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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유감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9일
ⓒ 고성신문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도처에 사람이 넘쳐나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요즘 세상에는 삶의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해 줄 진짜 ‘어른다운 어른’이 참으로 귀해져 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땅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른을 대접하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본래 꼰대란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팔색조처럼 유연하게 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오직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으로 뭉쳐진 노년층을 비하하는 언어로 시작됐다.
어찌 생각하면 욕설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될 뿐 아니라 그 확장성 또한 놀랍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예전에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를 높임말로 어르신이라 부르며,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의 지혜를 존경하고 귀를 기울이던 아름다운 예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늙은이’,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와 비하 발언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시니어’나 ‘실버’ 같은 세련된 외래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만 바뀌었을 뿐, 그 자체에 흐르는 노년을 향한 싸늘한 시선과 소외감을 감추기 어렵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대중적 시선을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태도다.
“꼰대가 무얼 알겠느냐”라며 국민의 신성한 기본 권리인 투표권마저 주지 말자는 식으로 분기탱천하여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정작 눈에 불을 켜고 보게 한다.
“꼰대는 원래 저래”라며 정제되지 않은 혐오의 언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될 때, 평생을 국가와 가정을 위해 헌신해온 노년 세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서글픔과 배신감마저 든다.
꼰대는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늙은이에 불과한 것일까?
일찍이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 예찬했다.
전해지는 얘기로 타고르는 괴테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내 본질이 상의 권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상함으로써 노벨상의 가치가 더욱더 올라갈 것이며, 몇 번이고 사양한 끝에 상을 수락했다고 한다.
세계의 지성인이자 시성인 타고르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였던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고결한 정신적 기상을 바라보며 “동방의 등불”이라 예언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의 고결한 정신세계는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나 천상병 시인의 ‘귀천(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처럼 깊은 울림을 주며 이어져 왔다.
비록 살아온 시대와 삶의 궤적은 다를지라도, 세계적 문장가들이 감탄했던 그 빛나는 민족의 정기를 이어받아 실제로 대한민국은 폐허 속에서 일어나 산업·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서 세계 10대 강국으로 당당히 도약하여 반듯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마음껏 누리고 있는 세계화의 풍요와 자유, 그리고 최첨단의 문명은 사실 그들이 ‘꼰대’라 부르며 밀어내고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하는 할아버지 세대들이 젊은 날 흘린 피와 땀, 눈물로 일궈낸 눈부신 결실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처럼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음에도 정신적 혼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전통 교육은 원래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기본 교육이념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잔인했던 근현대사의 굴곡은 우리의 교육 정신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학생의 98%, 교직원의 100%가 일본인으로 채워진 철저한 식민지 교육기관이었다.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민족의 정통성 어린 성균관을 전신으로 삼아 인의예지를 바로 세워야 마땅했으나, 단지 전통 가치만을 가르쳐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균관을 제쳐두고 경성제국대학을 전신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민족 고유의 인성 교육은 차츰차츰 멀어졌을 뿐 아니라, 효충(孝忠) 사상마저 충효(忠孝) 사상으로 뒤바뀌어 교육해 왔다.
우리 교육의 사상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孝)가 먼저이고 나라에 충성하는 충(忠)이 그 다음인데, 일제강점기 일왕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 효 사상을 말살하고 충을 앞세운 것이다.
지금도 학교나 공원 입구에 큼직하게 세워져 있는 ‘충효비(忠孝碑)’ 비석을 보면, 충이 효보다 앞에 위치하게 된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게 된다. 인간의 도리와 인성이 멀어지고 수직적인 국가주의적 충성만이 강조하게 되다 보니 세대 간의 정서적 교감은 점차 메말라가고 서로를 향한 불신만 깊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젊은 세대와 대화할 때 느끼는 장벽은, 그 어떤 심오한 철학적 난제보다 더 단단하고 허물기 어려운 철옹성 같다. 그것은 바로 ‘세대 차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생각의 벽이다.
그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오해들을 해소하지 못한 채, 우리는 얼마나 더 서로를 등지고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할까.
하지만 갈등의 평행선을 달리기보다, 차라리 삶의 연륜이 더 깊은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을 이해하며 그 세대의 문화와 정서 속에 젖어 들어주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자식이나 젊은이가 개인적인 목표나 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지나온 경험을 잣대로 삼아 “젊을 때는 다들 그런 헛꿈을 꾸지.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해”라며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곤 한다.
이제는 따뜻한 눈빛과 격려를 건네야 할 때다.
“응원할게. 파이팅!”이라는 다정한 한마디와 사랑 가득한 눈빛만 보내주어도 젊은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고집과 아집은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치열하게 노력하며 삶을 바쳐 온 사실은, 하늘도 알고 우리 노년 세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이 굳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노여워하거나 내 방식을 알아달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자존심은 이룩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후대에게 더 넓은 가슴을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한 아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꼰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서글픈 유감(遺憾)을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자. 우리는 여전히 어두웠던 이 땅에 동방의 등불을 켰던 자랑스러운 역사적 주역들이다.
비록 시대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가 잠시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가 온몸으로 겪으며 축적해 온 삶의 지혜와 인내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는 자긍심이다.
젊은이들이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방황할 때,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낡은 훈계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네 꿈을 믿고 나아가라”는 격려의 등불을 다시 한번 밝혀주자. 고집을 버리고 아량과 사랑을 채울 때, 비로소 세간의 꼰대는 존경받는 ‘어르신’으로, 소외된 노인은 지혜로운 ‘시니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노년 세대들이여, 우리가 피땀 흘려 일궈낸 이 푸른 강산을 젊은 세대가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이제는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자.
모름지기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짜 ‘큰 어른’이 걸어가야 할 아름다운 길이 아니겠는가.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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