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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거나, 넘치거나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24일
ⓒ 고성신문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펑퍼짐한 공간이었고, 이런 상태를 ‘카오스’라고 하였다. 카오스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
이었다. 이후 하늘과 땅이 구분되고, 갖가지 사물과 생명이 태어났다. 그중에 외눈박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키클롭스도 있다. 큰 키에 외눈으로 외형은 닮았지만, 태생에 따라 하늘 신 우라노스와 땅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키클롭스 형제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바다의 요정 토오사 사이에서 태어난 폴리페모스 무리로 나뉜다.
키클롭스는 모습이 특이한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남긴 괴물이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폴리페모스는 인간을 잡아먹는 흉포함을 보이지만, 오디세우스의 기지에 빠져 하나뿐인 눈마저 잃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영리한 것 같지는 않다. 그에 비해 우라노스의 아들들은 올림포스 신전과 제우스의 무기인 벼락을 만들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 형제는 벼락에 아들을 잃은 아폴론의 복수극에 휩쓸려 몰살당한다.
이처럼 키클롭스가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은 외눈박이라는 태생적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눈이 두 개인 이유는 사물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인데, 하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 시야에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폴리페모스는 악업의 대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생과 식인을 했고, 키클롭스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무기로 인해 돌아올 업보를 예측하지 못하고 신들의 도구를 만들었다. 결국 폴리페모스는 모자라서, 키클롭스 형제는 넘쳐서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키클롭스 이야기는 세계인이 널리 읽는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신화 속에는 키클롭스 이외에도 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있다. 신화이기에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신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상징성은 현대에도 의미를 잃지 않는다. 신화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과 세태가 그렇다. 행정과 의회의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카오스’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고,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황이다. 누구는 행정의 불통 탓이라고 하고, 누구는 정치 논리에 얽매인 의회의 발목잡기 탓이라고 한다. 이처럼 편을 갈라 다투고 있지만, 주민들로서는 누가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진실에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함부로 의사 표현하기도 두렵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진영 논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삐걱대던 행정과 의회가 다시 충돌하고 있다. 행정에서 올린 내년도 예산을 의회에서 대폭 삭감한 것이다. 당장 군수는 예산 삭감이 부당하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했고, 의회는 예산 심사 결과 보고문을 공개했다. 기자 회견문과 예산 심사 결과 보고문을 읽어보면 둘 다 행위에 정당성이 있다. 행정은 주민들의 질 높은 삶을 위해 예산을 증액하여 올렸고, 의회는 선심성 예산을 비롯한 불요불급의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속 내용을 모르는 주민들로서는 어느 말이 진실인지 답답하다. 누구 잘잘못을 떠나 일단은 행정이 한 수 높아 먼저 치고 나가고 의회는 수습하는 꼴이다. 주민들은 예산을 깎았다는 포장만 보고도 들썩거린다. 당장 불어오는 역풍이 거세다.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니, 이 정도면 앞으로 행정에서 하는 일에 대해 의회에서 태클을 걸기가 힘들 것 같다. 그동안 불통의 정치를 해 왔던 행정의 자업자득인지, 행정에 끌려다니던 의회의 자해 행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예산 심의는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의회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할 것이다. 의회로서는 긴요하지 않은 사업은 군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견제하는 것이 맞다. 최초·최고 실적 위주의 사업으로 생길 부작용도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군수가 싫어서’ 무조건적인 예산 삭감을 했다면 이 또한 업보를 쌓는 일이다. 의회를 무시해 온 행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그런 억하심정이 있었다면 재심의가 옳다. 예산은 군수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을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행정이 하고자 하는 사업들은 대의적 명분이 있을뿐더러,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주민의 호응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청소년 꿈페이’ 덕분에 학부모들이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다른 지자체를 압도하는 공모 사업의 실적으로 이득을 본 업체도 있다. 스펙 높은 일부 외지인들의 잔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설 사업과 공공건물은 일자리 창출에 일부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외형이 화려하니 속사정을 모르는 주민들로서는 흑묘든 백묘든 따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안의 적합성을 따지는 의회가 불편할 것이다.
의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주민 홍보 활동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주민들은 선심성 무상 혜택이 자식에게 세금으로 돌아가고, 공모 사업으로 가져온 사업이나 시설의 인건비를 포함한 유지관리비는 대부분 군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은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행위가 옳아도 주민이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예산 삭감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주민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삭감 전에 먼저 관계 공무원이나 주민들과 대화하고 이해시킬 수는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과정 없이 행한 예산 삭감은 당연히 행정이 쳐놓은 그물에 걸릴 수밖에 없다. 행정은 삭감 즉시 기자회견을 해 주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의회는 그보다 한발 늦게 다음날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진실과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미 비난의 화살이 의회로 쏟아지고 난 이후였다.
홍보전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행정 역시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얼마 전, 의회의 반발에 부딪힌 행정은 군수가 직접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갈라치기로 갈등을 만들어, 소통하겠다는 말을 헛말로 만들어 버렸다. 행정도 예산 삭감을 예상 못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에게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설득했는지 의문스럽다. 이 모든 것이 정무 기능의 부재에서 온 사단이다. 기자회견이 주민들에게 의회 불신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불통 정치에 대해 의회에 사과한 만큼, 해왔던 사업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예산의 적정성을 고려하여 신년 예산을 책정한 것인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앞에서 화해의 손을 내밀고 뒤에서는 험담하는 행정의 양두구육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행정과 의회가 보이는 행태는 외눈박이 키클롭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넘치는 키클롭스 형제인지 모자라는 폴리페모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모자라도 문제이고 넘쳐도 문제라는 것이다. 행정과 의회는 책임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외눈박이 행동을 하지 말라. 한쪽 눈이 아닌 두 눈으로 정치를 하라. 업보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 키클롭스의 신화가 그냥 나왔을까? 지금의 이 갈등이 계속될 경우, 키클롭스의 불행이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에 부탁하고 싶다.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끝을 모르는 행정과 의회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갈등 해소 방안을 내놓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시로 보고 한쪽의 목소리만 옮긴다면 올바른 언론이 아니다. 행정의 눈이나 의회의 눈이 아닌 ‘주민의 눈’으로 보고 ‘주민의 입’으로 말해야 한다. 언론은 이번 사안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정말 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예산을 깎았는지, 행정이 과다하게 요구한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달라.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으면 좋겠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지도자가 많으면 좋겠다. 작금의 혼란스러움과 무질서가 후유증 없이 수습되어 혼돈의 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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