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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섬 제주, 바다에서 삶을 일구는 해녀문화와 칠머리당영등굿

2천 년을 거슬러 문화의 꽃을 다시 피우는 역사도시 고성
2009년 칠머리당영등굿, 2016년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제주 특유의 공동체 문화, 정체성 담은 유산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11월 11일
↑↑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당영등굿 모습
ⓒ 고성신문
↑↑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신 영등할망을 환영하고 송별하는 과정을 통해 평안을 기원한다.
ⓒ 고성신문
↑↑ 제주해녀문화는 제주의 독특한 여성경제활동이자 정체성을 상징한다.
ⓒ 고성신문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제주의 신은 모두 1만8천이라고 한다. 제주의 중심이자 시작인 한라산과 크고 작은 섬, 오름들도 ‘설문대 할망’ 설화로 엮여있다. 여자들의 섬이자 이상향이었던 이어도는 제주 어느 바다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제주해녀문화와 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 바람과 풍어 기원하는 칠머리당영등굿
바람신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제주에 온다. 영등할망은 정월 그믐 우도에 들어가서 2월 초하루부터 조개를 따먹고는 우도 바다에 먹을거리가 떨어지는 2월 보름쯤이면 질진깍을 떠났다. 영등할망이 다녀간 2월 보름 이후에는 소라, 전복 등 어패류의 속이 텅 비어있다고 한다.
이 영등할망은 자칫 잘못하면 화를 내는데 그럴 때면 바람을 일으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파도를 몰아치게 한다 하니 바닷일 하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영등할망은 화내지 않게 잘 모셔야 하는 바람신이다.

영등할망이 오는 달은 ‘영등달’이라 하고, 이 바람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영등굿으로 할망의 오가는 길을 맞이하고 배웅한다. 영등굿은 제주해녀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영등굿은 크고작은 규모로 해안마을 곳곳에서 열리지만 그 중 칠머리당영등굿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돼있을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
굿이라 하면 무당이 주축이 되니 흔히 미신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등할망의 화를 잠재워 바다의 평온과 풍작,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은 제주의 정체성이자 뿌리인 해녀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인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 환영제와 송별제로 영등할망 오가는 영등굿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에서 열린다. 건입동은 제주 어민들의 전진기지다. 원래 영등굿을 하던 자리는 건입포구 본향당이었지만 포구공사로 인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음력 1월 영등환영제, 2월 14일 영등송별제 2회에 걸쳐 행해진다. 영등신 즉 영등할망이 올 때쯤 영등환영제를 하는데 환영제에서는 신령을 부르는 의례인 초감제로 시작해 풍어제, 조상신을 즐겁게 하는 연희인 석살림굿 등 3개의 연희가 진행된다.
 
조개를 다 먹은 영등할망이 떠날 때쯤인 보름경에 열리는 영등송별제는 환영제보다 규모가 더 크다. 술과 떡을 차려놓고 용왕을 맞이하는 요왕맞이, 수수의 씨앗으로 점을 치는 씨점과 해조류의 씨앗을 뿌리는 씨드림, 마을노인들이 짚으로 만든 배를 바다로 보내는 배방선, 영감놀이 행사가 이어진다. 송별제 역시 초감제로 시작하지만 여기서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남녀 부부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이 마을의 사당으로 들어오는 본향듦 의례가 진행된다.

영등송별제에서 주민, 선주들은 “떠나시면서 고둥, 전복, 낙지, 해삼 등의 씨를 뿌려 주시어 바다에 의지하여 사는 저희가 풍성한 해산물을 수확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하고 영등할망에게 기원한다. 이 과정을 통해 바닷일을 하는 제주사람들의 평안과 무탈, 소원을 빈다.

# 제주사람들이 주축인 공동체문화
현대화와 함께 ‘굿’은 미신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그러나 제주 어부들은 심방(무당)과 함께 깊은 계곡, 바다 근처 동굴 등을 찾아 치성을 드렸다. 영등굿은 바다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표현하는 의식이다. 굿은 무당이 주도하는 것 같아도 실은 주민들이 주축이 되는 공동체 문화축제다.
 
한때 영등굿은 사라질 뻔했다. 초대 기능보유자 고 안사인 선생이 여러 심방과 협회를 조직하며 노력한 덕분에 영등굿은 제례로 인정받으면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다. 이어 1986년에는 보존회가 정식단체로 인정되면서 칠머리당영등굿의 생명이 되살아났다.
 
안사인 선생이 세상을 뜬 후 1995년 김윤수 선생이 제2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세습무집안으로 10대 시절 신병을 앓은 후 신을 받아 심방이 된 김윤수 선생은 지난 9월 별세했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매년 양력 3월 영등굿은 물론 정기공연, 전수교육 등을 통해 영등굿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 특유의 해녀 신앙과 민속신앙이 녹아있는 무속의례이자 제주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위안의 방식이다. 제주의 독특한 문화와 의례를 보여주는 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4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제주해녀들
제주는 유독 여성공동체가 발달한 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다.
해녀삼춘(제주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어른에게는 삼촌이라 부른다.)들이 물속에서 솟아올라 휘유~ 숨비소리를 내뱉는 모습은 경이롭다. 산소마스크도 없이 10m 물속에 거침없이 들어가 전복, 성게, 문어 같은 것들을 망사리에 담아올라오는 것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큰 농사를 지을 만큼 땅이 기름지지 않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주지역에서는 논농사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해녀들의 물질은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30대부터 80대의 해녀들은 특별한 산소공급장치도 없이 잠수해 1분 정도 숨을 참으며 물질한다. 제주바당 곳곳에 떠있는 주황색 테왁은 해녀들의 섬이다. 그들은 하루 최대 7시간, 연간 90일 정도 물질을 하며 생계를 꾸린다.
 
해녀들은 물질능력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나뉜다. 오랫동안 물질해 기량이 뛰어나고 암초나 해산물도 잘 아는 상군해녀들은 중·하군 해녀들을 지도하며 해녀들을 이끈다. 해녀들은 물질 기술만이 아니라 해녀 공동체의 규칙과 책임감, 해녀문화에 대한 지식도 함께 배우고 지킨다.

물질을 할 줄 안다고 해서 무작정 해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어권은 마을 어촌계가 독점하니 물질하기 위해서는 어촌계에 가입하고 해녀회에도 회원 자격을 얻어야 한다. 나잠어업인으로 등록돼있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물질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해녀가 될 수 없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공동으로 사업을 위한 수익을 창출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을에 학교를 지을 예정이라면 이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바당이라 이름 붙인 일정한 구역에서 물질해 소득을 공동으로 모아 사업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이는 해녀의 공동체 정신, 연대와 조화의 정신을 보여준다.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에 물질이 길어지면 생명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숨만큼 해산물을 채취해야 한다. 이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질서이기도 하고 제주바당의 자연생태환경을 유지하는 채취활동이기도 하다.
한 해녀회는 공동체가 함께 잠수일수를 결정하고 작업시간과 채취 가능한 해산물의 최소크기를 정하는 것은 물론 남획 방지를 위해 특정 기술 사용은 금지하는 등 물질 기준이 까다롭다. 자연에 순응하고 공존하며 제주바당에서의 삶을 지혜롭게 일구는 해녀들의 삶이 그렇다.

# 해녀, 제주의 생명력과 정신의 상징
제주해녀는 할머니에게서 어머니,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진다. 지금도 제주 바닷가 마을은 가족 중 해녀가 없는 집이 없다. 사람이 아가미를 달고 태어나지 않으니 물질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60년대 이전 제주의 소녀들은 물질이 당연한 삶이겠거니 여겼다. 얕은 바다, 일명 애기바당이라 불리는 곳에서부터 물질을 배웠다. 그러나 제주 역시 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섬을 떠나거나 학업을 통해 진로를 택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해녀의 수는 급속히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해녀문화가 중요한 것은 제주사람의 정체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황색 테왁을 생명점으로 삼고 거친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해녀는 제주도민의 생명력이자 정신의 상징이다.
오랜시간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나잠어업은 무명옷에서 전문업체가 제작한 해녀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외지인도 교육을 받고 해녀를 할 수 있다. 10~20년 전만 해도 제주사람 아니면 제주바당에서 해녀로 물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섬 특유의 공동체를 외지인이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대로 이어져오는 물질은 생업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니 가볍게 알려줄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제주해녀는 부산은 물론 독도연안까지도 물질을 나가곤 했다. 지금은 사라진 독도강치와 제주해녀가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때로는 물질을 나간 지역에 정착하기도 했다. 부산 영도 주변에서는 아직도 제주어로 대화하는 해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제주 이외 지역에서의 물질 기술은 필요에 의해 제주 해녀가 전수해준 것이다.

# 민관이 함께 지키는 제주해녀문화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2016년이다. 그러나 등재를 추진한 시점은 그보다 10년 앞서있다. 중간 어느 시점에서는 관심이 줄어들어 추진력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다. 10년을 공을 들인 후에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들려온 등재 소식에 세계인의 관심이 이 독특한 나잠어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이미 2007년부터 제주 해녀를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여성경제활동영역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목표로 삼았다. 여성정책 중기계획을 수립하고 잠수어업인 즉 해녀를 위한 사회복지계획 마련에 나섰다. 이때부터 해녀문화 전수조사와 생태마을 지정, 잠수굿과 불턱, 해신당 등 해녀와 관련된 장소나 공간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내 해녀는 제주시 3천137명, 서귀포시 2천483명 등 5천620명이었다. 이 중 60세 이상인 해녀가 63%로, 해녀들 역시 급속한 고령화를 겪으며 숫자 그래프가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세계유산 등재와 함께 보존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형편이었다.

2009년에는 제주도 해녀 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조례가 발의돼 입법예고됐다. 조례에는 도지사가 해녀 문화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 발굴·조사·연구사업과 해녀어장 보호·관리, 해녀 관련 무형문화재와 민속자료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등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해녀문화 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해녀의 날’을 지정하는 등 해녀문화를 꾸준히 홍보하도록 했다.

2011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보존 및 전승위원회를 구성해 제주해녀문화 세계화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 2013년에는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 한국대표 종목으로 선정돼 2014년 3월에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이런 노력은 결국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로 돌아왔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제주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하며,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해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제주도는 제주해녀문화보존을 위해 지금도 수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녀학교를 통해 전문적인 해녀교육시스템으로 해녀를 육성하는가 하면 해녀들이 물질 전후 불을 피워 몸을 녹이던 불턱, 탈의실 등의 시설들을 개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귀포수협 등에서도 해녀학교 지원에 나서며 민관이 함께 제주해녀문화보존을 위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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