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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김과 자활 정신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2월 25일
ⓒ 고성신문
지난 2월 5일, 고성 대가면 척곡리에 있는 제정구 선생 묘소에서 선생을 기리는 제23주기 추모 행사가 있었다. 코로나 감염병 확산으로 조촐하게 이루어졌지만,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의미를 되새겼다. 이번 행사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고성 주민들만으로 알차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손님이 오는 것을 자제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자리했다.
사람 많이 모이는 행사로는 엑스포를 비롯하여 문화제나 체육 행사 등이 있지만, 고인 한 사람을 추모하는 행사로는 아마도 고성에서 이보다 큰 행사는 없을 것이다. 경기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찾아오고, 지역에서도 일반 군민을 비롯하여 군수와 의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큰 행사다. 거기에 전 현직 국회의원 대여섯 명씩은 매년 참석한다. 지난해에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총리 내정자의 자격으로 참석할 정도였으니, 작은 시골에서는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행사는 떠들썩하지 않다. 평생을 빈민 속에 묻혀 사신 고인의 뜻을 기려 요란하고 번거로움을 피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 확산으로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외지 손님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유족인 신명자 여사를 비롯한 제정구 장학회 관계자와 박종훈 교육감이 참석했고, 김부겸 총리는 추도사와 더불어 불참에 대한 아쉬움의 뜻을 보내왔다. 고마운 일이다. 외지 손님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예상외로 참배객이 많았다. 행사를 주관하는 기념사업회 회원 외에도 지역의 열다섯 개의 단체에서 회원들이 참여했고, 추모 행사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일반 주민들도 있었다.
23년 전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에서 선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정구를 모르면 고성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이 역시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함께 해온 제정구 기념사업회 회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동안 제정구를 고성이 낳은 위인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 지금은 해산되었지만,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단법인 ‘제정구 기념사업회’는 중앙 정계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대거 참여한 단체였다. 김부겸 총리를 비롯하여 유인태, 손학규, 원혜영, 유홍준 등 현대사에 굵은 선을 그은 인물들이 참여하였다. 모두가 선생과 가까이 지냈던 분들로 선생은 그들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제정구라는 이름이 통하지 않았다. 우선 고성이 낳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정구를 몰랐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지만, 군사정권에서 탄압받으며 업적이 퇴색되어 버렸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지엽적 문제보다 대승적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다 보니 주민들에게는 고성의 인물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고성에서의 기념사업회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지역에서 가지는 별도의 사업이 없고 추모 행사만 참여하다 보니 사단법인 기념사업회의 지역 사무소 역할에 가까웠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다. 23년의 추모 활동을 통해 제정구 선생의 업적이 알려지면서 기념사업회의 위상도 달라졌다. 2019년에 ‘제정구 고성기념사업회’라고 불리던 조직을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로 명칭 변경과 함께 비영리단체로 조직을 변환하고, 그동안 해오던 생가와 묘소 관리를 비롯하여, 선생의 발자취를 밟는 성지 순례와 ‘정구야, 학교 가자’ 등 새로운 사업을 시행했다. 2020년 해산된 사단법인 기념사업회의 정통성까지 이어받으면서 고성의 기념사업회는 지역을 벗어나 명실공히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모든 사업을 관리하는 조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기념사업회 회원 및 지역의 기관과 사회단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념사업회 역사에 빠질 수 없는 단체가 고성오광대보존회이다. 고성오광대가 없었으면 고성에서 제정구는 없었을 것이다. 고성오광대는 기념사업회가 자리 잡을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초기에는 세세한 준비를 도맡아 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역할이 옮겨 왔다. 그런데 고성오광대는 춤꾼도 아니고 오광대와는 인연도 없는 제정구를 왜 특별한 사람으로 추모해 왔을까? 초대 회장이 고성오광대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제정구와 오광대의 특별한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그 해답을 찾았다. 제정구의 성품에는 ‘배김 정신’이 있었다.
배김 정신은 ‘오광대의 정신’이다. ‘배김’은 ‘배김새’라는 오광대 춤에서 나온 말로, 몸을 어느 한쪽으로 힘차게 던져 디디고 천천히 감정을 푸는 춤사위를 말한다. 배김은 좋지 못한 것을 쳐내기 위한 몸짓인데, 억압받는 민중을 대신하여 위선자의 잘못을 호되게 꾸중하고 쳐낸다. 배김 정신은 타락한 양반이나 스님을 꾸짖는 대사나 춤사위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다른 여타 정치가와는 달리 사회활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제정구의 가장 특이한 점은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꾸중은 피아가 없었다. 같은 진영의 사람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신랄하게 꾸짖었다. 그 바람에 권력자의 눈엣가시가 되기도 했다. 오광대가 탈을 쓰고 위선자를 꾸중했다면 제정구는 민낯으로 위선자에 맞섰다. 이처럼 선생의 정신에는 고성의 전통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배김 정신이 녹아 있었다.
또 하나, 선생의 정신에서 되짚어 볼 것은 ‘자활 정신’이다. 선생의 자활 정신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고 하니 테레사 수녀처럼 온전히 어려운 사람과 삶을 함께한 성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선생의 일생을 돌아보면 성인의 자리에 오를 만큼의 업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생의 업적은 테레사 수녀처럼 무한한 베풂이 아니다. 도리어 베풂의 고리를 끊고 토끼굴 속에 숨은 빈민을 드넓은 들판으로 이끈 개혁가였다. 제정구는 빈민과 함께 집을 지은 사람이지 집을 지어준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집을 짓는데 들어간 경비는 제정구 개인 돈이 아니고 빈민 개인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정구를 집을 지어준 사람으로 착각한다. 시흥에서 복음자리 마을을 만들면서 독일에서 돈을 가져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그 돈을 후원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민들과 함께 부지런히 돈을 모아 빚을 갚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푼돈을 모아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냥 준 것이 아니라 싼 이자로 돌려받았다. 그렇게 시흥에 3개 마을을 만들면서 부강한 도시 시흥을 건설했다.
이처럼 선생의 활동을 돌아보면 자활 정신이 삶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활이다. 선생은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복지 세상을 꿈꾸었다. 놀면서 받기만 하는 환상적인 복지가 아니고, 일하면서 스스로 만드는 현실적인 복지를 꿈꾸었다. 가진 자에게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 노력하여 얻었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은 삶을 만들었다. 주민들 역시 자신들이 직접 만든 것이기에 결과는 더 보람 있고 뿌듯했다. 선생이 꿈꾸던 세상은 ‘국가에서 다 해주니 어중간하게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라는 표퓰리즘 국가가 아니었다. 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베풀어야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무한정 베푸는 지금의 잘못된 복지와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제정구는 행동하는 양심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배김 정신으로 거짓과 위선을 꾸짖었고, 자활 정신으로 어려운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불굴의 의지로 시대의 그늘에서 방황하던 빈민들을 이끌었다. 그들에게 좌절의 허약함 대신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신명자 여사님은 추모사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국민은 하늘이다. 하늘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라.”
퍼주기식 복지로 인기몰이와 표 계산에 바쁜 정치꾼과 부패한 위선자가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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