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衣食住)의 기원 3-2 식(食) 가마솥 들끓는 소리, 생명을 품는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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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세계 각국의 진미가 30분 만에 식탁 위에 차려지고, 철을 잊은 농수산물들이 일 년 내내 마트 진열대를 가득 채우는 바야흐로 ‘미식(美食)의 범람 시대’입니다. 손쉽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편식과 자극적인 조리법이 넘쳐나는 오늘날, ‘먹는다’라는 행위는 어느새 단순한 미각적 쾌락이거나 바쁜 일상에서 해치워야 할 하나의 숙제처럼 변해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거대한 생존 사를 돌이켜보면, ‘식(食)’은 인간이 대자연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생명을 이어온 가장 치열하고도 경건한 의식이었습니다. 문명의 새벽녘, 인류에게 먹을거리를 구하는 행위는 곧 생과 사를 가르는 전투였습니다. 맨손으로 맹수를 쫓고 바다와 들판을 헤매며 열매를 채집하던 ‘생존(Survival)’의 시대를 지나,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통제하면서 비로소 거친 자연을 ‘요리(Culture)’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은 단단한 곡물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독성을 제거했으며, 인간의 소화 기관을 변화시켜 두뇌 발달을 이끈 인류 최초의 위대한 요리사이자 문명의 촉매제였습니다. 이후 농경의 시작과 함께 인류는 지리적 환경에 순응하고 때로는 투쟁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식문화를 개척했습니다. 물이 풍부한 아시아의 강가에서는 벼를 길러내어 찰진 밥을 지었고, 건조한 중동과 유럽의 들판에서는 밀을 갈아 빵을 구우며 문명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나아가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이고, 말리고, 미생물의 힘을 빌려 발효시키는 ‘저장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혹독한 겨울과 가뭄을 이겨내게 한 위대한 과학적 도약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재와 기술들이 사회의 고도화와 함께 ‘권력과 신분(Status)’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이국적인 향신료와 산해진미로 부를 과시할 때, 평민들은 거친 보리빵과 묽은 수프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인간의 사회적 위치와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를 증명하는 척도였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문명사의 흐름 속에서, 불과 한 세대 전 우리 선조들이 마주했던 밥 한 그릇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정성, 그리고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 서린 생명의 결정체였습니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여름 들녘, 마당 가득 울려 퍼지던 “옹헤야”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도리깨를 내리치던 거친 보리타작 소리, 쿵덕쿵덕 온몸의 무게를 실어 곡식을 찧던 디딜방아 소리는 단순한 노동의 리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대지가 베푼 은혜를 악착같이 내 것으로 만들어 가족을 살려내겠다는 처절한 생명 최전선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식(食)’은 매 순간이 가혹한 시험대였습니다.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늦봄의 ‘춘궁기(보릿고개)’가 찾아오면, 인간의 생존 본능은 눈물겨운 몸부림이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어 하얀 속살(송기)을 짓찧고, 들판의 쓴 쑥과 시든 잡초를 뜯어 들풀 죽을 끓여 먹으며 그 모진 굶주림의 계절을 버텨냈습니다. 쌀 한 톨이 밥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닿아야 한다는 ‘미(米)’ 자의 어원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밥상 위에는 선조들의 피땀과 눈물,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생명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식사 앞에서 지독할 만큼 엄격한 절제와 경외를 보였습니다. 궁극의 절제미를 보여주는 수행자들의 ‘발우공양(鉢盂供養)’이 대표적입니다. 스님들은 온종일 마을을 돌며 탁발해 온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할 때, 한 톨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남은 발우(밥그릇)에 맑은 물을 부어 자투리 고춧가루 하나, 밥풀 하나까지 깨끗이 씻어 그 물을 모두 마셔버립니다. 자연에서 온 생명을 단 하나의 찌꺼기도 버리지 않고 온전히 제 몸으로 돌려보내는 이 숭고한 식사법은, 음식을 대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예의이자 감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어떠합니까.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음식들이 무더기로, 쓰레기통으로 향합니다. 한편에서는 ‘먹방’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하게 음식을 소비하며 쾌락을 좇고,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난 양의 음식물 쓰레기가 지구를 신음하게 하는 역설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가 이토록 풍요에 취해 음식을 버리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의 어느 척박한 땅에서는 단 한 모금의 물과 한 줌의 곡식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인류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이 진흙 쿠키로 허기를 달래고, 굶주림 끝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이들의 비극은 결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21세기 현재 진행형의 조용한 전쟁입니다. 그 비참한 현실 앞에 깊은 반성이 밀려옵니다. 먹을거리는 넘쳐나지만 정작 음식을 대하는 ‘성찰’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는 생명줄인 음식을 우리는 너무 쉽게 조각내어 버리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부르짖는 식량 위기와 생태적 삶의 해답은 이미 오래전, 소나무 껍질마저 귀히 여기며 굶주림을 견뎠던 우리 선조들의 눈물겨운 지혜와 발우를 깨끗이 비워내던 수행자들의 절제 속에 있었습니다. 문화는 박물관 유리창 내부에만 머무는 박제된 유물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밥상을 차리고 대할 때 가졌던 생명에 대한 경외와 절제의 숨결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호흡할 때, 우리의 식문화는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얻습니다. 도리깨질 소리와 디딜방아 소리 속에 담긴 근면, 그리고 맑은 물로 밥그릇을 씻어 마시던 절제의 정신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풍요 속에서도 영혼의 허기를 느끼는 현대인들을 치유하고, 굶주리는 지구촌 이웃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미래의 준비입니다. 보릿고개의 모진 슬픔을 이겨내고, 밥 한 그릇에 담긴 생명의 무게를 온몸으로 기억하던 선조들의 거친 손길 속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품격과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맛을 향한 탐욕이 아니라, 밥상 앞에서의 깊은 성찰과 지구촌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시선일 것입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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