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전통 놀이 문화를 찾아서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1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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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장이든 그 지방마다 한두 가지씩의 전통 놀이 문화가 마을 공동으로 형성되어 전해왔다. 경상남도 고성 지방의 ‘고성오광대’가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된 것을 보면 인근 지방의 ‘통영오광대’와 더불어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보존의 가치 면에서도 어느 고장의 유·무형 문화재 못지않다고 생각된다. 최근에는 송학동고분군 바로 옆에 박물관을 건립하여 볼거리를 많이 진열해놓았다. 특히 철갑옷을 입은 무사가 눈만 보이게 만든 철제 마구를 입힌 말 위에서 긴 칼을 손에 쥐고 호령하는 믿음직한 소가야 무사의 늠름한 모습과 고분군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보기 쉽게 진열해놓았다. 고성은 옛 여섯 가야 중에서 가장 막내인 소가야의 왕국으로서 지금도 고성읍 송학리와 무학리에는 고분 크기가 신라 왕들 무덤 규모의 고분이 서너 개와 채 발굴되지 않은 옛 가야시대의 고분들이 상당히 많이 산재해 있다. 이런 관계로 나의 고향인 고성읍 대독리의 독실마을은 옛 가야인들이 숨 쉬는 듯한 전통 가락과 놀이 문화가 끊임없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정월 대보름 고향에 갈 일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점점 노령화되어가고 있는 고향 마을을 묵묵히 지켜오고 있는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도움을 청하였다. 우리 마을에 아직도 실낱같은 명맥을 이어 내려오고 있는 ‘매구놀이’(농악놀이의 일종)와 ‘지신밟기’, ‘달집 만들어 태우기’ 등을 보존하는 데도 참고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이곳 독실 마을은 예로부터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동민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동제’를 시작으로 ‘매구놀이’와 ‘지신밟기’를 매년 정월에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보리갈이를 끝내면 남자들은 새끼를 꼬고 짚을 손질하여 가마니 짜기와 초가집 지붕 덧씌우기 이엉을 엮는다. 또 지붕 한가운데에 얹어둘 용마루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뿐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여자들은 누에고치를 삶아서 명주실을 물레로 뽑아 내어 타래에 감는다. 여름 내내 삶아서 말려 두었던 삼베실을 손질하여 베틀에 매달아 짜는 일과 목화를 손질하여 무명실을 뽑아 베를 짜는 일이 제일 힘들고 고달픈 것은 농촌 아낙네들의 숙명적인 생활상의 일부분이었다. 이와 같은 쉴 새 없는 농촌의 생활 중에서도 한 해의 풍년을 조상님께 감사하고 내일의 힘든 일을 보람있게 설계하는 동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동네의 수호신인 서낭당의 고목 아래와 우물가에 금줄(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치고 깨끗한 황토로 여기저기 표식을 해 놓고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통제하여 잡신의 근접을 막고 제주는 찬물에 목욕 재개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 의식은 섣달 그믐날 밤에 치러진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 아침에는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세배를 하고 아이들도 어른들께 세뱃돈 타는 재미로 온 동네 한 집도 빠지지 않고 세배를 하였다. 가까운 친척들이나 친지들이 하나둘씩 다녀간 초사흗날이 지나면 어김없이 매구패들이 등장하는데 구성원들은 물론 마을 청·장년들로 이루어진다. 정월 대보름날까지 계속되는 이 매구놀이와 지신밟기는 한 해의 풍년과 자연으로부터의 재앙을 주술적으로 해결하자는 토테미즘의 전통적 민속신앙을 주축으로 마당 굿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농악기를 거의 빠짐없이 고루 갖춘 10여 명의 구성원 중 맨 앞에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란 글귀의 깃발을 앞세우고 한 집도 빠짐없이 굿을 하게 된다. 보름 안에는 모든 가정을 골고루 다 액땜을 해 주어야 되는 관계로 비나 눈이 와도 볏짚을 깔아놓고 하루에 4~5집을 돌아야한다. 그 깃발을 든 사람 뒤에는 사대부 역할을 하는 할배(할아버지의 경상도 방언)가 갓을 쓰고 긴 담뱃대를 들고 양반 차림을 한 자칭 ‘양반’이 뒤따르고 나무로 만든 긴 총을 어깨에 메고 꿩과 너구리의 가죽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는 험상궂은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면 영락없이 진짜 포수같이 보인다. 건들건들 팔자걸음을 하며 연신 총 쏘는 시늉도 쉬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우스운 것은 얼굴이 곱상한 남자에게 여장을 시켜서 얼굴에는 화장을 하고 연지와 곤지를 찍어 예쁜 치장을 하여 그 포수와 야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볼만한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물놀이가 그렇듯이 그 많은 패들 가운데 꽹과리를 잘 치는 분이 총지휘를 하는 것이다. 그 꽹과리를 신호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패들은 징치는 사람, 장구를 잘 치는 사람, 소고를 앞뒤로 돌려서 바쁘게 치다가 뱅글뱅글 머리 위에 긴 줄을 돌려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는 구경나온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만다. 동민들은 물론 어린이나 노인들은 매구패들을 구경하다가 때가 되면 집주인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데 떡과 고기, 술과 안주, 밥 등을 내놓는 성주는 마음이 참으로 가볍다. 매구패들의 하이라이트는 꽹과리를 치는 사람의 선창으로 외우는데 “벅벅벅 벅구야” 하고 소고를 치는 사람을 불러 모으고는 “얼러라 성주야” 쾌쾡 꽹 꽹꽹꽹꽹(꽹과리 소리) “장독할매 계시는데” 쾌쾡 꽹 꽹꽹꽹꽹 “뒤장(된장의 경상도 방언) 간장도 맛있고” 쾌쾡 꽹 꽹꽹꽹꽹 “객고잡신은 물알로(물 아래라는 뜻) 등등의 그 집 주인에게 흡족한 주문을 외워주면 너무나 좋아한다. 이때 성주는 찬물을 온 집안에 고루고루 뿌리고는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깨끗한 황토를 장독과 부엌에 뿌리면서 잡신의 근접을 막고는 변소 귀신에게도 주문을 외우고 외양간에는 금줄을 쳐둔다. 시작하기 전에 상 위에 놓아두었던 쌀과 돈 등은 자루를 메고 다니는 회계 책임자가 일일이 장부책에 옮겨 적고는 총 수입된 것을 나중에 끝나고 결산하여 마을 공동기금이나 두레 시의 음식물을 만드는 경비 등 여러 곳의 유용한 곳에 쓰인다. 정월 대보름날은 아침 일찍부터 거지 벙거지를 쓰고 빈 밥그릇만 들고 친구들과 모여 집집마다 오곡밥을 얻으러 간다. 모아진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부럼(부스럼)도 깨고 더위도 판다. 친구 이름을 불러서 대답함과 동시에 “내 더위 다 사가라” 한다. 대보름날에도 매구패들의 농악놀이는 마무리 작업으로 계속되었는데 마을 이장이나 청년 회장 등이 젊은 회원들과 학생들을 불러 모아 달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의 준비물을 그룹식으로 분담하여 맡긴다. 좀 힘이 센 청년들과 키가 큰 학생들은 솔가지를 지게에 한 짐씩 해라고 하고 또 한 무리의 청년들에게는 굵고 긴 대나무를 10여 개씩 베어 오라고 하는데 나머지 작은 꼬맹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잡초를 한 아름씩 베어 오라고 시킨다. 단 푸른 것을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은 불을 지르면 인근 동네보다 더 연기가 많이 나야 하는 이유에서이다. 달집의 형태는 긴 대나무를 모아서 묶은 후 세워서 아랫부분을 벌린다. 유목민의 둥근 지붕의 형태처럼 틀이 잡힌 후 짚으로 영을 만든 것을 백 둘러치고 달 모양의 원형을 따바리(짚으로 된 물동이 밑을 받치는 것)로 만들어 달처럼 입구에 걸어둔다. 푸른 색깔의 소나무 잎과 대나무 가지, 풀 등으로 달집 전체를 덮어서 튼튼하게 만든다. 이윽고 달이 뜰 시간이 다가오자 산등성이 위에 올라가 있는 신호꾼 청년들의 신호를 기다리는 긴장감이 도는 시간이 흐른다. 메구패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행위를 마치고 거나하게 한잔한 후 꾸역꾸역 모여든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잡아끌고 엄마들은 업고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온 동네가 텅텅 비어 버린다. 달집을 보고 연신 절을 하는 아주머니들, 손을 비비며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할머니, 큰 소리로 한 해의 풍년을 소원하는 할아버지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 똑같이 동쪽을 응시하며 달 떠 오르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탕근산 중턱에서 달 오름을 알리는 징 소리가 세 번 크게 울림과 동시에 달집에 불을 댕긴다. 대가 갈라지는 “뚝 뚝”하는 소리도 파죽지세로 금방 불 속에 파묻히고 만다. 동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과 얼레를 불 속으로 집어넣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맹세한다. 매구패들의 한판 놀이는 온 동네의 부락민들을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데 충분하다. 밤이 이슥하고 달이 중천에 오르자 달집의 불탄 자리는 마치 큰 불덩이를 바닥에 깔아놓은 큰 화롯불처럼 되는데 손을 벌려 불을 쬐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일어서고 아이 못 낳는 며느리나 아내에게 부지깽이를 갖다주는 사람들도 한 손에 타다 남은 대나무 부지깽이를 들고 집으로 들어간다. 청년들은 양철동이에 물을 길어서 불을 꺼야 하는 마지막 일이 기다려도 짜증 하나 내지 않고 마무리를 짓는다. 이와 같은 각 지방마다의 고유 놀이들은 약간의 차이와 방법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가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독특한 놀이문화는 곧 고을의 정신적인 지주요, 마을 사람들을 단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약 20여 년 전부터는 달집을 만들 때는 짚으로만 만들고 가능한 한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를 해 왔다. 물론 산림녹화와 화재의 염려 때문이겠지만 이제는 울창한 산림의 옆 가지쯤은 얼마든지 베어서 태워도 될 것이고 재미있는 놀이를 계승 발전할 수 있을 법한데 달집 태우기가 시들해지고 농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 안타까운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 고향 독실 마을의 달집태우기는 까마득한 전설처럼 변형되었고 풍물놀이인 매구패 놀이와 지신밟기는 전승할 만한 젊은 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으로 겨우 명맥유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차제에 30~40대 젊은이들의 유턴(U-turn)현상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농촌을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아끼는 우리 국민들의 한결같은 마음 한구석에는 젊은 세대들의 귀농현상과 더불어 매구놀이와 지신밟기, 그리고 옥토끼가 살았을 법한 달나라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기 전의 간절한 마음을 빌어 볼 수 있는 소박한 옛날을 떠올린다. 순수하고 마음 넉넉하게 살아갈 현대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얼쑤 얼쑤”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가는 신명 나는 놀이마당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전통문화가 세계 속의 한국에 걸맞는 우리만의 문화를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겠노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이 한 사람의 마음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나만의 생각이 아니기 바랄뿐이라고 씁쓰레 미소지어 본다.
<빈정기 프로필> 아호 篤谷(독곡) 경남 고성 출생 한국 방송대 국어 국문학과 계간 부산시단 시 등단 계간 청옥문학 수필 등단 부산문인 협회 새부산 시인 협회 계간 청옥문학협회 수필 분과 위원장 사하문인협회 고샅문학동인 글길문학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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