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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가 이뤄준 느티나무 할매의 꿈 이야기

89세 고령 불구 디카시 작품활동
작품 책으로 엮어내는 게 꿈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6년 06월 19일
↑↑ 영현면 대법리 법촌마을 김용순 씨
ⓒ 고성신문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딸은 시집가면 그만이라던 시절이었다. 빠듯한 살림도 아니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수십 년을 건너뛰어, 소녀는 80이 넘었다. 미용실에서 브로콜리같이 바글바글 파마하는 할머니가 됐다.
그래도 가슴속에는 꿈이 남아 있었다. 세상 소풍 끝나기 전에 글을 써보고 싶었다. 영현면 대법리 법촌 느티나무 할매 김용순 씨는 내년에 구순을 앞두고 있다.
“그때는 다들 아들은 공부 시키고 딸은 살림 시키던 시절 아인가베. 우리집이 영 없는 집도 아닌데 남자형제들은 고등교육도 다 시키고 나는 딸이라 초등학교만 졸업했지. 시집와서는 애들 키우고 먹고 살기 바빠 나는 뒷전이었네.”
5남매를 낳아 아이들 크는 재미를 미처 다 느끼기도 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못 배운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아이들 뒷바라지만큼은 열심이었다. 내내 논밭에 엎드려 살면서도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보면 흥이 났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검정고시라도 볼까, 글을 쓸 수는 있을까 싶었다.
81살이 됐다. 늘 다니던 미용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거리다가 미용실 원장이 문화원에 가면 시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으니 마음이 끓어올랐다.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아야지 싶어서 노인근로, 공공근로 일하고 밭에 심은 농작물 수확해가 장에 가 팔고, 그만하면 열심히 살았지. 늘그막에 내를 위해서 내 꿈도 한 번쯤은 이라야지 싶어서 공부를 시작 안 했나. 그기 그리 재미가 있데. 입학하러 가는데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
그렇게 디카시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 문화원 공부를 권했던 백순금 원장은 고성에서 알아주는 문인 아닌가. 그리고 문화원에서 글을 가르쳐준 정이향 선생도 탄탄한 시 세계가 있는 문인이니, 그리 배운 글이 어찌 재미가 없을까.
“휴대전화만 있으모 어디든지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찍고 내 속이야기 몇 줄 붙이면 그기 시가 된다 쿠는데, 아이고야, 신세계인 기라. 그리 보니 세상 온갖 것들이 전부 글감이네. 밭에 있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글이 막 쓰고 자바가 처음 쓴 기 노령연금이었다.”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에 기초연금 통장 사진을 두고 ‘노령연금아, 너는 효자다, 어김없이 매달 나를 찾아오니까, 너만 보면 기쁘다’라는 짧은 글귀를 붙이니 그게 작품이 됐다.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 삶을 이렇게 남길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나 쓰고 싶었던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겠구나 싶어 신명이 났다. 밤낮없이 밭을 일구느라 쭈글쭈글한 손도 디카시 안에서는 작품이 됐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봄이면 그저 피는 예사롭던 꽃 한 송이도 디카시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굽이굽이 눈물 고개 지나 얼마나 기다렸던가, 내가 꽃으로 필 줄이야’라는 시가 됐다. 지금껏 알던 세상이 달라지는 기분, 그러니까 정말 다시 태어난 기분이 이건가 싶었다.
힘이 안 드는 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해놓고 시 공부하러 읍에 갔다가 밭일도 해야 하고 시장에도 가야 해 종일 종종걸음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겁게 보자니 한없이 즐겁다. 자식들도 구순을 앞둔 엄마가 뒤늦게 꿈을 찾고 행복하다 하니 구순 잔치 겸 작품발표회를 한 해 당겨 열었다.
“굽이굽이 살아온 내 인생을 내가 찍고 써서 느그 엄마가 이리 살아왔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가 자식들한테는 느티나무 아인가베. 이제 나한테도 느티나무가 있다 아이가. 내 꿈, 글 쓰고 싶다던 내 90년 꿈이 이제 진짜가 됐다. 여름 태풍 겨울 추위 이기고 봄 되면 잎 틔워서 그늘 드리우는 느티나무 같이, 행복하게 글 쓰는 할매! 느티나무 할매 꿈이 그늘이 돼서 세상에 바람 솔솔 퍼지면 좋겠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6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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