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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대표 습지인 창녕 우포늪은 조류와 식물, 어류, 포유류, 파충류와 패류까지 1천200종이 넘는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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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늪’을 이르는 말이다. 늪은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고립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지류에서 흘러드는 토사와 퇴적물들이 쌓이고, 이를 양분삼아 자라는 동식물들이 생겨난다.
학자들은 이런 늪을 자연환경과 생태 연구의 대상으로 봤지만 농부들은 달랐다. 먹고 살기 위해 늪을 메워 농경지로 만들거나, 이미 고여 썩은 물이라는 생각에 쓰레기매립장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와 함께 인식이 달라지면서 늪은 생태보전을 위한 보호구역이 됐고, 세계에서도 습지보호구역을 지정하기 시작했다. 창녕 우포늪은 경남을 넘어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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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의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관찰대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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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동식물 곤충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에 걸쳐있다. 둘레만도 7.5㎞에 전체 면적은 231만4천60m²에 이르는 광활한 습지다. 우포와 목포, 사지포, 쪽지벌 네 군데의 늪을 모두 합쳐 우포늪이라 한다. 국내 습지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소를 풀어 키우던 곳이라 ‘소벌’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한자식 지명인 ‘우포’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까지 우포는 소벌, 목포는 나무벌 등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우포늪의 역사는 1억4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낙동강과 우포늪은 바다와 먼 골짜기였다. 낙동강 하류의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가 생겼다. 당시의 우포늪 주변 지역은 공룡들이 주인이었다. 유어면 세진리에는 지반 침하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우포늪은 가시연꽃·노랑어리연꽃·마름·자라풀·갈대·줄 등 800여종의 식물류, 큰기러기·큰고니·청머리오리·흰뺨검둥오리·물꿩 등 209종의 조류, 참붕어·뱀장어·잉어·붕어·메기·가물치 등 28종의 어류, 방울실잠자리·등검은실잠자리·각시물자라 등 180종의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수달·고라니·삵·담비 등 17종의 포유류, 남생이·자라·줄장지뱀·유혈목이 등 7종의 파충류, 무당개구리·두꺼비·청개구리·참개구리·황소개구리 등 5종의 양서류, 논우렁이·물달팽이·말조개 등 5종의 패류까지 1천251종의 동식물, 곤충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우포늪은 1997년 7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물론 1998년에는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이어 1999년에는 습지보호지역, 2011년에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2018년에는 제13차 람사르협약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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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에 서식하는 외가리의 모습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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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고 둘러본 창녕 우포늪
5월 말의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우포늪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막 모내기를 마친 무논에 어린모들이 초여름 바람에 나실거리고 있다. 우회전 이정표보다 먼저 따오기 두 마리가 수련 위에 앉은 우포늪 생태관 안내판과 날아가는 철새떼가 눈에 띄는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안내판이 먼저 보인다.
우포늪 입구에서 자전거를 하나 빌렸다. 아버지뻘인 사장님은 자꾸 안장 제일 낮게 해달라는 기자가 얼뜨기 같은지 몇 번을 자전거를 탈 줄은 아느냐, 얼마나 탔느냐, 안 탄 지 얼마나 됐느냐 걱정을 쏟아낸다.
“요서 내리가서 오른쪽으로 가모 대대제방이다. 대대제방으로 먼저 가서 돌아보고 1전망대쪽으로 가소. 가보모 와 그리 가라쿠는지 알끼다. 대대제방은 고마 땡볕이다. 전망대쪽은 그늘잉께 덮다가 시원한 기 안 낫긋나. 잘 갔다오소. 날 더븐께 몬타긋으모 살살 쉬어감서 타소! 운전 조심하고! ”
사장님의 신신당부를 뒤로 하고 우포늪 자전거 탐방을 시작했다. 우거진 숲길은 생각보다 짧다. 직진할 수 있는 숲길을 빠져나오니 우포늪이 보이는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우와 감탄하고 있자니 한 가족이 와서 사진을 찍는다. 가족 뒤로 왜가리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간다.
사장님 당부대로 오른쪽 길을 택해 페달을 밟는다. 포플러나무 숲길이다. 앞서 걷던 중년의 ‘언니’들은 자박자박 걸으며 도란거린다.
이 정도면 갈 만하네, 하던 순간 오르막이다. 별로 위험해보이지는 않지만 위험하니 자전거에서 내리라는 현수막도 붙어있다. 시키는대로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올랐더니 우포늪 표지석이 서있다. 그 뒤로는 대대제방, 딱 자전거 다니기 좋을 직선 흙길이다. 숨을 한 번 후웁 고르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대대제방은 우포늪과 대대리 경작지를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오른쪽에 보이는 대대리 주민들은 너른 밭에서 양파수확이 한창이다. 왼쪽은 우포늪이 펼쳐진다.
우포늪 수면 위에는 개구리밥과 매자기, 생이가래, 가시연꽃, 자라풀이 한창 자라고 있다. 살짝 드러난 모래톱 끝에는 5~6월이면 번식을 준비한다는 쇠물닭과 물닭, 논병아리들이 무리지어있다.
대대제방길은 그늘이 정말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람도 아무도 없다. 5월인데도 볕이 따가워 팔이 점점 검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반환점에서 얼른 방향을 돌려 옥천리 토평마을 방향 제1관찰대로 향한다. 대대제방을 지나고부터는 줄곧 나무그늘길이라 한결 수월하다. 관찰대에서는 해오라기, 황로 등 우포늪에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을 안내하고 있다. 멀리 백로 한 마리가 물고기를 사냥 중인 모습도 보인다. 돌 위에서 망중한이던 왜가리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날아간다.
자전거 탐방로는 4㎞ 남짓하니 짧다. 따오기복원센터 입구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목포제방, 왜가리집단번식지, 주매제방, 사지포제방을 지나는 우포늪 주변 탐방로도 좋지만 사초군락과 쪽지벌, 모곡제방, 우포출렁다리를 지나 산밖벌로 이어지는 길도 좋고, 옥천리 토평마을의 목포에서 천천히 걸어 왕버들군락을 지나 왜가리번식지, 주매제방 주변 숲탐방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우포늪 북쪽 소목마을에는 장대나룻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장대나룻배는 주민들 중에서도 몇몇만 고기를 잡을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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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생태관 앞 공원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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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생각하는 우포늪생태관
우포늪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작은 공원 안쪽에 생태관이 눈에 들어온다. 생태관은 우포늪에 서식하는 조류와 어류를 비롯한 동식물과 우포늪의 환경이 담겨있다. 입구에서 전시관으로 들어서는 로비에는 우포늪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엽서나 작은 노트, 우산 등 다양한 상품들이 전시돼있다.
우포늪생태관은 Zone1부터 5까지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각 전시실에는 현장감 있는 입체 모형,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사전 신청 시 에코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생태관은 살아있는 우포늪을 체험하고 습지에서 살아가는 생태환경을 이해하는 자연학습의 현장이다.
따오기가 날아가며 안내하는 동선을 따라 Zone1로 들어서면 ‘우포늪으로-우포늪, 생명길에 오르다’가 시작된다. 생태관 안에는 가시연잎이 펼쳐지고 공존의 미래를 상징하는 늪배를 탄 어린이와 야생생물이 공간을 채운다. 키오스크에서 사진을 찍으면 관람자는 가시연 씨앗이 돼 우포늪의 생명길을 함께 걷게 된다.
Zone2는 ‘물을 품은 땅 우포늪 시간을 담다’를 주제로 한다. 여기서는 우포늪의 역사와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역민이 직접 출연한 영상이다. 지역민들은 우포늪의 옛이야기와 함께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우포늪의 생태적 가치와 보전을 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풀어놓는다.
Zone3에서는 ‘건강한 우포늪 생태계 생명을 담다’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우포의 땅과 물, 갈대와 수생식물, 가시연과 왕버들 군락, 소나무까지 우포늪의 식물들을 소개한다.
Zone4에서는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울린 ‘공존의 풍경 우포늪 함께 나누다’가 펼쳐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모니터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다. 모니터에 손을 가져다대면 영상 속 곤충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낮과 밤, 계절이 변하는 우포늪 풍경을 만난다.
2층으로 올라가면 Zone 5 ‘삶과 영감의 원천 우포늪 문화를 담다’ 전시가 마련돼있다. 여기서는 지역민, 예술가들의 감수성으로 다시 태어난 우포늪의 습지문화 이야기을 엿볼 수 있다.
우포늪생태관은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과 환경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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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늪배 체험(자료제공=창녕군청)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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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 사라질 위기에 보호 나선 지역민
우포늪 주변지역은 지대가 낮아 여름 장마 때 침수가 잦아 상류에서 쓰레기가 유입된다. 마늘과 양파 등 농업이 이뤄지는 곳이라 농약이나 폐비닐 등 오염 가능성도 높다. 이에 창녕군은 우포늪에 5명의 환경감시원을 배치했다. 감시원들은 우포늪에서 낚시하거나 논우렁이나 야생동식물 불법 포획 및 채취, 쓰레기 투기, 오폐수나 농약으로 인한 수질오염 등 생태계보전지역을 감시하는 역할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도 연 2회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습지들은 쓸모없는 땅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습지와 갯벌을 매립해 공장이나 농경지를 만들었다.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쓰레기매립장이 되기도 했다. 우포늪 역시 마찬가지다.
우포늪은 1930~40년대 인공제방을 쌓아 논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개발을 위한 매립공사가 진행되다가 비용과 기술력이 부족해 중지됐다. 1990년대는 목포(나무벌) 근처에 생활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하다가 또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가항늪, 팔랑늪, 학암별 등 10여 개의 늪이 사라졌다. 개발 이전에는 백조들이 찾아오던 곳이었지만 늪이 대거 사라지자 백조들은 더 이상 우포를 찾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시민단체와 지자체, 정부가 나서 우포늪을 람사르습지로 등록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환경보전을 위해 농사나 일상의 편의를 내려놔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와 지자체는 끈질기게 주민들을 설득했다. 결국 우포늪은 1997년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듬해 람사르습지가 됐다. 이 가운데 창녕환경운동연합과 (사)푸른우포사람들이 있었다. 두 환경단체는 더 많은 생물의 서식이 가능하도록 우포늪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녕환경운동연합 이장사 상임의장은 “우리 창녕환경운동연합은 창녕을 비롯해 낙동강수계, 우포 주변 생태계 보존, 불법수렵행위 감시 등을 통해 창녕군내 유적과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보호 방침을 세워 실천하며 주민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면서 “창녕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물론 우포생태학습원을 통해 환경교육과 습지생태교육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우포늪을 비롯한 창녕의 자연을 알리고 보존하며 지역민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푸른우포사람들 서영옥 회장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인 우포늪은 지역민이 먼저 나서 보존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면서 “우포늪의 자연을 지키는 동시에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들이 우포늪의 자연환경, 생태계, 생태보전의 필요성에 대해 환경과 예술, 교육을 아울러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우포늪을 람사르협약에 등록하는 과정은 물론 황새서식지 복원 방사장 설치, 환경체험교육, 무료환경교육 등을 추진해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PSB방송대상 사회봉사상, 교보생명 환경문화대상 환경교육부문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과 지역민의 공감, 참여 속에 우포늪은 생태계의 보고로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는 따오기 복원도 성공했다. 우포 따오기복원사업은 단순히 새의 한 종류를 다시 이 지역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생물종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창녕 우포늪 자연이라는 점을 따오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창녕 우포늪은 수만 년동안 자연환경이 그대로 유지되온 곳이다. 원초적인 지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자연사박물관이 바로 우포늪이다. 습지의 보존과 복원은 단지 일부지역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습지에 서식하는 생물종이 늘어난다는 것은 자연과 환경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습지의 보존과 복원은 우리가 발붙인 지구 생태계 복원의 바로미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