와 2부를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갈등은 외세의 침략이나 신분제의 붕괴 같은 거대 담론 이전에, ‘친족 간의 배신과 재산 탈취’였다. 소설 속에서 최치수가 살해당하고 유일한 혈육인 서희가 어리다는 점을 이용해 재종사촌 조준구가 만석지기 재산을 통째로 빼앗아 버리듯,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수 대를 이어온 만석꾼 가문들이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내부 분열이었다. 가문의 수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하거나 후사가 귀할 때, 방계 친척들이 일제의 새로운 법제도나 위조문서를 이용해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고 양자 문제를 두고 피치 못할 싸움을 벌이던 실제 역사 말이다. 덕선리 한수 씨 집안의 후손들이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다”라고 강력하게 증언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조선 말기 양반 가문이 겪어야 했던 내밀한 몰락의 내역과 친족 간의 처절한 분열 과정이라는 서사적 뼈대가 소설과 완전히 판박이처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아픈 흥망성쇠를 소설로 기록하고자 직접 하동으로 내려가 붓을 들었던 인물이 바로 덕선리의 이병기 씨였다. 그러나 피를 나눈 친족 간의 갈등과 차마 대외적으로 밝히기 힘든 가문의 치부를 제 손으로 낱낱이 파헤치는 일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을 터다. 결국, 그는 집안의 눈치와 정서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집필을 포기하는 대신, 당시 진주와 통영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인맥이 닿아 있던 청년 박경리에게 이 거대한 소재를 인계하게 된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경리 작가는 가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역은 숨겼지만, 뛰어난 작가적 안목으로 이를 대하역사극으로 승화시켰다. 후손들의 명예를 위해 공간을 고성이 아닌 하동 평사리로 과감히 이동시켜 외형을 빌려왔을 뿐, 소설을 움직이는 진정한 알맹이는 이병기 씨를 통해 입수한 덕선리 함안이씨 가문의 비사(秘史)였다. 작가는 가문의 아픔을 전해 들으며 느꼈던 연민과 흔적을, 악역 조준구의 아내이자 탐욕의 희생양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에게 '함안 댁'이라는 상징적 택호를 부여함으로써 소설 속에 은밀하고도 뚜렷하게 새겨두었다. 가문의 치부를 소상히 들추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비극을 거대한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천재적 안목과 그 위대한 씨앗을 제공한 가문의 슬픈 역사가 토지라는 대작의 이면에 이토록 도도히 흐르고 있는 셈이다. 후손들은 지금도 조상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말을 아끼지만, 사석에서 남긴 작가의 고백과 후손들의 일치된 증언은 이 내밀한 역사가 토지의 진짜 영혼임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대하소설 토지의 외형은 하동의 옷을 입었을지언정, 그 인물들의 뼈대와 비극의 역사는 고성 덕선리 땅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함안이씨 문중과 고성 지역사회에 전해지는 이 내밀한 역사는, 토지를 겉으로만 보던 대중에게 숨겨진 진짜 인간의 역사를 일깨워주는 너무나 귀중한 구술사(Oral History) 자산이다. 이제 우리는 토지를 하동만의 문학으로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한 이야기의 영혼이 우리 고성 덕선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당당히 기억하고 선언해야 한다.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고 올바르게 기록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문화인들의 준엄한 책무다. 문학의 장막 뒤에 숨겨져 있던 고성의 아픈 역사와 조상들의 삶의 궤적을 재조명할 수 있게 해준 문중의 귀중한 증언에 다시 한번 깊은 경의를 표한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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