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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의 기원 3-3 주(住) 문지방을 넘어, 자연을 품는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6일
ⓒ 고성신문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숲을 이루고, 벽면 가득 채운 스마트 홈 시스템이 손가락 하나로 조명과 온도를 조절하는 바야흐로 ‘주거 기술의 최첨단 시대’입니다.
공간의 크기가 곧 부의 척도가 되고, ‘어디에 사느냐’가 인간의 가치마저 재단하는 자산 만능의 시대 속에서, 집은 어느새 삶을 영위하는 안식처라기보다는 사고파는 재테크의 수단이자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거대한 생존 사를 돌아보면, ‘주(住)’는 인간이 거친 대자연 속에 찍어 내려간 가장 위대한 평화의 이정표였습니다. 문명의 새벽녘, 인류에게 집은 사나운 맹수와 혹독한 비바람으로부터 나약한 육체를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굴(Shelter)’이었습니다.
어두운 동굴을 찾아 헤매던 인류는 움집을 짓고 기둥을 세우며 비로소 자연의 한 조각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건축(Architecture)’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의 경계를 짓는 일이 아니라, 거친 대자연과 인간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지혜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이후 고대 세계의 인류는 지리적 환경에 맞추어 주변의 자연에서 가장 단단하고 정직한 재료들을 찾아 문명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비가 적고 햇살이 강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흙을 구워 벽돌을 쌓았고, 대리석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에서는 신전을 세웠으며, 숲이 울창한 동아시아에서는 나무와 기와를 엮어 유려한 곡선의 집을 지었습니다. 나아가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견뎌내기 위해 주춧돌을 놓고 짜임 구조를 발전시킨 것은 자연과 싸우기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인류의 위대한 공학적 도약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거 공간 역시 사회의 고도화와 함께 ‘신분과 권력(Status)’을 나타내는 거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왕실과 귀족층은 거대한 대리석 궁전과 화려한 청기와를 올려 권력을 과시했고, 서민들은 흙과 짚으로 만든 소박한 초가집이나 움막에서 몸을 뉘며 공간 자체로 신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집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생존의 울타리이자 사회적 정체성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문명사의 흐름 속에서, 불과 한 세대 전 우리 선조들이 가꾸었던 집 한 채는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숨결, 그리고 이웃과의 상생이 서린 삶의 결정체였습니다.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온돌방을 데우고, 구들장 밑을 지나며 집안 전체를 훈훈하게 가두던 그 온기는 단순한 난방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고단한 몸으로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나지막한 사랑의 노래였고, 척박한 삶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던 우리 백성들의 온정이었습니다.
우리 전통 가옥의 백미는 ‘소통과 조화’에 있습니다. 대륙의 매서운 추위를 막아주는 한국 고유의 ‘구들(온돌)’과, 서태평양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남방계의 ‘마루’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구조는 세계 건축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기적 같은 조화입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계절의 순환을 고스란히 집 안으로 받아들인 지혜였습니다. 집의 경계 또한 지극히 다정했습니다.
어른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아 마당 안팎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돌담’은 도둑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과 눈을 맞추고 정을 나누기 위한 소통의 통로였습니다. 방과 마당을 연결하는 ‘문지방’은 안과 밖의 경계였지만, 결코 단절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이웃에게 따스한 숭늉 한 사발을 건네고, 숟가락 개수까지 서로 다 알 만큼 허물없이 지내던 공동체의 온기가 바로 그 소박한 집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주거 풍경은 어떠합니까.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로 네모나게 찍어낸 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수천 세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지만,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두꺼운 철문과 잠금장치로 서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웃 간의 단절을 넘어, 이 화려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미로 속에서 현대인들은 깊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준 편리함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콘크리트 독성과 미세먼지, 환경호르몬과 끝없는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은 원인 모를 불치병과 아토피, 암과 같은 현대 문명병에 신음하며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최첨단 종합병원의 기계로도 고치지 못하는 깊은 병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자연 일부임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 미디어와 대중 사이에서, 모든 문명의 혜택을 과감히 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토굴을 파거나 소박한 자연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이 큰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거나 깊은 질병에 허덕이던 이들이,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방식 그대로 흙을 밟고,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연의 품에서 숨을 쉬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병이 치유되고 생명력을 회복하는 기적 같은 사례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늘 불안과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속 토굴 생활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것은 몸과 영혼이 한계에 다다른 현대인들이 보내는 처절한 SOS이자, 콘크리트 상자가 결코 인간의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는 무언의 증명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깊은 반성이 밀려옵니다. 공간은 넓어지고 시설은 편리해졌지만, 정작 그 속에 담겨야 할 인간의 ‘정(情)’과 ‘생명력’은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부르짖는 ‘친환경 건축’과 ‘치유의 공간’에 대한 해답은 이미 오래전, 자연을 집 안으로 모셔 들이고 수명이 다하면 기꺼이 흙으로 돌아가던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주거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문화는 박물관 유리창 내부에만 머무는 박제된 유물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집을 짓 고 문지방을 넘나들며 가졌던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생태적 숨결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호흡할 때, 우리의 주거 문화는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얻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돌담 너머로 인사를 건네던 그 따스한 온기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빌딩 숲에서 병들어 가는 현대인들을 치유하고, 다음 세대에게 콘크리트 독성이 아닌 자연의 생명력을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미래의 준비입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최초의 동굴에서 생존의 울타리로, 그리고 욕망의 역사를 거쳐 구들장 위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선조들의 소박한 손길 속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품격과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아니라, 자연을 향해 숨통을 트고 내 마음과 이웃을 향해 문을 열어두는 삶의 깊은 성찰과 다정한 시선일 것입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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