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18 09:38:1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칼럼

당항만, 국가 정원의 꿈을 꾸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21일
ⓒ 고성신문
당항만은 고성만, 자란만과 함께 고성을 대표하는 만(灣)이다. ‘당항만’이라는 지명은 ‘당목나루’라고 불리던 ‘당항포’에서 나왔다. 당항포는 닭의 목
럼 생긴 지형 때문에 ‘닭목’ 혹은 ‘당목’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당항포로 바뀌었다.
당항만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파한 당항포해전 때문이다. 당항포는 장군의 승전 중에 유일하게 두 번의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군사 주둔지인 ‘군진’, 왜병을 잡았다는 ‘잡안개’, 왜병의 피로 물들였다는 ‘핏골’, 적에게 불빛이 보이지 않는 동네라는 뜻의 ‘불막등’, 적이 관찰할 수 없게 앞이 막혔다는 ‘압개골’ 등, 인근에 승첩과 관련된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된 남해는 전쟁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기 좋은 곳이었다. 장군이 승전한 옥포를 비롯하여 사천, 한산도, 부산포, 명량, 노량은 모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은 모두 한 번의 전투로 끝난 데 비해 당항만은 2회에 걸쳐 전투가 벌어졌다. 그만큼 당항포가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술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같은 장소에 두 번이나 찾아 들어온 왜군의 행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런 역사적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설화로 전해지는 기생 ‘월이’ 이야기에 남아 있다. 무기정 기생 월이가 당항만에서 소소천을 거쳐 고성만으로 물길이 통하는 것처럼 일본 첩자의 지도를 고쳐 승전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왜군을 속였다고 ‘속싯개’라고 불렀다는 당항포 앞바다의 지명과도 관련이 있다. 이처럼 왜군이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특이한 지형을 가진 곳이 당항만이다.
당항만의 지형은 다른 만에 비해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만은 바다 쪽으로 트인 U자 형태이지만, 당항만은 바다가 육지로 휘어져 들어가 둘러싸인 형태를 하고 있다. 동해면의 좁은 바다 입구를 지나면 넓고 긴 호수 같은 지형이 펼쳐진다.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숨어 있는 바다’이다. 거기에 주변에 거류산을 비롯하여 철마산과 구절산이 당항만을 에워싸고 있어 바람이 불어도 큰 파도가 없는 호수 같은 지형이다.
당항만에는 이순신 장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항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당항포는 공룡 엑스포가 열리는 주무대이다. 당항만 일대에 산재한 중생대 지층에는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당항포는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라기보다는 공룡축제의 장소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새겨져 가고 있다. 승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엑스포를 계기로 해양스포츠를 비롯한 레저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관광지 및 휴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당항만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봄에는 다양한 색깔의 꽃을 즐기고, 여름에는 푸른 바다에서 요트를 탈 수 있고, 가을에는 연인과 함께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겨울에는 호젓한 바닷길을 걷다가 근처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시는 낭만이 있다. 특히 당항만의 절경은 해돋이와 해넘이이다. 호수 같은 바다 위로 붉게 물든 노을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황홀하다. 이처럼 당항만은 언제 가도 좋고,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당항만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고성의 숨은 보물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가 있고, ‘월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공룡’이라는 주제가 있고, ‘갈대숲과 철새’라는 환경이 있다. 바다와 강을 모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인근에 거류산의 유담 둘레길이 있고, 철마산과 구절산의 절경이 덤으로 있다. 거기에 거류면 고인돌과 간사지 다리가 있고, 해양국가 가야의 면모를 보여주는 내산리 고분군이 있다. 당항만을 둘러싼 아름다운 바닷길은 빼놓을 수 없는 도보여행 코스이다. 어디서 이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갖춘 곳을 찾을 수 있으랴.
하지만 당항만에도 큰 약점이 하나 있다. 마동호가 당항만 허리를 잘라 버린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를 방조제가 막고 있는 모습은 흉측스럽다. 마동호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당항만에 담수호를 만들기로 하고 2002년 말에 착공하였다. 사실 당시는 물 저장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농업용수 확보는 절실한 문제였다. 그러나 착공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담수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찬성론자들이 말한 예언도 맞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한 번꼴로 물 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의 말은 거짓 예언이 되었고, 도리어 농지 감소 등으로 당시보다 농업용수 문제가 심각하지도 않다. 물론 언젠가 닥칠 물 부족 시대를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물길을 막지 않고도 물을 저장하는 기술적 방법이 많이 있다. 결국 마동호 건설은 미래를 보지 못한 짧은 생각이 불러온 재앙이 되어 버렸다.
당항만의 문화·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때, 당항만의 물길을 막은 것은 큰 잘못이다. 이럴 때 진퇴양난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참 난처하다. 물론 이제라도 물길을 틔울 수도 있겠지만, 주민들의 거센 부정 여론이나 거대한 권력이 나서지 않고서는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대로 두자니 지역 발전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걸림돌이 된다. 마동호 방조제가 있는 한 당항만을 온전히 활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어 행정은 또 하나의 실수를 했다. 마동호 습지를 국가 습지보호지역으로 뒤늦게 지정한 것이다. 갈대숲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간사지 일대는 일찍부터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런데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축사와 태양광 시설 난립으로 마동호 주변 환경이 훼손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보호지구로 선정하는 뒷북 행정을 했다. 그 과정에서도 당항만 전체를 보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마동호 습지만 관광 상품 개념으로 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허상이다. 환경 보호 차원이라면 몰라도, 특정한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갈대숲과 철새를 보러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까? 소수의 관광객만으로 고성 경제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올 6월 지방 선거 때 몇몇 후보가 당항만 일대의 발전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철회하거나 유보하는 일이 있었다. 당항만과 고성만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고, 습지보호지역 일대에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화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재원 마련의 어려움과 습지보호 지구의 개발 제한 때문에 더 이상의 의견 개진은 힘들었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다. 어쩌면 고성의 미래가 당항만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얼마 전 ‘고성포럼’에서 군민 세미나를 통해 제안한 ‘동양의 지중해, 고성 당항만권 관광개발 방향’은 획기적이면서 합리적인 방안이다. 당항만을 경상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남해안 관광벨트의 거점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항만의 장점을 잘 살려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있는 정원화 사업과,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당항만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 정원 조성에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정원은 두 곳이다. 순천만과 태화강으로, 순천만에는 바다가 있고, 태화강에는 강이 있다. 그러나 당항만은 강과 바다뿐만 아니라 정원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어 국가 정원의 최적지이다. 그러기에 전 주민이 뭉쳐 큰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중해(地中海)는 대서양에 딸린 육지 속의 바다이다. 지도를 펴고 보라. 당항만의 지형을 보면 지중해와 쌍둥이처럼 빼닮았다. 가히 동양의 지중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잘만 가꾼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관광객이 찾아오는 ‘동양의 지중해, 당항만’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당항만을 국가 정원으로 만든다면 인구 소멸의 도시 고성의 회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21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