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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하루 더 행복해질 사람입니다

박명애 씨
고성읍 덕선리, 중국 내몽골자치구 출신
남편 김진두 씨와 결혼 22년차
독립운동가 김형정 선생 손자며느리
새댁 시절 좌충우돌 한국 생활
야무진 명애 씨의 행복 찾기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10월 02일
↑↑ 100년이 넘은 고택을 가꾸며 여전히 알콩달콩한 명애씨 부부의 모습
ⓒ 고성신문
7월 한여름이었다. 중국은 말도 못하게 더웠다. 중국 여행길에 노래 한 자락 했더니 중년의 사내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웬 아가씨를 소개해준다 했다. 이윽고 그 사내가 소개해준다던 아가씨를 만났다. 드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데 자그마한 여인이, 참말 영리하게 생겼더랬다. 그게 김진두 씨와 박명애 씨의 첫만남이었다.

# 내몽골 출신 중국 아가씨, 박명애
“15살이나 차이 나는 남자가 뭐 그렇게 좋았겠어요. 아버지가 소개한 사람이니 믿을만하겠다 싶어 만났지요. 결혼을 하기로 하고, 한국에 가서 서류를 만들어와야 하는데 사람이 소식이 없는 거예요.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싶었지.”
짐짓 기가 찬 말투지만, 남편을 살짝 흘기는 눈과 입에는 미소가 은은하다. 박명애 씨의 아버지는 노래하는 김진두 씨가 어쩐지 미더웠고, 애지중지 키운 딸의 짝으로 삼고 싶어 그날로 중매에 나선 것이었다.
남편 진두 씨는 진두 씨대로 한국으로 돌아와 속을 끓였다. 그동안 먹고 사는 데 큰 걱정 없다고 생각했고 신부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집안 살림을 돌아보니 알던 것과 달랐다. 당장 신부 명애씨를 데려올 수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자신을 원망하다가 그래도 신부를 마냥 중국에 둘 수는 없으니 급전을 마련해 중국으로 향했다.
“3년을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시어머니가 이 집에 혼자 살고 계시니 걱정도 되고 해서 중국에 더 살 수가 없었어요. 와서 보니, 이 동네에 연탄 떼는 집이 세 집인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집이야. 어이가 없었어요. 부엌인들 지금 같았을까요. 싱크대도 없이 가스레인지만 덜렁 있고, 프라이팬이 벽에 걸려있는데 비가 오면 비가 새니 신발이 다 젖었어요.”
2002년, 그때만 해도 명애 씨는 한국말도 못했다. 부모님은 아주 부유하진 않아도 명애씨 남매를 부족함 없이 키웠다. 곱게만 자란 중국 아가씨가 남편 하나 믿고 온 한국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휘황하게 잘 사는 한국과는 달랐다. 안 해본 일이 없다. 공장에도 다니고, 토마토농장에도 다녔다.
내외가 모두 부지런하니 그런대로 먹고 사는 건 지장이 없게 됐다. 진두 씨는 막노동도 해가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남편은 50대에 들어서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심장이 안 좋아 스텐트 시술까지 받고 나니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졌다.
중국은 적게 벌어도 물가가 싸니 저축할 수 있는데, 한국은 ‘쎄가 빠지게’ 벌어도 높은 물가에, 보험에, 세금에, 저축이 쉽지 않았다. 암만 해도 중국보단 잘 살겠지,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결혼 전까지 내몽골에선 아파트에 살던 명애 씨는 비가 오면 신발이 젖는 부엌에서 싱크대도 없이 밥을 지어야 했다.

↑↑ 박명애 씨와 김진두 씨는 2002년 아내의 고향인 중국에서 장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 고성신문
# 결혼, 한국행, 달라진 삶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도 마주해야 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명애 씨는 종종 시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기력이 달리는 시어머니를 구석구석 씻어드리는데 옆의 할머니가 유심히 지켜보다가 시어머니에게 “딸이요?”라 물었다. 시어머니가 딸이 아니라 며느리다, 했더니 그 할머니는 대뜸 “국산 아이지요?”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명애 씨는 “저 수입산입니다. 중국산이에요” 했다. 그 할머니는 “그럼 그렇지. 국산은 이리 몬한다”라고 하더란다. 명애씨는 칭찬이려니, 생각하고 웃어 넘겼다.
박명애 씨는 천성이 긍정적이고 털털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런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참 예뻐했다.
없는 살림에, 노총각 아들 하나 믿고 그 먼 길을 날아온 며느리가 살림까지 야무지게 하고, 밖의 일은 일대로 하니 어찌 안 예쁠까.
“문화나 세대차이는 좀 나요. 중국에서는 볶은 음식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나물을 좋아해요. 가지도 그냥 썰어서 볶으면 되는데 남편은 꼭 쪄서 무쳐 달라 하고, 나는 피자나 돈가스 먹고 싶은데 남편은 고추지짐 먹자 하고. 요새는 남편은 된장국에 밥, 생선 주고 나는 아는 언니들이랑 돈가스 먹으러 가요. 그러니까 마음고생이랄 것도 없어요.”
말로는 고생 안 했다지만 들어보니 한국 와서 지금까지 22년간 명애 씨는 늘 종종걸음이었다. 중국에서는 제사가 없고 청명이나 한식 명절에 성묘 정도 하지만 명애 씨는 돌아서면 제사인 집에서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일하면서 돈도 벌어야 했으니 그 작은 체구에 바삐 서두르며 살았을 테다.
“처음에 한국 와서는 글자도 모르지, 내몽골은 바다가 없으니 생선도 갈치 고등어 말곤 몰랐어요. 차도 탈 줄 몰라서 자전거를 타고 읍에 제사 장 보러 가는데 시어머니가 돔, 민어를 사오래요. 내가 아나. 시장 가서 생선을 얼마나 째려봤던지, 물어 물어서 겨우 생선을 샀어요. 그 무거운 걸 좀 맡겨놓고 다른 장을 보면 되는데 또 중국처럼 누가 덜컥 훔쳐가면 어쩌나 싶어 그걸 이고 지고 집에 와 내려놓고 또 다녔지.”

↑↑ 1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야무진 며느리를 유달리 예뻐했다.
ⓒ 고성신문
# 독립운동가 시할아버지, 김형정 선생
명애 씨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남편 진두 씨에게 아내는 어떤 사람이냐 물었더니 대번에 “영리하고 야무지고 예쁜 사람”이라 한다. 그런데 진두 씨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아내가 한국에 들어온 후 친정에 간 게 겨우 세 번이다. 중국에 한 번 다녀오려면 몇 백만 원씩 드니 선뜻 나설 수가 없다. 2009년에 마지막으로 갔으니 벌써 16년이나 됐다. 이제 연세들도 많으시니 이역만리 오가기 힘들어 영상통화로 얼굴을 봐야 한다.
“그래도 나는 한국 살기가 참 좋아요. 조그만 분식점을 가도 깨끗하고, 버스도 한 명만 타도 제 시간 되면 가잖아요. 살기 참 편해요. 그리고 나는 참 자랑스러운 게, 우리 시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예요. 그게 얼마나 대단합니까.”
명애 씨의 시할아버지 김형정 선생은 1919년 고성의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다. 김형정 선생은 지금의 고성여성친화공간 담소랑에 있던 고성읍 싸전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시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던 곳에 있던 다문화센터에서 외국에서 온 손자며느리가 한글을 배웠으니 이 또한 대단한 인연 아닌가.

# 나는 행복한 박명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 명애 씨는 청실효행대상, 군수 표창, 도지사 표창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성실하다고 소문나 상도 여럿 받았다. 이제 좀 쉬엄쉬엄할 때도 됐는데 몸을 안 움직이면 어쩐지 허전하고 서운해 계속 바지런을 떤다. 불쑥불쑥 부모님이 보고 싶고 고향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집이 여기 있고, 경상도 남자라 다정하지 않아도 늘 마누라가 최고라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이게 행복이지, 싶다.
“사는 게 어떻게 늘 좋고 즐겁기만 하겠어요. 지금 좀 힘들어도 행복한 마음을 갖고 살면 나는 행복하지요. 비가 새는 부엌에서 밥 해먹어야 했던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못할 건 또 뭐예요. 시어머니가 쓰던 멋진 장롱이 있고, 남편이 가꾼 예쁜 정원이 있고,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언제든 마음 맞으면 여행갈 수 있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명애 씨는 오늘도 씩씩하게 출근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 100년이 넘었지만 남편의 손길이 닿아 늘 마루가 반질반질한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꼭 돈이 있어야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 않나. 내가 행복한 게 최고다. 야무진 명애 씨는 하루하루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있다.
/최민화 기자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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