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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2월 30일
ⓒ 고성신문
한 해가 저문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며, 인간의 삶도 석양처럼 아름답게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네 삶은
렇지 못하다. 풍상을 겪으면서 온갖 오물이 묻어 향기로운 노년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중 인간에게 가장 지저분하고 불쾌한 냄새를 남기는 것은 ‘말’이라는 오물일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국민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은 사건은 ‘이태원 참사’가 아닐까 싶다. 핼러윈 축제를 맞아서 모인 젊은이들이 압사당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는데,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우리 사회에 던져준 충격은 컸다.  세월호 침몰 이후 범국민적으로 외쳐온 ‘재난 대비’는 구호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대처 방법도 허술해 국민에게 비난받고 있다. 직무를 유기한 사람은 꼬리 자르기로 책임을 피해 가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거북이걸음을 하면서,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라고 외치는 유족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사고 후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중에 얼마 전에는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고등학생이 후유증으로 생명을 끊었다. 친구들을 먼저 보낸 자책감도 있었겠지만, 사고 이후 피해자에게 무차별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로 피해자의 슬픔을 달래야 할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도리어 피해자의 상처 난 가슴에 소금을 뿌렸다.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는 잘라 없애야 할 나무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도구를 쓰지 않고, ‘너는 필요 없는 나무야. 차라리 죽어버려!’라고 나무를 향해 크게 소리 지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나무가 시들시들 말라 죽는다. 증명도 어려운 오지 원주민의 주술적인 이야기라서 믿기 어렵지만, 톱이나 칼을 쓰지 않고 말만으로도 능히 살생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형체도 없이 떠도는 것이 말이지만, 전염성이 강해서 한번 뱉어놓으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한 가벼운 말실수는 사과하고 끝낼 수 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뱉은 말은 여파가 크다.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상처가 커서 치유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명까지 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것이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말에 상처 입을 사람들은 안중에 없이 오늘도 여전히 악담을 내뱉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해서 그럴까? 우리 주변에는 해서 안 되고 들어서도 안 되는 말들이 많이 떠돌고 있다. 시정잡배들이 팔 걷고 싸우면서 뱉는 상스러운 말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까지 실언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모습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에서부터, 근거 없는 말이나 남을 비방하는 말이 허다하여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하는 일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말은 죄악을 부르는 열쇠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질병과 죽음이라는 고통 속에 살게 된 것은 아담과 이브가 뱀의 달콤한 말에 속았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우스는 최초의 인간 여성이었던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선물로 주며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의시켰다. 그러나, 말이 ‘주의’이지 사실은 ‘열어보라’라는 유혹이었다. 결국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고, 그 속에 들어 있던 온갖 고통과 악이 세상에 퍼졌다.

이처럼 죄악의 시작이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성경과 신화에까지 기록된 것을 보면 말이 가진 인간의 원죄는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이브의 사과나 판도라의 상자는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인간은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된 사과나 판도라 상자를 ‘말’이라는 열쇠로 여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민초에게는 질병 극복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문제만 해도 힘든 한 해였다. 장삼이사에게 2022년은 다사다난이라는 말도 사치스러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거기에 보태어 ‘상처를 주는 말’까지 많은 시기였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더하여, 정치적 변동기를 맞아 온갖 말들이 떠돌면서 세상을 오염시켰다. 무책임한 말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 날카로운 말로써 양심이라는 상자를 부수고 훼손시켜 버렸다.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적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말들은 많은 사람이 불편하고 안녕하지 못하도록 했다. 

경제적인 불황이나 사고는 세계적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쏴대는 ‘말’이라는 무기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2022년을 특히 ‘안녕’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정치의 탓이 크다. 2022년은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지방선거가 있었던 해였다.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누구나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선거는 선거일 뿐, 선거가 끝나면 승패를 떠나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지했던 정당이나 사람끼리 편을 갈라 입질과 손가락질을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내 편에 불리하면 ‘불순한 세력’이라는 ‘주홍글씨’를 남기는 세상이 참 불편하다.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말은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도구를 잘못 쓰면 관계 악화는 물론이고, 상대방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다. 무심한 나무도 말 한마디에 생사를 달리하거늘 온갖 상념의 유리벽에 갇혀 사는 사람은 오죽하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깨지고 상처 입는 사람이 허다하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상대를 음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악의 없이 던진 한마디 말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 가며 해야 할 것이다.그러고 보니 남 탓만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말은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글’ 역시 문장 형식을 빌린 ‘말’이다. 그러기에 글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특히 지면이나 온라인 서비스에 공개된 글은 공적인 것으로 사회에 주는 영향력이 크다. 그러기에 말과 마찬가지로 책임이 따른다. 능변가가 아니라서 남 앞에 서는 일은 적었지만, 대신 오랫동안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 생각을 담은 글을 썼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제자들에게, 혹은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글을 통해 들려주었다. 

혹시 그동안 써온 글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많은 생각을 하고 조심해서 썼지만, ‘사회 비판’이라는 칼럼의 특성을 고려해 보건대 상처받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행여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간절히 기도한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이, 판도라가 그랬듯이, ‘말’이라는 열쇠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언제든 금기의 선을 넘을 수 있는 유혹의 업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기에 새해에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자고 다짐해 본다. 대부분 ‘안녕하지 못함’의 원인은 말에서부터 나온 사단이었음을 상기하며, 새해에는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세상에 퍼져 있는 재앙을 다시 판도라 상자에 담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덕행과 함께, 말라버린 지혜의 샘이 채워져 이른 시간 안에 다시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저녁놀이 참 예쁜 날이다. 붉은 저녁놀로 그동안 쌓은 부끄러운 악업을 덮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말로 인한 악업을 쌓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이다. 이제 곧 새해를 맞이하는 해가 뜰 것이다. 새해에는 험담보다는 덕담을 나누는 세상이 되기를,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며, 그동안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덕담으로 인사를 대신한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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