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 설립은 30년이지만, 나는 57년 동안 쇠를 만지며 살아왔다 묵묵히 한 길만을 파 오는 동안 믿음과 신용과 사람을 얻었고, 젊음과 세월을 바쳤다
삼도 설립은 30년이지만, 나는 57년 동안 쇠를 만지며 살아왔다 묵묵히 한 길만을 파 오는 동안 믿음과 신용과 사람을 얻었고, 젊음과 세월을 바쳤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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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인 이도경 무겁고 딱딱한 쇳덩이도 날이 뜨거우면 부피가 늘어나고 추운 겨울이면 줄어든다. 이것이 쇠의 속성이다. 나는 평생을 쇠를 만지며 살아왔다. 나이 17살에 고향을 떠났고, 도시의 공장에서 쇠를 만졌으니 그 기간을 따지면 무려 57년이 된다. 무생물인 쇠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깎고 다듬는 사람의 의도와 손길에 따라 모습과 성질이 변한다. 나는 그 쇠를 어느 순간에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했고 진심으로 만졌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그 쇠들이 나에게 보람이라는 가치를 갚음했다. 나는 정밀(精密), 초정밀, 초초정밀한 프레스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해 왔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의 여러 기업들이 우리가 만든 프레스 기계를 주문하여, 그들이 필요한 제품을 만들고 있으니까. 나는 일흔셋이 된 지금도 기업경영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 그것도 뒷전에 앉아 웬만한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고 중요한 것만 보고 받는 방식이 아니다. 날마다 회사 일을 체크하고 지시하고 계산하고 최종 결심하는 일을 내가 감당하고 있다. 나는 기계 가동을 책임진 공장 기술자에게 수시로 확인한다.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일어나거나 불량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문제 발생 요인 지점을 체크하면 다음 공정은 순조롭게 이어진다. 덕분에 지금껏 기계 가동을 잘못하여 불량품을 만든 적 없고, 원기계의 결함 때문에 제품을 제때 생산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기억이 없다. 나는 일 중독자는 아니지만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키려 하는 기업인이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진두지휘할 수 있는 능력과, 기계에 대한 관심과, 직원들에 대한 믿음과, 회사 사랑하는 맘은 늙지도 지치지도 않으니까.
1994년, 3천만 원의 자본으로 신도시에 공장을 구했다. 1996년, 기계 5대를 놓고 기술을 익혀 제품을 만들었다. 1997년, IMF가 터졌고 다음 해, 휴대폰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1999년, 시화공단의 대지 500평, 건평 280평의 공장으로 이사했다. 2000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고 좋은 인재들을 영입, 인연을 맺었다. 2006년, 창업 12년 만에 산업의 날 ‘300만 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2008년, 산자부에서 전기차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준비하던 계획을 오픈했다. 1. 고향으로 내려가서 공장을 짓자. 앞으로 모든 이동은 택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2. 직원들이 동요 않고 어떻게 지방으로 함께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 3. 연구개발팀은 재택근무를 권유하여 인재 이탈을 막자. 4. 고성 어디쯤에 공장을 짓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어떤 협력을 받을 것인가? 5. 동해면이 조선특구로 지정되었으니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성IC와 인접한 두보식품에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중간에 사람을 넣었고 원하는대로 땅값을 주고 7천 평을 매입했다. 때맞춰 동해면이 조선특구로 지정되면서 부랴부랴 허가를 받고 공장 설계를 마치고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다. 어쩌면 수 년을 걸릴 일들이 단기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공원 묘지에 계신 아버지가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상을 더욱 잘 모시려 하는 마음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내 마음의 기둥이며 우리들의 지붕이 되어 주시는 분이다. 아버지라는 낱말만 들어도 가슴속에 따뜻한 기운이 흘러간다. 우리가 물건만 잘 만들면 시화공단에 있든, 고성에 있든 고객의 발길은 같다. 쇠는 대구에서 납품받으니 오후 4시 안에 주문을 넣으면 저녁 8시 반까지 도착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기술직은 도면을 보고 제품을 만들지만, 연구소 직원은 재택 근무하면서 얼마든지 새로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연구하라는 말은 옛말이 아니든가? 우리 회사가 이미 15여 년 전에 시작한 재택근무는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당연시되었다. 요즘 많은 젊은이가 재택으로 일하고 연구 실적을 낸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자신의 능률이 가장 오를 시간에 집중하여 극대화 시키는 전략으로 일의 성과를 높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2009년 나는 시화 생활을 청산하고 내 고향 고성에 2만2천㎡ 규모 공장을 지었다. 고향에서 ‘삼도’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고성 기업 활성화에 기여하려는 목적이었다. 고성군은 우리 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2008년 12월 지구단위계획을 변경(산업형 2종지구단위계획 변경)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나는 거기에 부응해서 공장 이전을 결정했다. 수도권에서 성공한 기업이 외진 지방으로 내려가서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주위의 의견도 많았으나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프레스 제품은 중량이 많이 나가서 수도권에서 부산항까지 운반하는 데 시간과 운임이 많이 들었다. 부산항을 통하여 수출이 이뤄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부산항과 가까운 고성이 적임지라는 판단이 섰다. 고향에서의 사업 성공으로 많은 출향 기업인들이 다시 고성을 찾게 하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임직원이 얼마나 따라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생활의 편이면에서도 고성은 수도권에 견줄 수 없는 터였다. 나는 공장 이전을 확정 짓고 직원들의 고성 이주를 위해 대형버스를 이용해 고성투어를 실시하면서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연구진, 기술자 등 기존 직원 40명 중 38명의 직원이 가족과 함께 고성으로 이주해 왔다. 이 같은 결과는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이 나의 가족경영의 취지를 이해하고 따라준 결과라고 믿는다. 우리 회사가 그동안 복지 후원은 물론 장학사업을 펼치는 등 직원을 가족과 같이 생각해 왔기에 가능했다고 자부한다. 삼도의 직원들은 보통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삼도대학원 나왔다’라는 말한다. 그 말에는 나에 대한 신뢰와 격려로 한 우물을 지속하여 팠다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 어린 날, 그리고 청년기 동해면 장기리가 고향인 아버지 함자는 이,태,조 이시다. 대가면 세동마을의 부잣집 여식이었던 내 어머니와 혼인하셨고, 나는 맏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두 분 누님이 계시고 두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청년기를 일본에서 보낸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와 신발가게를 열었는데, 어느 해 추석 대목장을 앞두고 부산에서 떼 온 고무신을 모두 도둑맞았고 그 충격으로 쓰러지셔서 몇 년 뒤에 고인이 되셨다. 나는 열일곱 살에 도시로 나가면서 성공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기술자가 되었고, 스물아홉에 공장장이 되었다. 아는 분의 중매로 고성읍에 살던 참한 처자와 혼인을 하고 2녀 1남의 자식을 두었다. 신혼 초에는 어머님과, 두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한 집에 살면서 한 달에 80키로짜리 쌀 한 가마씩 밥을 지었다. 아내는 리어카를 대절하여 가락동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대량으로 식품을 구매하는 방법으로 대식구의 부식값을 절약하고 싱싱한 식재료를 사 날랐다. 4시에 일어나 식구들 밥을 짓고, 청소며 빨래며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살던 아내는 지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지런을 떤다. 그 누구도 아내에게 뭔가를 요청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평생을 두고 익힌 습관을 못 버리고 사는 것이다. 자식 셋은 한 번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모두가 이과를 선택하여 기술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 공부를 했다. 아들은 대기업에서 7년간 근무하여 기업의 생리를 익힌 뒤에 삼도에 입사하여 기획팀을 맡고 있다.
# 장년기의 이도경 인간 사회는 협력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치자. 아침의 커피향을 느끼는 데는 적어도 6개국 이상의 사람들과 그들의 노동이 있기에 가능하다. 콜롬비아의 농부는 커피콩을 재배하고, 브라질의 농부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시골 목장의 소를 키우는 농부는 크림이 풍부한 우유를 짠다. 물을 끓이는 주전자는 중국이나 국내 업체에서 만들었을 것이고, 커피를 내리는데 필요한 전기나 가스는…….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향과 맛으로 혀에 닿는다. 우리가 누리는 커피 한 잔의 행복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에 걸쳐 함께하고 전수한 개념과 아이디어와 발명품에 의존한다. 현대 세계란 일종의 특출한 집단적 기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창업하기까지, 그리고 기계를 주문받아 제작하고 납품하기까지 수많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 협력의 중심에서 사람을 믿었고 기업간의 관계에서 신용을 가장 중요시했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했고 기술과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사용하는 업체의 니즈에 맞게 맞춤제작을 했다. 그리하면 거래처는 다음에도 우리와 계약을 맺고 고정 고객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 과정을 협치, 혹은 파트너십으로 생각하고 상대 회사의 이익 창출에 최대한 노력했다. 상대가 이익을 얻으면 그것은 우리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제품을 만드니까 점점 인정을 받았고 동종업계에서 유명해질 수 있었다.
# 창업 30주년을 맞는 삼도 이도경 삼도는 현재 정밀성은 갖췄으나 고속 생산 능력은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2023년 하반기에는 모터코어 전용 조립동을 준공해 점유율을 50%까지 늘리는 등 미래 먹거리 사업을 활성화 하려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는 새 정부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지정한 탄소 중립, 에너지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수소 자동차의 경우, 상용차 부문에서 미래차로 상당히 각광 받을 것이다. 2025년부터 수소자동차는 20만 대가 도로를 달리게 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수소차 연료전지의 핵심 구성품이 파워팩이다. 이게 전기차의 모터코어처럼 일종의 수소차 엔진이라고 볼 수 있다. 정밀성과 고속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 우리 삼도는 기존의 기술 대비 좀 더 절감된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파워팩을 새로운 먹거리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사만 봐도 윤석열 정부의 미래 먹거리 다섯 번째가 방산 우주산업인데 여기에서도 우리 삼도가 기여할 분야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도 수두룩하고, 50년 이상 된 기업도 많다. 그들에 비하면 30년 역사의 삼도는 청년 축에 끼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얼마나 좋은 말인가? 청년인 삼도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나는 이제 노인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젊은이들이 삼도를 이끌어갈 것이다. 의욕적이고 책임감 있고, 능력 출중한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프레스 기계를 더욱 정교하고 정밀하고 맞춤으로 제작해주길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또한 우여곡절이 없었을까? 인생의 모든 걸음에는 아픔과 상처과 실패와 좌절이 있다. 또한 기회와 위기와 침체와 후회도 있기 마련이다. 그 속에 들어있는 핵심포인트는 기회와 내일이다. 잠깐 방심하면 날아가 버릴 기회를 잡아 내일을 준비하여 새로운 희망을 꽃피우는 것이 인생 길이다. 나 또한 남들이 겪는 일들을 만났지만 그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신용을 믿고, 세금을 정확히 납부했고, 이웃과 사회에 나눔도 인색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정직하려 애썼고, 직원들을 믿고, 자식과 가족을 믿었다. 그 믿음의 힘으로 여기까지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걸어온 것이다. 봄볕이 따스하다. 바람도 유순하다. 아름다운 날들이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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