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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없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29일
ⓒ 고성신문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식당에서 횡포를 부린 중학생들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들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소변을 보
가 식당 주인에게 훈계를 들은 후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특별히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람을 죽여도 교도소에 가지 않는다’라는 아이들의 말 때문이었다.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범법 행위를 저지른 아이들의 영악함에 경악한 것이었다. 당장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처벌이 약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형량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벌을 강하게 하면 청소년의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법을 강화하여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게 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형량을 높인다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형벌이 높은 만큼 범죄가 줄어드는 논리라면 처벌이 무거운 성인들은 범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아이들이 교도소에 다녀온다고 개과천선한다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학생들의 보호자는 오히려 ‘애들을 타이르지 않고 왜 자극했느냐?’며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식당 주인의 훈계가 도리어 범죄를 유발했다는 논리이다. 이 정도면 ‘그 부모에 그 아이들’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라면 아무리 강한 처벌을 들이 내밀어도 그들의 망나니 칼춤을 막을 수 없다. 이런 부모도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잘못된 길을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훈계를 못 하는 어른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형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잘못을 꾸중할 수 있는 어른들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꾸중하는 어른이 없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유명 업체 옷차림에 값비싼 전자 제품으로 아이들 입맛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누워 자도 깨우지를 못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도 꾸중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국경을 지키는 청년들은 훈련이 고되다고, 식단의 질이 떨어진다고 국민청원 게시판에 민원을 올린다. 하긴 군영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하여 수시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이 가능한데다가, 계급을 떠나 선임 병사를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하니 군대를 소풍 간 것 정도도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다가 전쟁 중에도 전투 식량은 싫다며 스테이크를 찾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렇게 세상이 갈팡질팡 팔자걸음을 해도 따끔하게 나무라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의 비위를 챙기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못 본 척하거나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그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한다. 괜히 젊은이들에게 훈계 투 말을 하면 꼰대질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간혹 훈계 끝에 신체적 접촉이라도 있으면 폭행죄까지 묻는 세상이다. 식당 주인처럼 드물게 ‘내가 어른입네’하고 불량 청소년들을 가르치려다가는 돌아오는 업보가 크다. 한순간의 용기로 얻은 것은 고소·고발로 인한 긴 법정 싸움과, 나이 어린아이들과 싸움질이나 했다는 입질뿐이다. 그러니 누가 어른 짓을 하려고 하겠는가? 그냥 모른 척하는 게 가장 어른스러운 행동처럼 되어 버렸다.
옛사람들은 어른이 해야 할 행동의 원칙에 철저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누구의 아이든 따지지 않고 먼저 본 어른이 나무랐다. 집에는 부모가 있었고,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었고, 마을에는 동네 어른이 있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이기적인 말이나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꾸중을 듣거나 회초리를 맞았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아이들의 잘못된 행실을 나무라던 어른들은 멸종되어 버렸다. 그런 어른이 있다면 이제는 천연기념물 수준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했다. 전자 기기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먼 나라가 이웃 나라로 바뀌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적과 친구의 구분도 없어졌다. 거기에 복지국가 건설이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전체보다는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공익의 개념마저 희박해져 버렸다. 문제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복지국가로의 발길이 멀미가 날 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서서히 녹아야 할 빙산이 너무 빨리 녹고 있다. 준비도 없이 폭죽부터 터뜨려 눈앞이 어지럽다. 조금 천천히 가자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의 잔소리가 되어 버린다. ‘이러면 안 된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사회에서 매장되기 일쑤이다.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풍조도 어른들의 목소리를 죽이는데 한몫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있는 것이 당연하거늘, 반대 목소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꼰대의 말로 치부해버린다. 개인 취향의 성(性)을 인정해주자는 의견이 있으면 반대의 의견도 있는 것이 당연하거늘, 성적 소수자를 이해 못 하는 꼰대가 되어 버린다. 성별에 의한 차별을 없애자는 페미니즘 역시 찬반의 논쟁이 당연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한순간 ‘한남’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의 화두는 대부분 공익보다는 사적인 이익이나 윤리성에 치중되어 있으며, 목소리 큰 소수의 활동가에 의해 주도되면서 철저하게 어른들의 생각은 배제되어 있다.
물론 행위에 따라 소수의 의견이나 사익이 나쁘다거나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가치 선택에 대한 문제나, 인권에 대한 선택의 문제 등은 공익의 개념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수가 득세하는 사회는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권력에 의해 통제되거나, 윤리적으로 부패한 사회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혜로운 어른의 목소리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어른이 없는 아이들만의 세상을 소인국이라고 한다. 피터 팬이 살던 네버랜드가 그런 나라였다. 후크선장을 비롯한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해치는 악당이었다. 네버랜드에서의 어른은 아이들의 삶에 장애물이면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존재였을 뿐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소인국의 나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갈등이 생기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때는 자신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음을 탓한다. 이율배반적인 생각이다.
최근 지역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행정과 의회의 갈등을 보면서 중재를 할 수 있는 어른이 없어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정말 어른이 없는 것일까? 말을 하면 꼰대 소리를 듣고, 그냥 두자니 무능한 어른이라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다. 꼰대라는 악역보다는 무능한 어른이 낫다는 생각에 말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닐까? 어른을 어른으로 보지 않고 잔소리꾼으로 치부하는 불건강한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어른이 어른 짓을 못 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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