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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을 거슬러 문화의 꽃을 다시 피우는 역사도시 고성 8.] 살아있는 불교 정신이 꽃피운 위대한 문화유산

현대 기술을 뛰어넘는 선조의 지혜 대장경과 장경판전
세계유산의 가치를 국민과 함께 향유하는 해인사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끈질긴 설득과 외교적 노력으로 이룬 등재 성과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8월 12일
▣ 글 싣는 순서
① 역사와 문화의 가치, 세계문화유산도시 고성
② 자연과 사색, 깨달음이 있는 한국의 서원
③ 과거부터 미래까지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 한국의 갯벌
④ 5천 년 전 인류의 소리를 품은 고인돌유적
⑤ 천 년의 하늘이 들려주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경주
⑥ 다시 피어나는 역사의 숨결, 백제역사유적지구
⑦ 수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⑧ 살아있는 불교 정신이 꽃피운 위대한 문화유산
⑨ 600년 조선왕조의 역사가 잠들다, 조선왕릉
⑩ 조선의 정신을 깨우는 종묘와 종묘제례악
⑪ 민초 설움 풀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광대들
⑫ 춤에 담은 한반도의 정신과 가치, 처용무와 강강술래
⑬ 정조의 원대한 꿈이 깃든 성곽의 도시, 수원 화성
⑭ 우연의 순간이 빚어낸 아름다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⑮ 바다에서 삶을 일구는 제주의 해녀문화와 칠머리당영등굿

↑↑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2007년 유네스코 기록유산, 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사진제공= 해인사 대장경연구원)
ⓒ 고성신문
산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형과 무형의 문화적 전통을 지속하고 있는 살아있는 불교 유산이다. 불교문화재는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국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16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21개, 세계기록유산은 15개로 모두 52개가 지정돼있다. 이 중 불교 유산이 7개다.

#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년), 장경판전(1995년)
고려시대 불교경전을 집대성한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고 정확한 불교경전이라 불린다.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다. 잘 알려진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앞서 최초의 팔만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의 목판을 교체하기 위해 제작됐다. 세계의 대장경 중 가장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장경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또한 대장경을 보관하는 전각인 장경판전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95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긴 장경판은 모두 8만1천350개다. 두 개의 큰 전각과 작은 두 개의 전각에 나눠 보관되고 있다. 경판 하나의 무게는 약 3.5㎏, 크기는 가로 2척 3촌(약 70㎝), 세로 8촌(약 24㎝), 두께는 1촌 2분(약 3.6㎝)이다. 경판 하나에 약 640자라고 하니 해인사에 보관된 장경판에는 모두 5천200만여 자가 새겨져 있는 셈이다.
오롯이 부처님의 공간이라 일반 스님들조차 출입이 쉽지 않았던 장경판전이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연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지금은 해인사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토요일과 일요일 장경각을 방문해 스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대장경을 직접 볼 수 있다. 법보이자 세계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팔만대장경을 국민과 함께 향유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현응 주지스님의 결단이었다.
대장경은 고려시대 국가사업으로 남해에서 제작됐다. 고종은 불심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장경을 만들라 명했다. 글자를 새기기 편하도록 너무 단단하지도, 글자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너무 무르지도 않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먼저 갯벌에 묻었다. 2년 이상 지나 꺼낸 나무들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이번에는 소금물에 삶았다. 이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해 나무가 마른 후에도 뒤틀리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가공했다. 목재 마련에만 3년이 걸렸다.
다 만들어진 대장경은 강화도로 옮겨 강화산성 서문 밖 대장경판당에 보관됐다가 1398년 해인사로 옮겨왔다.
경판 내용의 완전성, 정확성, 판각기술의 예술성과 기술성 등을 볼 때 세계에서도 독보적이다. 실제로 인쇄하는 데 사용하는 원판이니 글씨의 좌우는 바뀌어있는데도 5천만 개가 넘는 글자들은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일정한 구양순체다.
경판 좌우의 볼록한 손잡이 형태는 판을 쌓거나 꽂아도 글자가 각인된 부분이 맞닿지 않는 데다 통풍까지 효과적이어서 판의 훼손을 최소화했다.
별다른 장식이나 기교 없이 세운 소박한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지금까지 600년동안 변함없이 보존한 기술이 담겨있다. 장경판전은 가야산에 위치한 해인사 건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인 데다 서남향이다. 태양의 고도나 일조량을 따져보면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고 겨울에는 빛이 충분히 드는 장소다.
마주보는 두 개의 큰 장경판전은 창문이 아래위 두 줄씩 나있다. 남쪽 장경판전은 아래쪽 창문이 더 크고, 북쪽 건물은 위쪽 창문이 더 크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이 창문을 통해 동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건물 내부로 들어와 돌면서 공기를 순환한다. 책장인 판다는 건물의 가로와 같은 방향으로 배치해 공기가 판가를 따라 흐르게 된다. 이 자연스러운 공기 순환 방식으로 경판이 틀어지거나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닥 또한 조상들의 건축 기술과 지혜가 담겨있다. 소금과 횟가루, 숯을 깔아 실내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해충의 침입도 막아준다.
해인사에서는 대장경과 장경판전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연구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대장경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모은 경장, 계율을 모은 율장, 율장의 주석과 해석 모음인 논장 등의 삼장을 일컫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목차, 보유문헌 등을 알려주는 대장목록과 보유목록 경판이 포함돼있어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경전 기록이 사라질 경우 해인사 목록경판을 바탕으로 다시 보충할 수 있었다. 해인사 대장경은 17세기 이후까지도 동아시아 한역 대장경 조성 과정의 핵심자료였다. 중국의 불교 연구가들은 불경 연구를 위해 해인사 대장경을 참고했다. 특히 일본은 장경판을 가져갈 수 없으니 수시로 해인사에서 인경본을 구해갔다. 1912년부터 1925년까지 제작된 일본 신수대장경도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바탕으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두고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세계 불교 경전 중 가장 중요하고 완벽한 경전”이라 했다. 장경판전을 두고는 “대장경의 부식을 방지하고 온전한 보관을 위해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보존과학의 소산물”이라 평가했다. 두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완전성, 진정성 등에서 독보적임을 인정받았다. 세계의 불교 연구자들 역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정확성, 우수한 문화적 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고창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모두 7개의 사찰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2018년 6월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들 7개 사찰은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종교활동과 의례, 강학과 수행을 위한 공간이자 토착신앙이 공존하는 ‘승가공동체’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흔히 산속에 있다. 이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한 결과다. 그 이전에는 도시에도 사찰이 많았으나 숭유억불 정책의 시행 이후 도시의 사찰들은 대부분 강제 폐사됐다. 그러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포함된 7개의 산사들은 지금까지도 본래의 형태와 기능, 특징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음치유를 위한 템플스테이 등으로 절집을 찾는 일반인들도 늘어나면서 새로운 역할에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산지승원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은거지이기도 했다. 공주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와 선생이 머물던 백범당이 있다. 백범당 뒤쪽 명상길을 따라 가다 보면 백범 선생이 머리를 깎고 은거했던 백련암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해 일본군 장교를 처단, 살인죄로 체포되자 탈출해 마곡사로 향했다. 이후 하은당 스님을 스승으로, 원종이라는 법명을 받아 약 1년간 승려로 수행했다고 한다. 선생은 해방 후인 1946년 마곡사를 다시 찾아 향나무를 심었다.
7개의 불교 승원은 대부분 깊은 산중에 자리한 터라 1천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속세에서는 임진왜란, 한국전쟁 같은 환란을 겪는 동안에도, 각종 자연재해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큰 피해 없이 그 모습과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는 국제적인 보존관리 우선 사항, 절차에 따른 통합보존관리계획 등이 수립돼있을 뿐 아니라 철저하고 효과적인 보호조치들이 신청유산의 지속적인 보존과 보호가 가능하다고 평했다. 등재과정에서 최초에는 통도사와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의 등재는 가능성이 높았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봉정사와 마곡사, 선암사를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꾸준한 설득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 당초 제안했던대로 7곳의 산사를 함께 등재할 수 있었다.
등재 당시 유네스코는 몇 가지를 권고했다. 방문객들로 인해 사찰 내 공간이 침해받지 않을 것, 지나친 개발 및 신축 행위를 삼갈 것, 신규 건설 사업은 유네스코와 상의할 것 등이다.
산지승원은 연속유산으로서 구성요소의 경계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특징과 과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구획됐다. 또한 완충구역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기에 적절하며 이러한 점을 볼 때 완전성이 온전하게 보장된다고 보고 있다.
1천 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산지승원은 승려와 일반인들의 신앙이나 수행, 생활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왔다. 또한 그 기능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점, 각 사원마다 특유의 의례를 행하는 등에서 진정성이 인정됐다.
신라시대 불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후 지금까지 불교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역사, 문화와 맥을 같이 하며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핍박을 받던 시기를 제외하면 불교는 한반도의 백성들에게 종교임과 동시에 정신적 뿌리와 다름 없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2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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