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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내 삶의 모든 기억은 사진으로 刻印되어, 저 푸르게 일렁이는 물결에 反影으로 남은 것을 자유인이란 명찰을 달고, 이 시대의 휴머니스트로 살고 싶소

이규인(77세, 고성읍 출생, 통영 거주)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28일
↑↑ 작업장에서 바라보는 통영 바다는 수 많은 사연을 담고 오늘도 잔잔하다. 지나는 배들 중에 내가 팔았던 엔진은 몇이나 될까?
ⓒ 고성신문
↑↑ 2018년 서울에서 열린 물방울 개인전 포스터 사진이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천분의 이십초로 촬영하여, 다시 백단위로 늘어뜨려 정교하게 표현한 기법이다.
ⓒ 고성신문
↑↑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사진. 마른 연잎과 연줄기를 반영을 이용하여 이미지화 시킨 작품이다.
ⓒ 고성신문
가을볕이 꼬솜하다. 천지간에 내리는 볕살이 눈을 찌를 것 같다. 송학동고분군을 등에 업은 박물관 지붕에도 여문 가을볕이 공평한 햇살을 나눔하는 중이다. 가을은 뭐니뭐니해도 전시회가 일품이지. 고성박물관 1층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고성지부 회원들의 전시가 열리는 중이다. 미리 받아본 책자에서 눈에 띄는 사진을 발견하고, 이걸 찍은 분이 매우 궁금해서 한달음에 달려 갔다. 팜플렛에서 본 사진을 제일 먼저 찾았다. 

요모조모 뜯어보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봐도,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봐도 여전히 매력적인 사진이다. 흑백의 형상과 선은 있는데, 사진 특유의 색채와 그림이 없다. 이미지 속으로 보는 이의 관심과 의식을 강렬히 끌어당기는 사진이다. 작가의 작업실은 통영바다가 훤히 내려다 뵈는, 전망 좋은 5층에 있다. 1층 입구에 걸린 두루미 사진이 한 점, 작업실 바닥에는 제법 큰 돌들이 나란하고, 벽면에는 자그마한 수석 몇 점이 놓인,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이다.그 속에 앉아 계신 사진작가는 한 점 이미지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이 사진 속, 한 인물인 듯 싶었다.

# 사진은 언제부터 찍으신 겐가요?
규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사진을 찍는거 아니겠소? 눈에 형상을 담고, 그걸 기억하고, 좋았던 일, 행복했던 사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평생 뇌에 새겨서 꺼내보는 일을 하잖소. 태어나면서부터 기록하고 있는, 나만의 머릿속 앨범에 간직된 모든 그림이 바로 사진이오.

# 이번 팜플렛의 사진은 언제부터 찍으셨고, 형상은 무엇인지요?
내가 카메라에 담은 사진은 대체로 주위의 평범한 일상, 아름다운 풍경, 사물의 움직임이 대부분이지만, 그 형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소. 혼신지의 연밭에서 시든 연잎과 꼬부라진 줄기를 파노라마로 찍었고, 그 이미지들을 하나씩 확대하여 재촬영 기법을 쓴 거요.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한지는 30년이 넘었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려고 날마다 생각 하며 살고 있소.사진은 많이 찍어 연구를 해야 하오. 포토샵의 기술 또한 잘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오. 예를 들면, 일출과 석양을 찍을 때 수평선에 닿는 해의 그림자 아래에 어리는 모습을 ‘오메가’라고 부르오. 오메가를 찍어 그대로 현상하기보다 변화를 주면 다른 형체의 사진이 될 수도 있는 거라오.

# 특히 반영(反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흔적이 남잖소. 나는 그 흔적이 반영이라고 생각하오. 어딘가에 남기는 그림자는 물체의 또 다른 모습이며 쌍둥이처럼 닮았소.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비춰지는 것이 묘한 균형도 있고 안정감을 준단 말이오. 반영 부분이 이어질 때의 형체도 독특한 그림이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소. 이번에 출품한 두 점도, 반영을 잘 살린 작품으로 보면 되오.

# 선생님의 물방울 작품에 대하여 말씀 좀 해 주세요.
나는 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오. 그대로 멈춰서 있는 생활이 싫소. 새로운 사진 작업을 찾아 헤매던 중 독일작가의 물방울 작품이 본 적이 있었는데, 몇 년 전 불꽃 찍으로 장산에 올라갔다가 이웃에서 사진을 찍던 분이 물방울 사진을 보여주는 거요. ‘바로 이거다!’ 싶었소. 그 자리에서 전번을 따고 찾아갔소. 제발 사진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빌었소만, 그 분이 쉽게 알려줄 리가 만무하지 않소? 

돌아와서 몇 년 동안 엄청 공을 들였소.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부산 사시는 그 작가님께 수시로 안부를 드리고 통영에서 나는 제 철 해산물을 매번 보내드렸소. 몇 년을 그렇게 했더니 ‘당신 정성에 감복했소. 내 기술을 전수해 드릴테니 더 발전시켜서 당신만의 사진을 만들어 보시오!’ 라고 합디다. 물방울 사진은, 과학이 접목된 정교한 기술의 새로운 기법이라고 보면 되오. 기계에서 물방울 세 개를 시차를 두고 떨어뜨리오. 

물방울이 천분의 이십 초, 천분의 사십 초 사이에 떨어지는데 그 속도를 정밀 촬영하고, 천 단위를 백 단위로 늘어뜨리면 연결동작이 선으로 나타나게 되오. 그것을 연결하여 물방울이 퍼지는 모양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 물방울 사진의 촬영 기법이오. 이 사진은 실내에서, 기계와 나와 카메라와 물방울이 사위일체(四位一體)가 되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요. 정밀하고 세세하게 물방울이 튀는 동작 속에서 이미지를 잡아내야 하기에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오. 

# 물방울과 반영, 그리고 연꽃과 연줄기의 이미지 사진은 지방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기법인데, 사진작업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그 정신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 나이도 적지 않소. 나는 아직도 현역으로 사업을 하고 있소. 사업 외의 시간은 늘 관찰 중이오. 내 작업장 베란다에 앉아서 배가 어떻게 달리나? 저 모습을 다른 형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날아가는 새들, 출렁이는 물결, 불어오는 바람, 걸어가는 사람, 공원의 나무들, 계절의 변화, 구름의 모양, 해가 뜨고 지는 모습, 세상의 온갖 풍경을 낱낱이 관찰하면서 시간의 변화를 읽고 있소. 물체의 피동, 지나간 자국, 그런 것들 속에서 흔적으로 남는 의미를 찾아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오. 내 삶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일하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작업하면서 사진 작가로의 삶을 살아가겠지요.

# 작업장에 들어설 때, 사진은 한 점도 없고 수석만 눈에 띄어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고성 토중석을 처음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 나요. 그 이야길 하려면 긴데…….내가 삼십대에 고성에서 ‘빵집겸 음악감상실’을 열었었소. 그 때 고성 처자들은 우리 빵집에 다 몰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많았소. 그러다가 내가 서른 세 살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빵집 운영도 시들해진기라. 하루는 선배가 대가저수지에 낚시를 가자고 합디다.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저수지만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지겹지가 않아요. 낚시를 시작했으니 바다, 배, 민물낚시까지 모두 섭렵을 했지요. 

나는 세상 만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오. 낚시하다가 심심하면 주위를 살피게 되었고, 돌이 눈에 띄입디다. 강가나 바다에서 돌을 앞뒤로 뒤집으면 이상한 모양의 돌도, 묘한 무늬의 돌도 만나게 되어, 그걸 주워와서 요모조모 뜯어보며 이름을 붙이곤 했어요. 고성 토중석도 그렇게 찾아낸 돌이요. 회화, 마암, 구만, 개천면에 토중석이 많이 났소 . 수석을 하면서 내 삶과 인생이 변화되었소. 차분해지고 단단해졌다고나 할까? 

돌이란게 그렇잖소. 늘 한결같은 모양으로 제 자리를 지키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하는거. 돌에게 마음을 빼앗겨 지금도 날마다 돌을 만지고 닦으며 살고 있소. 저 무늬석은 하동에서 온 게고, 저 단풍석은 한산도에서 온 게요. 돌을 찾아 온 세상을 돌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을 보았으니 그렇게 쌓은 체험들이 사진 촬영에 도움이 되더이다. 이 세상에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는 법이오.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야 무엇인가를 획득하고 얻는 것이지요.

# 돌과 사진과는 전혀 다른 사업(비지니스)을 하신다면서요?
선박 엔진 판매를 하고 있소.통영에는, 지나가는 남자어른 10명 중에 7명이 수산업에 종사하오. 그 7명 중에 5명은 나와 거래하는 사이고, 5명 중에 2명은 내게 외상값이 있는 사람일게요. 내가 통영에 판 엔진만 해도 수백 대는 될 거요.내 아들은 ‘경남마린파크’란 얀마엔진대리점을 하고, 나는 ‘볼보펜타코리아 통영거제고성 대리점’이란 간판을 걸고 엔진을 공급 중이요. 선박 건조 시에는 새 엔진을 넣는 것이 원칙이요. 

예전에는 중고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법이 바뀌면서 새 엔진만 설치하게 되었으니, 이 지역에서 새로운 선박을 건조하면 내게 연락이 오고, 나는 그 배에 맞는 엔진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소. 1983년 5월에 사업자 등록을 낸 뒤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니 어언 45년이 되었소. 배가 지나갈 때 나는 엔진 소리만 들어도 저걸 내가 설치했구나, 저건 무슨 제품이며 몇 마력 정도인지 훤히 꿰뚫을 정도가 되었소.

한 때는 우리나라 배 엔진(볼보)을 단기간에 제일 많이 판매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소. 영업장소와 영업비밀을 묻기에 이렇게 했었소. 본사에서 나온 그 분을 사우나로 모시고 갔던 기요. “나는 여기서 영업을 하오. 발가벗고 앉아서 마주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만 보이는 거요. 거짓없는 이 모습으로 서로 거래를 하자고 말하면 믿어주는 게요.” 그 분은 “굳 아이디어!”라고 칭찬하더만, 본사에서 세미나를 할 때 교육생들에게 나의 사례를 들려주곤 했다는 말을 다른 이를 통해 듣기도 했었소.엔진을 판매하면서 홀딱 벗은 그 모습으로 거래를 했소. 지금도 마찬가지요. 사람은 비밀이 많거나 꿍꿍이가 있으면 언젠가는 들키기 마련이오. 한 번 뿐인 인생에 뭘 숨기고 꼬불치고 살거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제일 편하고 진실된 것이요.

# 이번에는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내 부친은 해운업을 하셨고, 모친은 진주간전을 졸업하고 마산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결혼하시었소.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내가 두 살 무렵, 부친이 돌아가셨소. 모친은 살길을 찾아 친정인 고성으로 오셨고, 조산원 자격증이 있으셔서 ‘구산파’를 열었소. 여든이 되실 즈음까지 산파 일을 하셨으니, 모친이 받아낸 신생아가 수천명이 될 거요. 나는 열 살 무렵부터 모친을 거들었소. 

“인아, 쌀과 미역과 마른 홍합이 든 봉다리 갖고 온나!” 하시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전해드렸소. 모친은 힘들게 출산한 산모에게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먹이셨소. 모친은 103세가 되시던 3년 전에 돌아가셨소.

스무살이 될 무렵,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군에 입대하여 부산 반여동 조병창에서 원스타이던 창장님의 운전병으로 복무하다가 제대를 했소. 군대에서 딴 ‘사회운전면허증’으로 택시업을 시작하여 쏠쏠히 재미를 보았소. 그 돈으로 ‘동래자동차기술운전학원’을 열었는데 망했소. 

형님이 전자고등학교 교사로 계셨는데, 부산에서 전파사 붐이 일 때 고성에도 곧 도착할테니 그 일을 해 보라고 권했소. 고성에 TV 보급을 쏠찮이 하고나니, 다른 일에 눈이 뜨였소. 그동안 대형면허까지 7개의 자격증을 땄는데 포클레인 운전을 의뢰받은 거요. 현대건설에서 포클레인을 도입, 구포다리에서 함안구간까지의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일에 투입되었소. 낮에는 도로 만드는 일을 하고, 밤이 되면 다른 곳에 가서 일도 했소. 돈벌이가 됩디다. 하여 그 돈으로 고성에 와서 집도 새로 짓고, 빵집도 내고 한 게지요. 

#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 思惟의 지평을 한번 열어 보시지요.
나는 가만히 있는 성정이 아니오.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무엇인가를 활동적으로 해 나가면서 살았소. 조용한 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태풍이 요동치는 중이요. 그 속에는 돌도, 엔진도, 물방울도, 사진도, 사람도 모두 들어 있소. 또한 나는 승부근성이 있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처럼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지독함이 있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업을 했지만 그 일들은 모두 연결고리가 되어 이어지는 것이요. 군대에서 일병 때 운전면허증을 땄고, 운전과 관계된 몇 가지 사업을 했고, 연이 닿아 엔진 판매와 설치업을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소.낚시를 하면서는 바람 불고 태풍 오면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서 돌을 주웠소. 

돌을 주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다가 유태수 선배를 만나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웠던 거였소. 지금은 한국 사진계의 거물이 된 유태수 선배를 뒤따르다가 나만의 사진, 내 이름을 걸 사진을 찍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다가 물방울을 만나게 된 거요. 그리고 다른 기법을 찾아 노력하니까 반영을 이용한 선이 굵은 이미지 사진까지 나온거요.

# 3년 뒤 작가님은 어떤 모습이실까요?
지금의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거요. 돌을 다듬고 사진을 찍고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헤매는 노인이겠지요. 아직도 마누라는 내가 철이 덜 들었다고 타박하며 웃습디다. 끊임없이 밖으로 나도는 나 때문에 얼마나 애를 끓이며 살았을지 짐작은 가면서도, 여전히 밖으로 나도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사진 작업이란게 새벽에 찍을 풍경이 있고, 저녁에 어울리는 촬영이 있고, 외국에 나가야 건질 사진이 있고, 철마다 다른 모습을 찍어야 하고, 어떻든 밖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니까! 평생 남편 어깨에 둘러맨 배낭과, 사진장비와 뒷꿈치만 보고 살아온 할멈한테 미안하고 고맙지요. 할멈이 든든히 지켜주었기에 아들은 내가 했던 엔진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미국에서 교수인 사위를 내조하면서 딸도 나름대로 사업을 확장하며 잘 지내고 있다니 모두가 감사한 일이지요.남

들은 딸이 자주 찾아와서 알콩달콩 잘 지낸다 할 때 부럽기도 하지만 ‘딸 맛을 제대로 못 봤다’고 투정하고 싶지는 않소. 지들이 본인 인생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부지런히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게 아니겠소?3년 뒤에도 새로운 사진 기법을 찾고 있으면 좋겠소. 한번 왔다가는 인생, 고인 물처럼 사느니,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소. 영원한 자유인이란 명찰을 달고, 이 시대의 휴머니스트로 기억되면 더 바랄 게 없겠소.
↑↑ 남외경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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