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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있는 문해 교육

송정욱 문해교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23일
ⓒ 고성신문
글봄학교 수업이 있는 날은 늘 가슴이 설렌다. 40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이 든다.
글자를 읽고 쓰지도 못하는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문해 학습자들!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참아내며 견뎌온 고통에 가슴이 찡했다. 이분들은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강압에서 해방되고,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먹고 살기가 힘든 시대에 태어났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았다. 먹을 것이 없는 봄철, 쑥을 밀가루에 버무려 솥에 찐 쑥버무리는 그땐 최고의 먹을거리였다. 하루하루의 삶이 극도로 힘들었던 그 시절, 공부는 하고 싶었으나 거의 배울 수가 없었다. 일자리도 기껏해야 남의 집 머슴살이와 식모살이였다. 아주 드물지만 뜻있는 분이 살던 마을에는 야학이라도 연 덕분에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이야 초중등학교 무상 교육에다가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는다. 우리 부모님들의 시대에는 꿈같은 이야기다.
문해 학습자들도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 더구나 여성의 경우 배움도 남녀 차별이 심할 때라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포기한 마음속에 얼마나 큰 아픔과 좌절을 겪었을까? 나도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하루 밥 세 끼를 겨우 해결하던 시절이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 진학을 포기했던 아픈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 속에 묻어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준비해왔다. 그 덕분인지 공직에서 물러난 뒤 바로 문해 교사가 되었다. 꿈을 이룬 성취감은 세상의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과 기쁨을 주었다. 평생 글자를 몰라 애태우다 늦깎이로 배움에 도전해 글자꽃을 피우는 문해 학습자들! 글자를 깨우쳐 배움의 꿈을 이룬 행복한 얼굴에서 문해 교사가 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공직에서 물러나 문해 교사로서, 배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르치는 즐거움은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었다.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해 까막눈으로 살아오다 배움의 끈으로 연결되어 만난 거류초 해오름반 문해 학습자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 자 한 자 글을 배워 읽고 쓰는 모습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다.
 
배움의 한이 글자라는 꽃으로 피어난 어느 늦깎이 학습자의 말과 글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2학년을 마치니까 아부지가 니 이름 석 자는 쓸 수 있으니 학교 그만두고 동생들 돌보고 살림해라”라고 하셨다거나 학교에 못 가고 고추밭에 풀 메는 모습이 창피해 고추나무 뒤에 숨었다는 얘기와 “선생님한테 글자를 배우니 하늘을 날 것 같다”고 할 때 가슴이 찡했다.
“팔십 평생에 배우지 못한 공부를 한다/ 읽고 쓰기를 열심히 하자/ 배움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오직 배움이 나의 소망이다/ 한 자 두 자 배워서 못 배운 한을 풀겠다/ 오늘도 내일도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끝까지 공부하여/ 소설 신문 모든 책을 읽고 싶다”라며 ‘배움이 내 소망이다’는 글이다. 늦깎이 학습자들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거류초 문해 학습자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배움에 대한 간절함을 내면의 고통에 비유해 보았다.

아픈 속살

꿈이네!

학생이란 말은 내 삶의 언저리
어디에도 없었던 아픈 속살

무엇이 되고 싶었던 꿈이 돋아났네

가방 메고 처음 학교에 가던 날
살짝 다리를 꼬집어 보았다

한 자의 글자, 한 줄의 문장을 익히느라
책과 싸우고 공책과 씨름하는 사이

내 생각을 더듬더듬 글로 표현해 보고
꼬불꼬불 마음을 담은 일기도 쓰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아픈 삶의 속살에
학생이란 꽃이 피었네.

내 생각을 글자로 전달하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글자를 배우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일 것이다. 글 공부의 갈증을 해소하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문해 교사이다. 특히 문해 학습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문해 교사이다. 문해 교사도 배움을 함께하며,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문해 학습자들이다. 이런 학습자를 가르치는 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문해 교육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낀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엘프리드 화이트 헤드는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반면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해 보인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라고 했다. 문해 교사는 학습자들 가슴에 불을 지펴 응어리진 배움의 한을 태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문해 학습자 가슴에 배움의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불쏘시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문해 학습자 앞에 선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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