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의 길잡이이자 꺼지지 않는 불빛, 박거수 선생
무량산인 박거수 선생 기념비 제막식
이갑영 전 군수 사재 출연한 충현공원 내
민족교육기관 철성의숙 항일정신 새겨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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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거수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고성읍 덕선리 충현공원이 조성돼 박씨고성군종친회 등 제막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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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읍 덕선리 그느리숲에 철성의숙의 설립자인 박거수 선생의 기념비가 조성,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담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신라오릉보존회 박씨 고성군지부종친회(회장 박용삼)는 지난 30일 덕선리 양덕마을 입구 그느리숲에서 무량산인(無量山人) 박거수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제막식에는 박씨고성군종친회를 비롯해 박거수 선생의 손자인 박준상 씨, 독립지사 명도석 선생의 손자 명인호 씨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제막식을 축하했다. 기념비에는 정해룡 작가가 쓴 비문과 함께 박거수 선생의 일대기가 기록됐다. 박용삼 회장은 “이 기념비를 세우면서 민족의 앞날을 밝히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박거수 선생의 숭고한 교육 정신과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긴다”라고 말하며 “고귀한 정신이 후세에 전해져 지혜와 희망을 주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갑영 전 군수는 “이곳은 고성을 넘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뿌리인데, 지금 우리는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고 죄송스럽다”라고 말하고 “항일독립운동 정신의 근간인 이곳을 후에 기부채납할 테니 군에서 보훈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교육재단에서 후세를 위해 박거수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데도 지원해 주면 좋겠다”라고 요청했다. 박거수 선생은 1908년 ‘사람은 알아야 하고, 알아야만 사람다운 구실을 할 수 있다’라며 철성의숙을 설립해 국은(國恩)·사은(師恩)·부은(父恩) 등 삼은(三恩)을 교육 목표로 삼아, 국권을 회복하고자 교육했다. 1919년 3월 15일, 김구 선생이 조직한 의열단 소속 이주현이 비밀리에 철성의숙을 찾아 교장 박진완의 집에서 배만두, 이상은, 김상욱을 만나 독립만세 의거를 결의하고 독립선언서를 전했다. 이에 박거수 선생은 3월 17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철성의숙과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드는 한편 철성상회에 지휘본부를 두고 거사를 준비했으나 사전에 계획이 누설, 만세운동은 좌절됐다. 그러나 이것을 도화선으로 군내 3·1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배만두·이상희·이진경은 운남기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후 광복군으로 활동하게 했다. 박거수 선생은 옥기환 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도산 안창호 선생과 교분이 있던 명도석 선생의 주도 아래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이익금을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이때 철성의숙이 있던 덕선리의 만석꾼이었던 함안 이씨 집안에도 고종 황제가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게 하는 등, 지역 차원의 독립운동에 일조했다. 박거수 선생은 1928년 3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인 1930년, 철성의숙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될 때까지 22년간 민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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