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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이름을 사는 세상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9월 08일
ⓒ 고성신문
포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강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전라도 쪽으로는 특별한 연고가 없어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강진 인근에 있는 해남은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라 아주 낯선 곳은 아니었다. 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지척거리라 행사를 마친 후 이전에 들렀던 어느 절을 잠시 찾았다. 청춘 남녀가 밀어를 나누며 걷던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신혼부부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사찰이 아님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곳이다 보니 처음 방문했던 40년 전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유원지나 관광지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있었다. 흙냄새를 맡으며 걷던 오솔길은 포장된 큰길이 되어 있었고, 집사람과 손잡고 훌쩍 뛰어넘던 도랑에는 돌다리가 생겼다. 그뿐만 아니다. 여기저기에 이전에 못 보던 석상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긴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잘못된 것일 것이다. 흘러간 세월만큼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못 보던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주변 풍경이 달라진 것이야 백번 이해하더라도, 새로 만든 석물에 다닥다닥 새겨 놓은 글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돌다리 난간에, 혹은 석상 옆에 줄 긋기 하듯 촘촘히 새겨 놓은 이름표는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치형 돌다리의 아름다움이나 석상 부처님의 온화한 표정보다 남의 눈에 잘 보이게 배치한 이름표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나는 석물이나 건물마다 ‘내 것이요.’ 하는 것처럼 새겨 놓은 시주자의 이름이 마치 문패처럼 보여 남의 것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쑥스러웠다. 물론 부처님에게 바치는 시주 행위를 탓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신도도 아닌 사람이 믿음에서 나온 행위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도 아니다. 선한 행위에 이름을 새김으로 원래의 순수한 취지가 퇴색되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에서 하는 소리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름을 새기더라도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흔적을 남겼다. 믿음을 기부금으로 표시하더라도 불전함에 넣거나 시주 장부에 남기는 정도였다. 소망 기와는 지붕에 얹는 것으로, 소원 등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헌금의 의미를 끝냈다. 설사 이름을 적더라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기에 일부러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복장(伏藏)’이다. 절에 하는 가장 큰 불사(佛事)는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다. 불상을 만들어 기부하는 것은 신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어서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힘들었다. 그 정도의 큰 금액이 들어가는 기부라면 주변에 널리 알리고 뽐낼 만도 하건만 시주자는 불사의 의미와 이름을 부처님의 가슴 속에 넣어 숨겼다. 헌금의 선한 마음을 부처님만 알면 된다는 뜻이다. 일반인이 불상을 대할 때 부처님만 보이지 불사한 사람의 이름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돈 없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배려하던 세상이, 불과 몇십 년 만에 돈 많음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돈으로 이름을 사고파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이 없는 사람은 친구 모임에도 들어가기 주저되는 세상이 되었다. 물질 만능주의를 좇는 한국인이 만든 자화상이다.
얼마 전에 외국의 모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에 ‘돈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가 1위를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권력이든 뭐든 영향력을 돈으로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돈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고, 심지어 법적인 잣대까지도 금전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돈 없는 사람은 작은 죄를 지어도 큰 벌을 받고, 돈 있는 사람은 큰 죄를 지어도 모르는 체하거나 작은 벌로 액땜해 준다. 특히 최근 뇌물 공여와 횡령을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모 기업인이 사면(赦免)된 것을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그냥 나온 말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본주의의 생리가 그러하니 세상이 변했다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다만, 작은 모임의 대표 하나도 돈이 없으면 맡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 슬플 뿐이다. 친구를 만나는 동창회나 갑계 모임도 돈이 없으면 참석하기 불편하다. 빈손으로 참석한 사람은 친구들 얼굴 보기 부끄러워 후원금과 기부자의 이름이 적힌 책자를 뒤적거리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기 일쑤이다. 친구들 모임도 그러한데 이름깨나 알려진 사회단체는 오죽하랴? 물론 단체의 전문성을 따져 선택되고 봉사하는 예도 있다. 그러나 재력의 비중을 따져 회장을 선택하는 단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돈으로 이름을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얼마 전 지역의 꽤 알려진 공익 단체에서 회장 선거를 두고 ‘금전’과 관련된 구설이 있었다. 회장에 출마한 한 후보가 거액의 헌금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가 당선되었다. 물론 헌금 약속이 선거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당선 후에 언제든지 조직 발전기금이나 사업을 위한 후원금을 낼 수 있건만, 하필이면 선거를 두고 헌금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휩쓸린 것이다. 당선을 목적으로 한 의도적인 발언이었는지, 아니면 조직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실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맨 것이 되어 버렸다. 돈으로 이름을 사는 세상에 살다 보니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당선된 후보는 재력과 관계없이 회장직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덕망과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그런 발언을 해 스스로 자기 능력을 평가절하시킨 것이 안타깝다. 진정 조직 발전을 생각했다면 명패를 걸어놓는 ‘보여주기’보다는 가슴 속에 슬그머니 담아두는 ‘복장(伏藏)’을 선택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수 회원이 선택했다고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회원도 있다는 소리가 있어, 행여 옥에 티로 남아 4년 임기 내내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미 끝난 선거 결과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보다는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과 특출한 조직 운영으로, 돈으로 이름을 샀다는 오해를 불식시켰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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