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m의 바다, 그 위에 피어난 소가야의 천년고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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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정기가 천왕산과 무량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곳, 우리 고성은 예부터 하늘이 내린 요새이자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히 딛고 선 이 단단한 지표 아래, 2천 년 전 대양을 누비던 ‘해상왕국 소가야’의 거대한 뱃길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역사를 추적하는 데 있어 지질학적 변화는 가장 정직한 열쇠입니다. 해안 지역은 오랜 세월에 걸쳐 토사가 퇴적되며 해안선이 이동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오늘날 비옥한 평야로 자리한 수남리·동외리·송학리 일대는 소가야 시기 수심 4미터 안팎의 바다였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 가설은 비교적 근대의 기록과 구전(口傳)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군청 뒤편 수남리 ‘대섬’ 부근이 어선들의 대피항이었다는 사실을 지역 어르신들은 기억합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 조또억만 씨는 고성초등학교 시절 “물이 차오르면 책보를 머리에 이고 헤엄쳐 등교했다”라고 50여 년 전에 회고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파도가 발등을 적셨다면, 2천 년 전 고성은 해상 교역의 요충지였을 가능성을 충분히 상상하게 합니다. 고고학적 흔적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동외리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계 양식의 새무늬 청동기(조문 청동기)는 고성이 국제 교류의 접점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남산과 만림산의 토성, 읍성에 중첩된 옹성의 흔적은 이 전략적 거점을 지키기 위한 치밀한 방어 체계를 보여줍니다. 특히 대독리 수원지 절벽에 남은 파식 흔적은 과거 이 일대가 역동적인 해안선이었음을 말해주는 ‘지구의 기록’입니다. 이처럼 고성은 해상 교역과 군사적 요충의 기능을 겸비한, 잠재적 ‘해양 천년고도’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인근 지자체들이 ‘천년고도’의 기치를 내걸고 역사 브랜드 선점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성은 바다와 육지가 교차하며 빚어낸 독보적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지형도 너머, 4미터 아래 잠든 ‘푸른 바다’와 반만년의 흔적을 꿰뚫어 보는 통찰입니다. 고성문화원장으로서, 저는 흙으로 덮인 역사의 지층을 걷어내고 소가야의 기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우리 세대의 책무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 고성의 미래를 여는 네 가지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소가야 해상 실크로드’의 디지털 복원입니다. 동외리 패총에서 송학동·내산리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증강현실(AR)로 재현하여, 고대 무역선이 입항하던 장엄한 장면을 체험형 콘텐츠로 구현해야 합니다. 둘째, ‘공룡–가야–현재’를 잇는 층위적(_badtagsed) 브랜딩입니다. “공룡이 걷던 길을 소가야 왕이 걸었고, 이제 당신이 걷는다”라는 서사를 구축해 1억5천만 년의 자연사와 가야의 인문 유산을 하나의 시간 축으로 엮는 ‘타임 트래블러 고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예술을 통한 정체성의 계승입니다. 소가야 토기의 유려한 문양과 이암 선생의 예술 정신을 도시 디자인과 공공미술에 반영하고, 향토사 아카이브를 체계화하여 지역의 정신적 자산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넷째, 실질적인 ‘체류형 관광 허브’의 구축입니다. 스포츠 전지훈련 인프라라는 강점을 지니고도 숙박·체험 기반이 부족해 방문객을 인근 도시로 보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빈집을 품격 있는 숙박 공간으로 재생하고, 고성만의 미식 콘텐츠를 육성하여 ‘머무는 도시’로 전환해야 합니다. 고성은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과거를 디딤돌 삼아 미래의 문을 여는 도시입니다. 2천 년 전, 수심 4미터의 바다 위를 누비던 소가야의 후예로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문화의 닻을 올려야 합니다. 그것이 ‘천년고도 고성’을 찬란하게 되살려야 할 역사적 이유이며, 우리 시대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6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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