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잊힌 영웅 백초월 선사를 다시 생각’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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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이면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기린다. 현충원을 찾고 태극기를 게양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러나 정작 우리 고장이 낳은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결국 잊힌 역사와 다르지 않다.
# 일제 강점기 불교계 항일운동의 거목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 금산마을에서 태어난 백초월 대선사는 일제 강점기 불교계 항일운동을 이끈 대표적 지도자이자 민족 독립운동의 선구자였다. 수행자의 길을 걷던 그는 나라를 빼앗긴 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전국 사찰과 승려들을 연결해 독립자금을 모으고, 비밀신문을 발간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청년 승려들을 독립운동 전선으로 보내면서 불교계 항일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일제는 그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했다. 수차례의 체포와 투옥이 이어졌고,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고문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동지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1944년 6월 29일 청주교도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광복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순국 82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거워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위대한 인물이 오랫동안 우리 기억 속에서조차 잊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 벽 속에서 피어난 ‘진관사 태극기’와 고성 지난 2009년, 서울 진관사 칠성각 해체 과정에서 독립운동 자료와 함께 일장기 위에 태극 문양을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되면서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백초월 선사의 독립운동 정신과 업적 또한 비로소 세상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90여 년 동안 벽 속에 숨겨져 있던 태극기는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에 대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유물이었다. 당시 필자는 고성박물관 사업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진관사 태극기가 백초월 선사의 유품이라는 사실을 접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태극기만큼은 반드시 고향 군민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 국가적 문화유산을 지방 박물관으로 가져와 전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요청하고 수차례 협의를 거듭했지만, 벽은 높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과 연계하여 전시를 성사할 수 있었고, 이후 아산 현충사로 옮겨지기 전 일정 기간 고성박물관에서도 전시하는 뜻깊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군민들은 유리 진열장 속 태극기 앞에서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 태극기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독립을 향한 선열들의 의지와 희생을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누군가는 숙연히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이런 분이 우리 고성 출신이었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살아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후 광복절을 맞아 고성읍 시가지 주요 도로변에 진관사 태극기를 게양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많은 군민이 백초월 선사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떠올렸을 것이다.
# 잡초에 가려진 비석, 방치된 우리의 기억 얼마 전 필자는 고성학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영오면 성곡리 금산마을에 있는 백초월 선사 순국비를 찾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순국비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덩굴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비석이 있는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기념비가 풀숲에 묻혀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독립운동가를 잊게 만드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기억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비석을 덮은 것은 단순히 무성한 잡초가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과 망각이라는 이름의 잡초가 백초월 선사의 위업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는 익숙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고 기억하는 데는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문화유산은 건물과 유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시대를 살아낸 인물의 정신 또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지역의 역사와 인물은 그 고장의 정체성과 정신을 이루는 뿌리이다. 뿌리가 약해지면 나무도 오래 버틸 수 없다. 백초월 선사는 고성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그의 삶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라 사랑과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교훈이다.
#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도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다. 광복의 기쁨 뒤에는 이름 없이 쓰러져 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성이 낳은 위대한 승려 독립운동가 백초월 선사가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를 더 자주 기억하고 호명해야 한다. 순국비를 찾아 주변을 돌보고, 그의 삶을 배우고, 후손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고성문화원 역시 앞장서서 선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정화하는 일에 마음을 보태고자 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것이며, 지역의 미래는 그 역사와 정신을 얼마나 소중히 계승하느냐에 달려 있다. 풀숲에 가려진 순국비 앞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풀은 베어내면 다시 자라지만, 한 번 잊힌 역사는 되살리기 어렵다. 백초월 선사의 이름은 단지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수행자의 신념이며, 고성이 끝까지 지켜야 할 역사와 정신이다.이제 우리의 몫은 분명하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 가는 일이다. 백초월 선사의 이름만큼은 결코 역사의 잡초 속에 묻혀서는 안 된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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