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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19일
ⓒ 고성신문
올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 고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고성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통합보고회가 열렸다.
추위에 굳어 있던 공기가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서서히 풀려나갔다.
개회선언과 인사말 등 익숙한 순서가 이어졌지만, 행사는 단순한 연례 보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지역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상담사·지도사들의 노력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청소년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고는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는 한 아이의 삶을 비극에서 건져내는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날의 보고는 그 자체로 지역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였다.
행사의 분위기를 단숨에 무겁게 만든 것은 고성군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였다.
응답자의 14%가 자해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그중 51.5%가 실제로 시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회가 청소년에게 요구하는 ‘건강함’ 뒤편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스스로의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자해 이유는 ‘나쁜 기운을 멈추기 위해서’(28.8%),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18.8%)가 가장 많았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충동적 행동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공격함으로써 비로소 통제감을 느끼거나, 감정적 혼란을 잠시라도 멈추려 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이 경고하듯, 이 유형의 자해는 반복과 확대 위험이 높아 조기 개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가운데 가장 비통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자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알려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33.9%)였다는 점이다.
이 간단한 문장은 청소년의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말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혹은 말하는 순간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떠안을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어른들의 무심한 조언과 단정적인 말들 “그 나이면 다 그래”, “지나면 별일 아니야”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직시해야 한다.
20년 넘게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학교에서 있었던 갈등, 부모와의 오해, 친구 관계에서의 상처는 종종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섬세하다.
아이들은 문제 해결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의 무게를 함께 들어줄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느끼는 현실은 여전히 심각하다.
상담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스스로 문을 두드리기를 망설인다. 가정에서는 대화가 주로 학업과 생활 지도에 머물고, 학교는 상담보다는 학업 중심의 구조로 인해 위기 학생을 발견해도 즉각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에는 여러 보호망이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사이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감정의 압력을 홀로 견디며, 결국 극단적인 언어로 고통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끼게 되었을까?
그 체념의 책임은 아이들에게 있지 않다. 지역사회, 학교, 가정이라는 보호 체계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정책 이전에, 청소년의 마음을 실제로 받쳐주는 구조적 변화다.
첫째, 일상 속 정서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상담기관이 단독으로 모든 위기를 떠안을 수 없다. 학교·가정·지역센터가 맡아야 할 역할을 명확히 하고,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잇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상담으로 이어지는 절차는 ‘복잡한 행정’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 어른들의 경청 역량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듣는 법을 배우지 않은 어른들이다. 그러나 아이의 말에 섣부른 판단을 덧씌우지 않고, 감정 자체를 인정해 주는 태도는 전문 상담 못지않은 힘을 발휘한다. 부모·교사·지역 어른들을 위한 감정 이해 교육과 짧은 경청 훈련만으로도 청소년의 정서적 안전감은 크게 높아진다.
셋째, 위기 대응망을 더욱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센터와 지역기관이 각기 쌓아온 경험과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야 한다.
조기 발견–연계–개입–사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강화하면, 위기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단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과 지역사회가 센터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청소년들이 “알려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는 말로 마음을 닫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중요한 신호를 놓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 들어줄 거야”라는 경험을 제공할 때 그들은 비로소 절벽에서 발을 떼고 돌아설 힘을 얻는다. 지역 청소년을 위한 울타리는 한 기관이나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공공의 안전망이다.
센터가 앞서 꾸준히 걸어온 길을 지역이 함께 넓히고, 아이들의 마음에 닿는 문을 하나라도 더 열어놓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소용없음’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들리는 지역사회. 그 변화는 오늘 우리 어른이 내는 작은 응답에서 시작된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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