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부천 앞바다가 이끄는대로 돌고돌아 고향으로 돌아온 내 삶, 새내기 이장 김수찬은 이렇게 살고, 매화향이 마을을 가득 채운다
김수찬(59년생. 동해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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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 “농협에 신청한 퇴비가 도착했으니 대금을 챙겨 주문한 숫자만큼 꼭 .....” “오미크론 확진자가 수십 명이 된다 하오니 외출하실 때는 꼭 마스크를...” “마을 공동 바지락 캐는 날이니, 희망하시는 어민께서는 지정된 장소에.....” 전달사항이 많다. 겨우내 얼어있던 햇살이 조물조물 손가락을 헤치듯이 날이 풀리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면에서 내려오는 방송 내용이 많아서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빠트리기 일쑤다. 그래도 마을 일에 관한한 제대로 챙기려고 항상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좌부천 마을 이장이다. 한사코 손사래 치다가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2년차 신참내기다. 이리저리 둘러보면 우리 마을의 이장을 맡을 만한 사람이 몇 있다. 그런데 저마다 해당 일들을 맡고 있다. 하여 일 많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장 자리가 내게까지 왔다. 부지런하고 인간관계 잘 하는 명렬 형님은 어촌계장을, 예의 바르고 성실한 연수 아우는 주민자치회 회장을, 도시에서 이주한 똑소리 나는 선미씨는 귀어귀촌인 학교장을 맡았으니. 시골에서 육십대는 장년에 해당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필요로 하는 곳에 쓰임새 있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살려 이웃과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나는 인생 제2막의 계획을 세우며 고향 면 소재지의 사람을 알아가고 얼굴을 익혀가는 중에 덜컥 이장을 떠맡게 된 것이다.
# 주민자치회 위원 “교육 꼭 받아야 합니다. 잊으면 안 됩니다.” 그 날은 고교 동창 세 명과 중요한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미뤘다. 책상에 앉아 졸면서 교육을 받았다. 한 때는 공부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하던 때도 있었건만 지금의 책상은 졸음과 직결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을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하고 교육생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교육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몇 개의 분과를 만들지, 어떤 분과가 생기면 좋을지, 나는 어느 분과에서 활동하면 맞을지를 골똘히 고민하면서 녹슬지 않을 내 두뇌를 위하여, 사명감을 잃지 않을 내 의식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위하여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동해면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 승격되었다. 주민들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스스로 찾고, 하고 싶은 사업을 정하고, 의제를 발굴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참여의 깃발을 높이 드는 것이다. 나는 마을사업 분과를 희망했고 분과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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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촌뉴딜 300사업의 지역협의회 위원 우리 마을이 ‘어촌뉴딜 300’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앞으로 3년간 82억 원 상당의 예산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다. 주 사업은 어촌계에서 진행하게 되지만, 나는 이장으로, 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좌부천은 천혜의 자원인 청정 바다와 숲을 지닌, 경관이 뛰어나고 볕이 잘 드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우리 마을에는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절반은 원주민이고, 절반인 50여 가구는 도시에서 온 이주민이다. 외지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은 그만큼 거주지로서의 장점이 많다는 뜻이다. 첫째, 도안만에서 이어지는 당항포는 거친 물살이 동진교를 지나는 동안 점점 순~해져서 바다 생물의 보고이다. 특히 봄철에 잡히는 주꾸미는 이 지역만의 특색 어종인데, 주꾸미를 테마로 한 관광메뉴 개발에 관심이 많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직 미개봉 상태다. 영화나 그림이라는게 미개봉 상태일 때 가장 핫한 법, 상상력 발휘를 위해 더 이상 오픈하지는 않겠다. 둘째, 도시와 지척에 있다. 동진교는 창원과 고성을 잇는 다리다. 동진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니 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하고 각종 생필품 구매가 쉽다. 병원과 은행, 학교와 관공서, 도서관, 문화원, 영화관, 백화점까지 30분 이내면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셋째, 관광 인프라가 풍부하다. 펜션, 카페, 캠핑장은 물론이고, 경남 최고의 숯가마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손님이 줄었지만, 그 이전에는 주말마다 주차장이 넘치도록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참나무 장작불을 지핀 뜨끈한 숯가마에 몸을 뎁히고, 숯에서 나온 진액으로 족욕을 하고, 옹심이를 넣은 미역국의 시원한 맛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성만기 원장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소담수목원은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나무의 보고다. 대왕참나무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분인데, 소담수목원에서 퍼져나간 대왕참나무는 고성군, 경상남도의 가로수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이웃한 당항포의 옛길에 나란히 줄지어 선 대왕참나무는 그 뻗은 줄기며 잎이 우아하기로 소문이 났다. 넷째, 주민들의 화합이 좋다. 시골의 어느 마을이건 원주민과 이주민의 관계는 서로가 할 말이 많은 법이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위협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주민들은 ‘텃새 부린다’ ‘마음을 안 열고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친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서로 친하게 지낸다. 마을의 새로 지은 카페에 가서 ‘사업 잘 되시라’ 축원도 해 드리고, 지나가던 길손이 인근의 펜션을 문의하면 ‘추천을 많이 받는 멋진 곳이다.’ 라며 안내도 해 드린다. 마을에 특별한 행사가 열리면 너도나도 협찬금을 기부하며 기꺼이 동참을 희망한다. 이런 모두는 마을 뒷산의 효험이라고들 한다. 산이 너그러운 어머니의 품으로 당항포와 마을을 안아주고, 그 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화평하고 웃음으로 살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굳이 풍수지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背山臨水의 지형에, 햇볕이 하루종일 머무는 곳이니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올해부터 진행될 뉴딜300 사업의 내용과 진행에 따라, 더 많은 관광객과 외지인이 우리 마을을 찾고, 그 결과물이 마을 주민의 소득과 연결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
# 내 어린 날 내가 태어났을 무렵 좌부천은, 뭍으로 나가는 길이 멀고도 험했다. 뒷산을 넘어 왕복 이십리 길을 걸어야 초등학교에 닿았고, 면사무소까지는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오히려 배를 타고 눈에 빤히 보이는 바다를 건너 소포나 시락에 닿으면 창원으로 나가는 길이 쉬웠다. 어부들은 노를 저어 그물을 던져 올렸고, 그렇게 잡힌 생선을 고현이나 진동으로 내다 팔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노젓는 법을 배웠다. 바닷가 아이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팔뚝 힘을 기르고, 바다 물살을 가르는 법을 알게 된다. 봄볕을 받으며 그물을 당기고, 갯동산에 은빛 비늘을 흩뿌리며 굵은 멸치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여름이면 봄멸치가 새끼를 낳아 자잘한게 잡혔다. 채반에 널어둔 멸치에서 호래기와 메가리 새끼를 골라내거나, 풀치나 앙살게들을 찾아내는 일도 곧잘 했다.
할당된 내 일이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잘피가 귀신의 머릿결처럼 풀어헤쳐 발목을 감아도 무섭지 않았다. 몰을 뒤져 해삼을 잡거나 가리비를 따거나 소라를 건져올리면 획득한 해산물을 검정 고무신에 담아 집으로 달려갔다.
어른들 어장에서 잡히는 해산물에 비하면 鳥足之血, ‘새발의 피’ 일지언정 맨 손으로 잡은 혁혁한 전과를 어디에 비기랴. 어머니는 내가 조막손으로 잡은 그 해산물들을 지청구 없이, 버리지 않고 다듬어서 밥상에 올려주셨다. 나는 그 때 내 존재 의미를, 나의 가치를 확인했다. 나라는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행동을, 결과물을, 그리고 마지막까지 취할 생의 나날을 엿보게 된 것이다. 멀고 먼 산길을 걸어 중학교엘 가고 77년, 고성고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으러 이것저것 배우다가 상업 과목을 접했다.
# 내 청년 시절 졸업한 뒤에 부산으로 가서 주산과 부기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그 시절 상업 과목을 배우던 청소년들은 주로 시골 출신이거나 도시 변두리에서 삶을 이끌어가던 성실하고 부지런한 서민의 자녀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앞날을 설계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내일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병장 계급장을 달 무렵, 나는 면사무소에서 방위 근무를 시작했다. 1년 8개월의 방위를 끝내고 학교에 복직하여 2년간 더 근무했다. 젊음은 때때로 자신을 무장해제 시킨다. 본인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숱한 懷疑를 품고 새로운 길을 원한다. 충무의 한 양조장에 취직을 했다. 사무를 봐 주는 일을 8년 정도 하고 나니 막걸리 냄새가 몸에 배였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간 내 삶이 막걸리에 취할 것 같았다. 그 즈음, 바다가 나를 불렀다. 어선을 구입하여 고대구리 어장을 시작했다. 통발을 넣어 물메기를 잡고 문어와 낙지를 잡았다. 어린 날, 내 부모님과 이웃들이 집 앞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일구시듯이 나는 타향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바다는 한없이 너른 품을 지녔지만 모두를 순순히 내어 주는 대상이 아니다. 자주 흉어기가 되거나, 태풍이 불거나, 파랑주의보를 내리거나, 배를 뒤집었다. 살만 하다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안심하는 순간, 예고 없는 폭풍을 일으키는게 바다다. 그런 바다가 두려워 다시 뭍에 일을 잡았다. 친한 이웃이 함께 집을 짓자고 청했다. 그래, 집은 사람을 담는 아주 큰 그릇이지. 그 속에 착한 사람을 담아 아름답게 살도록 권해야지.
# 지천명을 지나는 길 통영에서 38년을 살았다. 부산에서 잠시 머문 2년을 더하면 40여 년을 객지에서 보냈다. 고향이 그리웠다. 아니, 평생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보따리를 쌌다. 떵떵거리며 귀향하는 모습이 아니면 어떠랴. 거기, 내 고향은 뒷산이 너른 품을 주고, 앞바다는 더 너른 푸름을 주는 것을. 그 곳으로 돌아가면 어린 날 잘피와, 몰을 뒤지던 유년의 유영과, 해삼과 낙지를 집어내던 꿈의 손바닥과, 집게발을 치켜든 앙살게에 물리던 여린 손가락이 있던 것을. 고향엔 아직도 집이 남아 있었다. 빗소리를 토닥토닥 튕겨내는 도단집. 장독에 볕이 나란히 내리고, 뒷산에서 날아온 송홧가루가 담장 위에 노랗게 쌓이는 집, 마당 한 귀퉁이에 노란 창포가 꽃송이를 열고, 그 아래 키 작은 제비꽃이 보랏빛 웃음을 터트리는 집. 닭벼슬처럼 꼿꼿한 꽃대궁으로 여름 땡볕을 증거하던 맨드라미가 씨앗을 여물고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가을까지 열매를 익히는 집. 봉숭아꽃이 피는 동안 동네 누님들의 손톱에 반달로 뜨던 꽃물이 기억나는 집. 나는 그 집에 짐을 풀었다. 함께 짐을 풀어준 아내가 곁에 있었다. 때로는 내 등을 두드리며, 가끔은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고 바가지도 긁으며, 늘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동행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혼자 고향으로 돌아와 짐을 푸는 일은 서글플 테다. 세월에 떠밀려 고향을 떠날 때처럼,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혼자 고향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외로울까? 내게 그런 기분을 안겨주지 않은 아내가 참으로 고맙다. 내 오늘은 아내의 주름진 손등을 토닥이는 것으로 갚음하리다. 더 큰 고마움은 가슴에 품고.
# 耳順을 맞고 귀가 순해지는 이순을 맞아도 늘 입이 먼저다. 할 말이 많고 하고픈 말로 꽉 차서 입은 바쁘다. 내 생각은 이런데, 마을 사람 누군가는, 마을에 관심이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가끔은 ‘모르면 가만히 계시우!’ 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제일 기막히다. 그것도 동네 이장으로서 민원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민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거나 꼭 들어줘야 할 때 더 힘들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든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나와 생각이 다른 각각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우리 동네 100가구의 주민들이 모두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일사분란하게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해결하는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서 날마다 다짐한다. 남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고, 내 의견은 아주 조금만 내겠다고. 과연 그렇게 철학자처럼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날마다 내 마음을 다잡는다. 삶은, 굳이 철학자의 모습으로 살지 않더라도 배려와 나눔과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나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않는 겸손으로 충분히 여유로울 테다. 제비꽃, 앉은뱅이꽃, 방석꽃처럼 낮은 자세로 꽃을 피우면 될테다. 민들레처럼 봄을 알리고, 쑥처럼 도다리를 부르면 될테다. 아, 창 밖에 매화향이 가득하다. 이젠 봄이라고 말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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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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