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이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21일
 |
 |
|
ⓒ 고성신문 |
조마조마하던 행정과 의회의 갈등은 연초부터 또 불거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충돌이 아니라 시민단체 연합 집회를 매개로 하여 서로 격한 목소리를 냈다. 회를 한 단체는 고성 지역의 11개 단체가 모여 만든 연합단체이다. 단체 이름은 나도는 문서자료마다 다르니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고성에서 살아가는 시민 모임’이라고 적힌 문서도 있고, ‘함께하는 고성군민’이라고 적힌 문서도 있다. 시민단체연합은 의회의 당초예산 삭감에 대해 행정과 의회는 사과하라는 집회를 하고, 두 기관을 방문하여 추경 예산 편성 및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내놓았다. 언론을 통해 삭감된 금액이 247억 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것과, 예산 삭감의 대략적인 항목은 알지만, 세세한 삭감의 명세는 해당한 기관이나 사람이 아니고는 알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관련 단체가 자신의 불이익에 대해 사과와 수정을 요구한 것이기에 내용이나 과정을 두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행정의 부풀리기 사업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봤지만, 의회의 예산 삭감에 대해 사회단체가 무리를 지어 항의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어 이번 집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의아한 것은 사실이다. 지역의 몇 개 단체에서 회원 혹은 임원 활동을 하다 보니 이번 집회의 불똥은 필자에게까지 튀었다. 집회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회원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갑자기 집회 참여가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상위 단체가 참여하기에 자동으로 단체 이름이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상위 단체에서 참가를 결정했다니 그나마 그것은 이해가 된다. 역시 회원으로 있는 또 다른 사회단체의 이름이 참여 단체로 함께 올라가 있기에 회장에게 연락했다. 자신의 이름까지 올라가 있는데도 막상 회장이라는 사람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도리어 이름을 도용당했다며 펄쩍펄쩍 뛴다. 그런데 그런 단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 비슷한 경우가 몇 군데가 된다. 필자가 알기에도 언론에 나온 11개 단체 중에 최소한 4개 단체 이상이 이름을 도용당했다고 억울해했다. 정말 이해 못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예산 삭감은 주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은 백번 이해를 하더라도 남의 이름을 도용한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도 일반 계모임도 아니고 내놓으라는 11개의 사회단체가 모인 것이다. 준비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기에 단체장 이름까지도 몰랐던 것일까? 이번 집회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의문이 남는다.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집회 관련 문서이다. ‘2022년 당초 예산 삭감 관련 단체 성명서 발표 동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문서 첫머리에 ‘문화관광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직 집회 주최 측이 행정을 방문하지도 않았는데도 버젓이 참가단체와 대표자 명단이 적힌 자료가 나온 것은 행정 개입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단순한 동향 분석 자료일 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동향’이라는 문구 자체도 군사정권 시절에 하던 ‘사찰’의 느낌이 들어 아찔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문서가 떠돌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정이 이번 집회를 기획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행정과 의회 방문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군청 앞에서는 기세 좋게 많은 인원이 모여 성명서를 읽고, 군수와의 면담에서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나 집회의 실마리를 제공한 의회는 언론의 대동도 없이 소수의 인원만 가서 성명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집회를 끝냈다. 주최 측의 의도라면 행정보다는 삭감을 강행한 의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려가서 강한 항의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의회에서 사과받았거나, 삭감에 대한 차후 대책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받았다는 말도 없다. 이름을 도용하면서까지 단체들을 모아 의회를 찾아갔는데도 제대로 된 답변 하나 받아내지 못했다면 왜 집회를 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볼 수밖에 없다. 비록 필자가 속한 단체 이름이 도용되기는 했지만, 기관과 단체의 갈등에 대해 부채질하여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과 같은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잘잘못은 따져두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가장 먼저 주최 측이 논란의 정확한 경위를 밝힘이 옳다. 우선 자료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짚어 보자. 애초에 나온 자료는 참여 단체가 15개였다가, 이후 12개 혹은 11개로 바뀐 것은 참여를 섭외하는 단계에서 나온 자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 자료에 이름이 올라간 단체 중에 몇 개의 단체가 이름을 도용당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필자가 파악한 4개만 해도 최소 참여 단체의 1/3이 엉터리라는 것이다. 거기에 단체 회장의 이름도 잘못된 것이 많다. 도대체 주최 측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참여 단체와 대표자를 선정했는지 알고 싶다. 일부 단체는 예산 삭감과는 관련이 없으며, 삭감된 단체 중에서도 참가 의사가 없었음에도 참여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허락받지 않고 이름을 가져간 경위를 밝힘이 옳다. 필자가 속한 단체의 회장에게 경과를 따져 바로 잡아 달라고 했더니 집회 주최 측에서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찾아와 사과하겠다고 했다. 어불성설이다. 개인적으로 이름이 거론된 것은 개인에게 사과하면 되지만 단체는 그렇지 않다. 의도든 의도치 않았든 단체 이름이 언론에 실린 만큼 지면에 경위를 밝히고 사과함이 옳다. 다음은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행정은 문서 작성처로 ‘문화관광과’라는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는 만큼, 문서가 만들어진 경과와 용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시민단체의 자발적 행위라는 변명은 낯 뜨겁지 않은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행정이 이번 집회를 부추겼다면 도덕적인 문제까지 대두된다. 그러기에 한 점이라도 오해가 남지 않도록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 의회 역시 그냥 있을 일이 아니다. 의회는 방문단과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주민들에게 공개를 바란다. 찾아간 연합단체 대표들이 의회의 설명을 수긍한 것인지, 아니면 성명서에 적힌 내용으로 항의만 하고 간 것인지 언론을 통해 밝히면 좋겠다. 그리고 삭감된 예산에 대한 대안도 아울러 같이 공개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이번 사안을 다루는 언론의 취재 태도이다. 고성은 좁은 지역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사회단체장의 이름이 잘못되었는데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실은 언론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고 하겠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명의도용을 알았다면 이에 대한 후속 취재를 통해 바르게 잡아 주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른 언론이라고 손가락질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도용당한 단체들의 견해 표명이다. 주최 측에 지면을 통한 사과를 요구하는 단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회성 에피소드로 생각하고, 더 이상의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단체들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침묵은 결과적으로는 이번 집회의 목적과 방법을 추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을 ‘명예’라고 한다. 인간이 이름을 가지면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명예는 자존심과 한 몸이었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최고의 치욕으로 여겼고, 자존심이 상하면 죽은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짓밟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런데 이번의 이름 도용 사건은 타의에 의해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진 경우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특히 기록으로 남기에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 될 것이다. 남들이 내 이름에 남긴 발자국을 그냥 둘 것인가? 이름에 묻은 오물을 털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정작 본인들이 불편하거나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외쳐도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21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