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맛나는 농촌, 살맛나는 고성- 식량을 넘어 문화로, 청년들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쌀’
전통자원을 감각적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청년들
쌀과 잡곡에서 출발한 복합 문화공간, 김제 더쌀랩곳간
일제 쌀 수탈의 역사를 향기로운 술로, 군산 술 익는 마을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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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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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 ‘쌀’ 외면하는 농업지역 고성 ② 청년들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쌀’ ③ ‘쌀’이 만든 농촌의 기적, 가와바무라 ④ ‘농촌’과 ‘쌀’도 문화와 관광이 되는 일본 ⑤ 사람이 머무는 고성 만들기의 대안 ‘쌀’
쌀이 이제 청년들의 손에서 지역을 살리는 문화 콘텐츠가 되고 있다. 청년들은 쌀을 매개로 공간을 기획하고, 경험을 설계하며, 지역과 세대를 잇는 새로운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먹는 것을 넘어 만드는 체험, 머무는 여행으로 확장된 쌀은 청년을 불러들이고 지역에 정착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로컬 자원의 재해석이 곧 지역 재생의 전략이 되는 시대, 가장 평범한 자원이 가장 창의적인 콘텐츠가 되는 것이 바로 ‘쌀’이다.
# 쌀, 곡물을 넘어 지역문화콘텐츠로– 김제 더쌀랩곳간 “쌀은 생명의 근간이자 한민족의 문화입니다. 벼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요. 쌀의 진짜 맛과 새로움을 더 많은 분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드넓은 평야, 김제는 풍요의 고장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로 공업이 발달하면서 1995년 13만 명에 육박하던 김제시 인구는 매년 평균 1천700명씩 줄어들면서 2021년에는 8만913명을 기록했다. 다행인 것은 2022년부터 지금까지 김제시의 인구는 8만1천 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고, 20~30대 청년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 중 하나가 ‘쌀’이다. ‘더쌀랩곳간’은 쌀과 잡곡을 소재로 한 로컬 브랜드 복합공간이다. 나진아 더쌀랩곳간 대표는 김제 출신이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 강단에도 선다. 동시에 ‘쌀’을 주콘텐츠로 다양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청년창업가이기도 하다. 나 대표는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7~8년 유학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업도 일도 힘들어지면서 고향 김제로 돌아왔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김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제가 너무 익숙해서 주목하지 않았지만 김제의 가장 큰 자산은 쌀이더라고요. 오랜 유학생활 후라 쌀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숙한 것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 의미있고 재미있는 작업이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하자, 라는 결심이 섰어요.” 나진아 대표는 김제 쌀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해 ‘더쌀랩’을 기획했다. ‘더쌀랩곳간’은 단순한 카페나 곡식의 판매 공간이 아닌 쌀과 잡곡을 주제로 한 메뉴, 체험, 굿즈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 공간이다. 청년 팀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나 대표는 개인적인 경험이 지금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청년 창업자들의 기획 회의에서는 ‘왜 하필 쌀인가’에 대한 질문이 수없이 오갔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더 많은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대표 메뉴인 ‘벼담커피’는 다양한 잡곡을 블렌딩한 커피 음료로, 흰쌀·흑미·현미 등으로 고소한 풍미를 낸다. 이 외에도 인절미 토스트, 쌀 크로플, 감자빵, 고구마빵, 전통 가래떡 등 지역산 곡물을 활용한 메뉴들이 구성되어 있다. 음료나 디저트는 맛도 맛이지만 손님들에게 내어오는 소반차림도 아름답다. 식음료는 고객의 반응을 통해 개선되며, 제품 자체가 실험적 마케팅의 대상이 된다. 더쌀랩은 쌀을 기반으로 한 ‘경험적 마케팅’을 추구하고 있다. 손님들은 쌀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맛보며 쌀이라는 소재에 대한 감각적 접근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공간 안에서 음료를 마시고, 디저트를 맛보며, 쌀 관련 굿즈를 살펴보고, 쌀알로 만든 주얼리를 직접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쌀을 테마로 한 공간이니 전통의 미를 느끼면서도 청년들의 생동감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쌀로 시작해 쌀로 끝나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손님이 들어와서 마시고, 만들고, 토론하고 나갈 때까지 쌀이라는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쌀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쌀음료 만들기, 주얼리 제작, 전통 떡 체험, 잡곡 시식 등이 대표적이며, 폴리머 클레이를 활용한 쌀 캐릭터 만들기 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호응이 높다. 모든 체험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개인과 단체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쌀은 단순히 먹는 곡물이나 식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쌀은 우리 문화의 근본이자 뿌리로서, 그 가치를 재해석해야 합니다. 더쌀랩은 쌀에 감각과 콘텐츠를 입히려고 해요. 이 시도가 결국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더쌀랩은 ‘쌀이 청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힘’을 믿고 있다. 뿌리 깊은 자원이 청년의 시선과 감각을 만나 새롭게 피어나는 가능성, 쌀 한 톨에서 시작한 나진아 대표의 작은 시도는 지역을 바꾸는 큰 움직임이 된다. “지역 주민과 청년들 사이의 관계가 구축되면,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아직 작지만, 우리의 시도가 언젠가는 한국의 쌀 문화에 작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요. 그 가능성을 지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술 빚는 청년들의 지역 실험실- 군산 술 익는 마을 전북 군산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픈 역사가 여전히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지은 건물들과 적산가옥들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군산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관광 콘텐츠가 됐다. 요즘은 청년들을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생겼다. ‘술 익는 마을’이다. 전북 군산 구도심 월명동. 쇠퇴했던 거리에 활력이 돈다. 청년들이 주도해 만들어진 ‘술 익는 마을’은 ‘흑화양조’와 ‘모락’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청년들이 기획하고, 주민과 함께 만들며, 쌀이라는 자원을 감각적인 콘텐츠로 재해석해 가는 실험실이다. 양조를 넘어 체험, 관광, 정착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활동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대표적인 로컬 청년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술 익는 마을’은 2018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조권능 대표를 포함한 청년 4인이 시작한 로컬 프로젝트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다가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사업 모델을 고민해왔다. “군산은 한때 쌀 유통의 중심지였고, 지역 주민 대부분이 쌀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쌀을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문화자산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필요했어요. 이게 양조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복합공간 ‘술 익는 마을’로 구체화된 겁니다.” 술 익는 마을에는 양조기술을 갖춘 청년팀이 상주한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쌀과 누룩, 물의 비율부터 발효, 병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배울 수도 있다. 참가자는 직접 쌀을 씻고, 누룩을 넣고, 발효실을 관찰하며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체험한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로 운영되는 브루잉 프로그램에는 전국에서 청년 참가자들이 몰린다. 일부 참가자는 프로그램 이후 군산에 정착해 주점을 창업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지역 어르신과의 식사, 술지게미 족욕 체험, 로컬 식재료와의 페어링 등 다양한 콘텐츠가 함께 구성돼 있어 단순한 관광 체험 이상의 깊이를 제공한다. ‘술 익는 마을’의 쌀 기반 콘텐츠는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 쌀로 양조한 사케, 술 부산물을 활용한 굿즈, 체험 중심의 목욕 콘텐츠, 브루잉 클래스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제조와 체험, 지역정착과 커뮤니티가 맞물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술 익는 마을’이 운영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모락’이다. 모락은 편백나무로 꾸민 프라이빗 목욕탕으로, 사케 시음과 함께 술지게미를 활용한 족욕과 스크럽 체험이 가능하다. 군산의 역사와 일본식 목욕문화의 요소를 감각적으로 엮은 이 공간은, 정숙한 공간 안에서 술을 느끼고, 몸을 쉬게 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술 익는 마을’은 쌀이라는 전통 자원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대표적인 청년 주도 모델이다. 이들은 쌀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했으며, 그 안에서 청년이 머물고, 사람이 모이며, 지역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김제와 군산의 사례는 쌀이 가진 기존의 식량가치가 문화와 연결되면서 청년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역에 남는 것, 다시 돌아오는 것,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모두의 시작은 아주 익숙한 재료에서 출발할 수 있다. 김제와 군산에서는 ‘쌀’이 청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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