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삼산면의 산과 골짜기에는 한때 금과 은, 구리 광산이 여러 곳에 있었다. 오늘날 이곳은 조용한 농촌 마을로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곳곳에서 옛 광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갱도가 있었던 산비탈과 채굴의 흔적이 남은 골짜기, 그리고 제련 과정에서 생긴 광석 찌꺼기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 고장의 산업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삼산면 일대는 지질학적으로 경상계 신라통에 속하는 진동 층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이 지층은 과거 화강암류의 관입과 열수 작용을 거치면서 금속 광상이 형성된 곳으로, 구리를 비롯해 금, 은, 납, 아연 등의 금속 광물이 생산되었다. 특히 구리를 중심으로 한 금속 광맥이 발달해 있어 예로부터 광산 개발의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삼산면은 자란만과 접한 해안 지형을 이루고 있어 채굴된 광석을 선박으로 운반하기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산에서 캐낸 광석을 곧바로 바다로 옮겨 실어 나를 수 있었던 점은 광산 개발에 중요한 이점이 되었으며,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근대기에 들어 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삼산면 일대의 금속 생산과 관련된 가장 이른 흔적은 동외리 유적에서 확인된 철 생산 흔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3세기 초로 추정되는 철 생산과 관련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금속 자원을 이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물론 당시의 금속 자원을 다루던 DNA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시사한다, 적어도 이 일대가 금속 자원과 관련된 활동의 무대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광산과 관련된 기록은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가 20세기 초에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1910년 전후로 삼산면 일대는 ‘한국동광상구(韓國銅鑛床區)’라 불릴 정도로 양질의 동 생산지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금속 자원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광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화폐 경제의 확대와 함께 금속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광업은 중요한 산업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삼산면의 광산 개발은 하나의 거대한 광산이 중심이 되는 형태가 아니라 여러 마을에 소규모 광구가 분산된 형태로 이루어졌다. 병산리의 병산 광산은 금, 은, 동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삼산면 광업의 핵심 거점으로 알려져 있었다. 두포리의 진흥광산은 해안과 연결된 갱도가 특징적이었는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갱도를 ‘굴렁포갱’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채굴된 광석은 곧바로 선박에 실려 다른 지역으로 운반되었으며, 당시 해상 운송의 거점 역할을 했다. 미룡리에는 삼화광산과 성지광산이 있었고, 면 소재지 뒷산 중턱에는 여러 갱도가 분포해 있었다. 지금도 용호마을 들판의 토양층에서는 제련 과정에서 생긴 슬래그가 발견되는데, 이는 이 일대에서 광석을 녹여 금속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삼봉리의 삼봉광산과 장치리의 삼산광산 역시 금, 은, 동을 중심으로 채굴이 이루어졌던 광산으로, 이들 지역을 포함한 삼산면 전체가 하나의 광업 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군수 자원과 산업 원료 확보를 목적으로 광산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광산에는 많은 노동자와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마을에는 자연스럽게 시장과 상점이 생겨나면서 지역 경제도 활기를 띠었다. 당시의 번성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광산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토록 화려했던 삼산면의 황금기는 이제 갱도의 차가운 공기 속에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일정 기간 광산이 운영되었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와 국제 광물 가격 하락으로 채산성이 점차 악화했다. 결국, 1970년대 후반에 들어 광산 운영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1980년대 초를 전후하여 대부분 광산이 문을 닫게 되었다. 한때 사람과 돈이 모여들던 광산 마을은 그렇게 조용한 농촌의 풍경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삼산면 곳곳에 남아 있는 갱도와 채굴 흔적, 제련의 흔적들은 단순한 폐광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 지역 산업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광산은 단지 광물을 캐내던 장소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노동자들의 삶과 마을 공동체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광업 유산을 단순히 과거의 산업 흔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산업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아 있는 광산 유적에 대한 기초 조사와 기록 작업을 진행하고, 관련 문헌과 구전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면 삼산면 광업의 역사적 모습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잊혀 가는 광산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고장의 산업사와 생활사를 이해하고, 다음 세대에게 지역의 역사적 뿌리를 전해 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조용한 산과 들 아래 잠들어 있는 광산의 이야기가 다시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