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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사람보다 송충이가 많던 시절 동네 뒷산 소나무들은 초토화되기 일쑤였다. 학교 근처 산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나가면 수업 안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신이 나 어쩔 줄 몰랐다. 언제나 송충이 잡는 할당량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할당량은 아랑곳 않고 장난 치고 놀기에 더 열중했다. 검지 손가락만 한 송충이를 나무젓가락으로 콕 집으면 송충이 입은 톡 터져 파란 물이 튀어나오곤 했다. 뻣뻣한 털이 피부에 닿으면 가려워 못견디곤 했다.
해질 무렵쯤이면 빈 깡통에 선생님 호령이 걱정돼 나무를 잡고 흔들었다. 후두둑 떨어진 송충이는 젓가락으로 집어넣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저녁이면 선생님 앞에 줄을 주루룩 서서 깡통의 송충이를 보여드린다. 그러면 통과한 사람은 미리 파둔 구덩이에 송충이를 들이부었다. 모두가 통과하면 송충이가 모인 구덩이 위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이면 노릿한 냄새를 풍기는 송충이는 타들어갔다.
송충이 잡기는 1960~70년대에만 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실록에 보면 제릉의 송충이 잡기를 여러 번 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태종 3년(1403년) 4월 21일 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송충이를 잡기도 했고, 그 뒤에도 송충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뿐만 아니라 1400년대에도 송충이가 들끓어 정조는 들에 나가 직접 송충이를 잡아 백성들 앞에서 씹어 송충이 잡기를 독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산이나 언덕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버리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병충해 때문이다. 그러면 70년대 그 당시처럼, 당시에 송충이 잡은 것이 지금의 4~50대에겐 추억이듯 요즘의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거리 하나쯤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