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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박물관 맞은편 들판에 우뚝 선 ‘이(Lee) 트리케라톱스’를 만나시거든, 세월과 역사와 사람의 유한한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옵소서

이판철(67세, 고성읍)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2월 30일
↑↑ 마당 한 켠에 돌들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지나칠때마다 만져도 보고 눈길을 준다.
ⓒ 고성신문
고성박물관 앞 들판에 트리케라톱스 한 마리가 서 있다. 허공엔 눈발이 흩날리고 매서운 바람이 들판을 가로질러도 기개와 눈동자는 끄떡없다. 배경이 되는 송학동고분은 세월의 이끼가 덧입혀 더욱 고풍스럽고 단아하다. 눈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끄떡 않는 저 위풍당당함을 보라. 이웃한 박물관은 낮은 자세로도 고고하다. 세월의 빨판을 벽체의 곳곳마다 침묵으로 아로새겨 어떤 사연도 이야기도 강력히 흡입한다. 

말 없음으로도 더 많은 항변을 토해내던 곳이 박물관 아니던가. 백 년을 살아내기 어려운 사람이 말빨과 글빨, 아니 권력과 금력으로 아무리 뻐긴다한들 저들을 당할손가? 감히!

이 공룡은 올해 당항포에서 열린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를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뼈대는 마을 뒷산의 서기나무 3트럭분을 베었다. 전체적인 몸체 나무는 목재상에서 구했고, 작가와 보조인력 2명이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은 작업으로, 길이 24.6m, 높이와 폭이 각각 6.5m인 거대 나무공룡을 만든 것이다. 이(Lee) 트리케라톱스는 고분과 박물관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들판에 서서 고성읍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사실은 고분과 박물관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태어나 오오랜 세월을 살다가 화석으로 남은 존재다. 

그러므로 고분에 묻힌 사람들보다, 박물관의 면면을 채우고 이어오던 사람들보다 수천만 년 전에 태어나 지구를 호령하던 존재인 것이다.인류의 출현 연대를 따져나가면 까마득한 세월의 흔적을 숙연히 짚기나 할 뿐.결론은, 인간 역사의 미미함과, 그에 따른 겸손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이 작가는 손재주가 좋기로 따지면 근간에 따를 자가 없을 분이다. 손재주 뿐만 아니라, 취미와 능력 또한 출중하다.손재주가 좋으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매사에 부족함이 없으련만, 이 또한 사람의 일이라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재주만큼 세상 일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 이익이 없는 일만 골라서 하기 마련이므로. 하여 이 작가의 꿈은 전통문화 계승과 전승 발전에 있다. 현대인이 별로 관심을 가질 사항이 아닌 부분이다. 

그렇지만 작가에게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분야이다. 전국에 있는 명장들을 찾아서 삶을 경배하고, 손기술을 전승받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대업을 이루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한 예술가의 22년 동짓날은, 눈발로 화사하다.

# 농요
이판철은 고성농요에서 도리깨 분야를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도리깨는 나무로 만든 타작打作기로, 벼나 콩의 알곡을 털어낼 때 두드리던 농기구다. 도리깨 분야 뿐 아니라 남은 배역 무엇이라도 소화해야 하므로 항상 대기 상태의 요원이다. 

일 년에 몇 차례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맡은 분야를 담당해야 하는 고성농요의 회원이다. 그가 농요를 시작한 지 12여 년,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선생님들이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시기에 아직도 풋풋한 청년의 기개를 보유해야 한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자주 뛰고 나서야 한다. 

농요이수자란 직함으로 활동하지만 언젠가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꿈꾼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던 도리깨질을 알려주는 일이다. 도리깨를 터는 힘조절과 두드림의 신명과 가락의 맞춤을 잘 버무리는 법을 잊혀지기 전에 전수하고 싶음 때문이다. 고성농요에도 여성 이수자들에 비해 남성 이수자가 드물다. 경제적인 보상도,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일에 뛰어들어 시간과 능력을 저당 잡히려 하지 않으니까. 하여 그는 요즘 밤마다 장구를 두드린다. 완벽한 공연을 짜려면 저마다의 자리가 있지만 인원 구성이 힘들다. 

그는 도리깨질이 끝나면 장구를 치고, 북을 두드려야 한다. 누군가의 빈 자리를 채우는 일, 허술하지 않은 춤판을 메우는 일, 온갖 허드렛일을 챙겨야 하는 일이 그이 몫이다. 그렇지만 불평도 불만도 없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니 매번 활기차게 움직이고 신명나게 춤춘다.

# 물레
그가 물레를 만든지 10여 년이 넘었다.농요에 등장하는 수많은 농기구 중에서 물레는 여성들이 베틀에 앉아 실을 뽑는 과정에 필요하다. 대부분의 농기구들이 나무로 만든 것이라 수 년을 사용하면 낡고 닳고 헐렁해지기 마련이다. 손잡이가 빠지고, 가락이 훼손되면 물레의 몸체 또한 무너진다. 하여 손재주 좋은 그가 물레를 만들게 되었다.수 십년 전 물레의 가락을 연결하던 재료는 쇠였다. 

쇠는 산화하면서 부식한다. 삭아서 쇳가루로 떨어져 내린다. 그런 점을 보완하고자 그가 만든 물레가락은 스텐이다. 스텐은 변질되지 않는 물질이다. 궁금증이 많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는 또 흙을 이용하여 도자로 물레도 만들었다. 그런데 손잡이를 돌리고 계속 부딪혀야 하는 물레의 재료로 도자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도 보기엔 좋았다. 몇 군데 의뢰를 받아 실험적으로 가마에 구운 도자로 물레를 만들었다.

최근에 그는 안동시 삼베 박물관에서 의뢰한 가락을 5개 만들었다. 지역마다 가락의 길이가 4~5센치가 길거나 짧다. 안동포 국가문화재 박물관에서도 가락을 주문했고, 원하는대로 만들어 배송을 마쳤다. 지역마다 물레의 미세한 부분들이 다름을 발견했다. 그런 자료를 찾아 지역 특성에 맞는 물레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물레는 수십 개다.

지난 여름에는 트리케라톱스가 섰던 이웃에 커다란 나무 물레를 만들어 세웠었다. 연이어 11월에는 목화시배지인 산청에서 ‘이판철 물레 개인전’을 열었다. 목화로 실을 뽑기 위해 물레를 잣는 일은 필수다.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에서 열린 전시회기에 더욱 뜻깊었다. 그리고 지금 고성박물관에는 그의 물레 10여 점이 합동 전시 중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특별하고 예스럽고 멋지고 매력적인 물레를 만들 수 있을까?

일반인들이 돌려보고 싶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물레의 원형은 무엇일까? 날마다 고민하며 모형을 찾아가는 그는 물레에 미친 장인의 모습이다. 

# 돌
그가 돌을 만난 건 오래 전이다. 변하지 않는 돌의 본성에 매료되어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나라에 수석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도 모은 수석들을 다듬어 전시회에 내 놓기도 했지만, 그는 작은 돌보다 큰 돌을 더 좋아한다. 그의 정원에는 바다에서 건져온 몽돌과 바위들이 세월을 비켜선 채 계절마다 식물들과 조화를 이뤄 살고 있다.그는 돌을 볼 때마다 그 돌을 만나던 인연의 장소와 시간들을 기억해낸다. 

‘내가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물속 깊이 떠내려가서 뻘에 파묻혔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 등짐을 져서 겨우겨우 건져온 몽돌의 매끈한 몸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인도로 수석을 찾아 떠났다가 벼랑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건져낸 몽돌 5형제는 나란히 쌓여 그의 정원을 꾸며주고 있다.그는 모친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그가 22살 되던 해 부친이 돌아가시고 혼자 되어 4녀 1남을 키우신 모친은 여장부셨다. 막내인 아들 하나를 애지중지 아끼고 돌봐주신 분이다. 소 돌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모친의 산소를 고인돌처럼 꾸몄다. 인근의 석재상에서 크고 넓적한 바위를 구해, 기둥돌 두 개를 바치고, 그 아래 모친의 유골함을 모셨다. 사방 어디를 봐도 고인돌 무덤이다. 

오해할까봐 한 번 더 말씀드리건대, 결코 고대 유물인 우리나라 고유의 고인돌이 아닌, 최근에 자신의 손으로 만든 고인돌처럼 생긴, 본인 취향의 모친 무덤이다. 그가 거류산에 돌탑을 쌓은 일은 유명하다. 미륵불까지 가는 길에 돌들이 많았고, 그들을 모아 한 개 혹은 수십개를 쌓아서 돌탑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미륵불을 찾을 것이고, 오고 가는 길 심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근처의 돌을 주워서 이렇게저렇게 돌탑을 쌓을 기회를 가지라고.돌탑 아래 서운하지 않게 꽃무릇을 심었다. 3년째인 올해 꽃무릇이 제법 피었다.

씨를 흩거나 뿌리를 심으면 배반하지 않고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우고 잎새를 틔우는 식물들이 어여쁘다. 한 줌, 혹은 한 톨의 흙만 있어도 식물들은 씨앗을 묻어 꽃을 피운다. 새 생명을 틔우는 경이로움을 돌탑이 지켜본다. 그리고 응원의 기운을 준다.그렇게 모든 것은 함께 한다. 돌탑이, 꽃무릇이, 산도라지가, 약숫물이, 그가 깎은 목탁이.

# 목수와 농사
그는 20대 초반에 목수 일을 시작했다.농사를 지었으나 먹고 살기에 막막했고, 천성이 부지런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는 농번기가 끝나면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나무를 만지는 일이 그에겐 안성맞춤이었다.나무를 베고 삶고 말리고 켜고 다듬었다. 대목보다는 소목이 맞았다. 혼자서 주물럭거리고 뚝딱거리며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었다. 교자상을, 삼층장을, 서랍장을 짰다. 이웃집 대문을 만들어주고, 울타리를 고치고, 정원을 꾸며주었다. 그는 잠시도 쉬는 사람이 아니다.

작년까지 십여 마리 키우던 소를 다섯 마리로 줄였다. 농사를 지으면 부산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짚이며 콩대며 옥수숫대를 그냥 버릴 수 없으니 소를 키운단다. 마당 한켠의 마굿간은 위생에 철저를 가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기 마련이다. 그는 왕겨와 친환경 원료를 이용하여 마굿간 관리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송아지를 몇 마리 팔았다. 그 돈으로 둘째 아들 혼사 비용에 보탰다.그에게 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물레를 만들다가 허리가 뒤틀리면 마굿간에 와서 소의 큰 눈망울을 들여다 본다. 그는 소의 말을 알아 듣는다.‘우리네 인생은 웃음도 눈물도 교대로 찾아오는 계절의 이어짐이니 평온하라’는 그 말을. 

 # 자식, 그리고 내일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군인인 큰아들은 강원도에서 상사로 근무한다. 몇 년 전 결혼하여 손주를 안겨주었다. 경찰인 작은아들은 얼마전에 혼인하였고 특공대 소속이다.아 들이 하사받은 칼을 거실에 걸어두었다. 아들이 마치 곁에서 아비를 지켜주는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부모 맘은, 자식들이 짝을 맺어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둘 다 배필을 만나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고 있으니 다행이다.그에게는 전통문화의 발굴, 전승이라는 과제가 있다.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꾸는 꿈이다. 올해부터 전국을 다니며 물레와 도리깨의 장인들을 만나는 중이다. 가까운 곳에 사시는 최영도옹을 만나 그 옛날 농기구와 사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을 해 두었다.누군가의 삶을 채록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농기구의 내력을 기록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어울렁더울렁 함께 살아가면서 내 것이 아닌 듯도 한, 그렇지만 우리 모두의 것인 삶을 회람한다. 어제와 내일을 물레를 잣듯이, 도리깨를 두드리듯이 보내고 맞는 것이다.
↑↑ 남외경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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