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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의 수호신인 석마 중 가운데 망아지는 2002년 태풍 불던 날 사라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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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쫓고 마을 지키는 석마 이야기
마을을 질러 회관을 찾아 들어간다. 회관 옆에서 마을의 사계절을 지켜봤을 서어나무 아래 두 마리의 말이 서쪽을 향해 서있다. 마을 이름이 생겨난 사연이 여기 있었다.
기웃거리고 있는 낯선 젊은 여자가 보이니 수상했을까. 등 뒤에서 들들들 하는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경계심 반 호기심 반인 목소리가 날아든다.
“누요? 처음 보는데, 우찌 왔소?”
“이 동네가 말 이름 동네 아임미꺼. 말띠해라 캐서 고성신문에 소개할라고 왔지예.”
“신문이라? 맞춤 맞기 왔네. 저짜 저기 석마 아이가. 내가 시집옹께 저기 동네 수호신이라쿠데.”
말은 매끈하지 않고 투박하다. 어찌 보면 말보다는 양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이 소박해서 더 정감 있다. 성인인 남녀 크기쯤 되는 두 마리의 말들을 동네사람들은 마신, 마장군이라고도 한다.
한 마리는 어쩐 일인지 목이 부러져 수술을 받은 탓에 목의 색도 다르고, 옆의 석마보다 목이 조금 더 길다.
이 말들이 언제부터 마을에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두 마리의 말은 누군가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하고, 누군가는 상고시대라 하고, 또 누군가는 제작연대를 알 수 없다 한다. 석마에서 나온 이름들이 동네 이름이 되고 면의 이름이 된 것만 봐도 두 마리의 말이 이 자리를 지킨 것은 꽤 오랜 세월이었을 것이다.
“요가 산이 짚다 아이가. 왜정때만 해도 요게 호래이가 나왔더이라. 사람도 물고 그랬다쿠더라. 아이고 무시라이.”
할매 말씀처럼 아주 오래 전,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과 동물을 해하는 일이 잦았다. 호랑이를 쫓을 궁리를 해봤지만 마땅한 방책은 나오지 않고 동네사람들은 전전긍긍 속앓이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찮게 마을에 들어온 백발 성성한 노인이 “돌로 한 쌍의 말을 만들어 마을 어귀에 세우고 정성을 다해 제를 지내라” 일렀다. 묘책도 없던 터라 마을 사람들은 돌을 깎아 말을 만들어 마을을 들어오는 길목에다 산을 바라보게 세우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비는 제를 지냈다. 희한하게도 그 이후로는 호환 없이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을 달리는 말을 숭배했다. 몇 날 며칠 걸릴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니 대단했고, 백성들은 탈 수 없었으니 더욱 귀했다. 이 귀한 말은 큰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하지만 귀하고 비싼 말이 제물이 돼 남아나지 않을 판이었다. 사람들은 나무나 돌을 깎거나 쇠, 흙 따위로 말 모양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석마가 영험하긴 했던 모양이다. 영남읍지(嶺南邑誌)는 “마암면에 말과 같은 형상을 한 돌이 서쪽을 향해 서 있는데, 사람이 혹 옮기면 갑자기 호환이 일어나고 옛 자리에 안치하면 호환이 바로 그쳐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는데 지금도 완연하다”라고 돼있다. 기록으로 남았을 정도면 허구는 아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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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석마 앞에서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지신밟기로 복을 기원한다. |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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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새끼석마는 어디로 갔을까
여느 시골동네나 그렇듯 참 조용하다. 가끔 소가 목을 빼고 우는 소리나 개가 낯선 이를 경계하며 컹컹대는 소리만 들린다. 어째 회관에도 아무도 없다. 설 준비하러 가셨나.
석마 앞을 뱅뱅 돌고 있자니 또 다른 할매가 실버카를 밀며 지나신다.
“할매할매, 요 석마가 수호신이다 아임미꺼. 그라모 옛날에는 제도 지내고 그리 안 했슴미꺼?”
“와 안 그래. 정월 되모 제관들을 뽑아가 음석들로 장만하고, 그란다. 옛날에는 말한테 초로 캐고, 콩을 한 말 바칬다 쿠더라. 그라모 이 말이 신이 돼가 동네 몬땐 일들은 쪼까냈다 아이가.”
“그라모 이 말이 고마 돌덩어리가 아이고 신이네, 신이라!”
“하모. 수호신이지. 정월 보름에 요서 메구로 막 친다 아이가. 그런데 요 있던 새끼는 오데로 갔으꼬.”
처음 석마는 두 마리였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주민들은 석마 아래를 팠는데 자갈뿐이었다. 석마 한 마리의 목이 부러져 축대 아래에 따로 두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작은 석마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
이후 목을 이어 붙인 석마까지 세 마리가 마치 한 가족 같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마을을 지켰다. 1974년 2월에는 경상남도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2002년, 태풍이 마을에 휘몰아치던 날 밤. 가운데 있던 새끼 석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무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지만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훔쳐 가다니. 마을에서는 새끼 석마를 되찾고자 고성경찰서에 신고까지 했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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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점이 씨(사진 왼쪽)와 딸이 손질한 생선을 볕에 널면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눈다. |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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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존의 지혜와 생명력 넘치는 땅
20여 호 남짓한 마을이라 그런지 사람 만나기 힘들다. 마을회관에도 할매들이 안 계시니 분명 집에 계셔야 하는데 보이질 않는다. 설 앞두고 장에라도 가셨나 싶어 또 골목골목 기웃거려 본다. 낯선이의 등장에 한 골목 개들이 와르르 짖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대문간을 빼꼼 들여다보니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분주하다.
“부산에서 살다가 시어머니가 편찮으신 바람에 고성으로 왔어요. 이곳 석마마을에 와서 보니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좋은 거예요. 밤이 되니 까만 밤하늘에 금빛 별이 반짝반짝하는데, 어쩜,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정점이 씨와 딸은 생선들을 깨끗하게 다듬어 겨울 은근한 볕과 바람에 꾸덕꾸덕하니 말리는 중이었다. 오래된 집은 유난히 마당이 넓고 텃밭이 울타리 안에 있어 요모조모 쓰기가 좋단다.
밤하늘 별빛 이야기를 하면서 별처럼 눈을 반짝이는 정점이 씨는 이사온 날짜인 10월 26일까지 기억한다. 소녀가 따로 없다. 백발이 성성해도 마음만은 불어오는 바람만큼이나 맑고 곱다.
석마마을 정갈한 골짜기 아래에는 석마가 사람들을 지키고, 늙은 나무 사이로 하늘거리는 바람이 아름답고, 그런 바람을 느끼며 별빛에 감동하는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 마을은 20여 호 25명 남짓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우리 마을에는 석마가 제일 유명한데요. 아시다시피 마암면의 이름도 여기 있는 석마에서 나온 이름이니 마암면의 출발이 여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석마 앞에서 제를 지낼 때 밤에 콩을 한 말 바쳤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마을사람들과 면장님까지 와서 함께 제를 올리고 지신밟기도 신명나게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석마마을에서 보냈지만 외지로 나가 살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그래서인지 이 마을이 더욱 푸근하고 따스하지요.
어느 농촌마을이나 그렇듯 다들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 혹시나 편찮으시지는 않을지, 들일하다 지치지는 않을지 늘 걱정입니다. 회관에 하루만 안 오셔도 걱정돼서 꼭 집에 가봅니다.
이장으로서 바라는 점이 따로 있겠습니까. 우리 마을 어르신들 전부 평안하고 무탈하게 병오년 한 해 잘 보내는 것이 최고 소원입니다.
올해는 붉은 말의 해, 병오년입니다. 마암면 석마리, 말이 지켜주는 마을인 우리 석마마을에 올 한 해 어떤 행복이 찾아올지 기대됩니다. 고성군민 여러분 그리고 석마마을 주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