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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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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 늙어가는 고성, 노인 사회참여 현주소 ② 선배시민과 청년이 함께하는 세대공감 ③ 노인, 돌봄을 넘어 지역사회 주체가 되는 독일 ④ 시니어 사회참여 유도해 고립감 해소하는 네덜란드 ⑤ 노인은 No! 건강한 선배시민이 지역 발전 이끈다
체력 저하와 디지털 정보 격차, 돌봄 부담 같은 현실적 제약 외에도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정체성 상실은 고령자 스스로에게도 큰 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생 전반에 걸친 축적된 경험과 지혜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들을 단순 ‘돌봄 대상’으로 머물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일으켜 세울 것인가. 노인의 적극적 사회 참여야말로 경제적·정서적·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세대 통합과 지역 활성화의 실마리가 된다.
# 고령 시민들의 주체적인 삶, 선배시민협회 “노인은 시민이다. 노인은 선배다. 노인은 인간이다.” 2024년 2월, 서울시 종로구에 본부를 둔 선배시민협회는 한 문장의 선언문으로 출범을 알렸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단순한 돌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이 선언은 그 자체로 제도와 사회에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었다. 선배시민협회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고령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모여 만든 민간단체로, 고령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외부가 아닌 노인 스스로의 실천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서 출발했다. ‘선배시민’이라는 새로운 명명은, 연령에 따라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노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노인은 더 이상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닌 시민입니다. 선배시민협회는 이 철학을 중심에 두고, 교육·토론·실천을 3대 축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협회는 창립 초기부터 ‘복지’가 아닌 ‘시민성’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선배시민협회는 단체 중심이 아닌 회원 중심의 자율적 운영 방식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단체의 활동 방향은 실무자가 아닌 회원 개개인의 토론을 통해 결정된다. 이를 위한 교육과 모임은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철학 강독과 공동체 토론 교육이다. ‘인간은 왜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공공의 문제를 어떻게 내 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고령 시민의 사회참여에 필요한 철학적 기반을 다루고 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정기적인 포럼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미미 공론장’은 매달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공개 토론장이다. 참여자들은 실제 지역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발제하고, 시민으로서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한 선배시민협회는 6개 분야의 분과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소득·주거·돌봄 등 생존권 분과, 인권·정책 개선 등 법제도 분과, 마을활동 참여 등 공동체 분과, 세대 연대 활동을 추진하는 후배시민 분과, 문화·건강 등 학습 동아리 분과, 죽음의 권리를 논의하는 존엄권 분과 등이다. 이 같은 활동은 개별 회원들의 경험과 관심에서 출발해 조직되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 기획과 실행, 평가까지 모두 회원 주도 방식으로 운영되며, 이는 기존의 복지 중심 활동 방식과 뚜렷한 차별점을 만든다.
# 이름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 ‘노인’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일찍 살아왔고, 세상살이 지혜를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선배시민’이라는 것은 기존의 노인에 대한 통상적 편견을 깬다. 선배시민과 노인의 가장 큰 차이는 ‘정체성’에 있다. 선배시민은 고령이란 생물학적 조건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권리’를 강조한다. 노인이 수동적인 돌봄 대상이라면, 선배시민은 공동체를 위해 먼저 행동하고 후배 세대와 관계를 맺는 능동적 주체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 지역 활동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11월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선배시민 만남의 날’이다. 수도권을 비롯한 각지의 선배시민 70여 명이 모여, 음악공연, 철학 나눔, 사례 발표 등을 통해 서로의 활동을 공유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직접 둘러보며, 재미와 의미, 학습과 토론, 후배시민을 위한 실천을 모두 함께하는 선배시민들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선배시민협회 유해숙 회장은 “선배시민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언어로 문제를 진단하고, 함께 대안을 만들고, 공동체를 움직이기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권리형 시민활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배시민이 단순한 봉사자나 도우미가 아닌 사회변화의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청년과 노인의 공감 하모니, 다가ON합창단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의 합창 연습실에는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20명과 어르신 30명으로 구성된 ‘다가ON 합창단’이다. 이들은 2025년 3월부터 매주 토요일, 합창을 통해 세대 간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있다. 노인과 청년, 외국인까지 언어도, 나이도, 국적도 다른 이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다. 다가ON합창단은 2024년 시작된 용산노인종합복지관의 세대통합 문화예술 프로젝트다. ‘다가ON’이라는 이름은 ‘다가오다’와 ‘켜다(ON)’를 결합한 것으로, 세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의미를 담았다. 이 프로그램은 HD현대1%나눔재단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며, 복지관 소속 사회복지사와 음악 강사가 전문적으로 연습을 지도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30분, 복지관 강당에는 어르신과 청년, 외국인 참가자 20여 명이 함께 모여 합창 연습을 진행한다.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부르는 경험’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 특징이다. 참가자들은 70~80대의 어르신부터 20~30대의 대학생,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까지 다양하다. 음악을 전공한 이도, 처음 악보를 접한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이 오히려 공감의 시작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가ON합창단은 고령화와 세대 단절, 문화 다양성의 과제 앞에서 이 합창단은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세대를, 문화를, 마음을 잇는 합창단 ‘다가ON’은 바로 그 다름의 한가운데에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합창단 활동을 통해 얻는다. “젊은 애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던 노인들은 “젊은 친구들과 노래하니 기운이 난다”라고 바뀌었다. 합창으로 새로운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가ON합창단은 이 공동체가 세대와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가ON은 ‘잘 부르는 합창’보다 ‘함께 부르는 합창’을 지향한다. 화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고, 박자가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복지관 관계자는 “이 합창단에서는 정확한 음정보다 서로를 향한 존중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습 과정은 늘 웃음으로 가득하다. 청년과 어르신이 짝을 지어 가사 연습을 하고, 외국인 참가자가 모르는 단어를 함께 풀이하기도 한다. 연습이 끝난 뒤에는 함께 간식을 나누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은 도구일 뿐, 진짜 목표는 ‘만남’과 ‘이해’에 있다. 이러한 취지 덕분에 합창단 참가자들은 높은 참여율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관은 참여자 전원에게 자원봉사 인증서와 수료증을 발급하며,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자긍심 있는 사회참여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 2기 활동을 하고 있는 다가ON합창단은 1기 당시인 지난해 11월 정기 발표회를 열어 감동을 선사했다. 지역사회에서 열린 각종 축제나 행사에서도 무대를 꾸미며 외부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 주민에게는 세대 간 어울림에 대한 인식을 넓혀 주고, 복지관의 기능도 ‘지원의 공간’에서 ‘소통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 참가자는 “노인들의 문화활동은 한정적이고, 연령대 역시 비슷한 노년층일 수밖에 없는데 청년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면서 “노인들이 겪는 고립감과 외로움 등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고성을 비롯한 지역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세대 간 소통의 부재와 고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문화적 접근을 통해 세대 통합과 고령자 사회참여를 유도하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이다. 고성군은 2025년 기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38%를 넘는 초고령사회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홀로 거주하거나 마을 내 사회관계망이 단절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선배시민’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지역사회 회복을 위한 실천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최민화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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