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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천 동화작가의 ‘아동문학도시 고성’ 동동숲 아동문학 산책-9

동동숲의 시작은 작은 글마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08일
↑↑ 자란만 한 자락을 잡고 있는 연필시 동인들과 작은글마을 글동무들
ⓒ 고성신문
↑↑ 작은글마을 전경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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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월의 고향 경주 옥산 사람 내 친구 권택명 시인의 소싯적 필명은 밝을 명(明)을 풀어 쓴 日月이고, 지훈의 고향 영양에서 태어난 나는 도울 익(翊) 자를 풀어 立羽라 쓰고 립우로 읽었다. 상업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녹색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농협 직원이 부러워 쉽게 들어갈 수 있던 은행을 제치고 ‘농협’을 지원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산골 국민학교 선생’을 꿈꾸며 교육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 소박한 꿈을 7년도 채우지 못하고 50여 명의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고, 그 아이들의 눈물바다를 건너 부산 MBC에 입사했다. 1979년, UN이 정한 ‘세계 어린이 해’에 부산 MBC 사시에 든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창간한 순수 어린이 문예지 월간《어린이문예》를 만들기 위해서다.
방학이 있는 학교와 달리 일반 회사에 월간지를 만든다는 것은 완전 중노동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도 완전 사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한 달에 한 편은 쓰자’는 마음에 4쪽 1장짜리 글신문 <립우글마을>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처음에는 100부 남짓이었는데 독자가 독자를 추천해 500부를 훨씬 넘겼다. ‘글마을’이 어렵다고 해 2호부터는 <작은글마을>로 바꾸었는데 3년이 지난 1985년 9월, 향파 이주홍 선생이 <작은글마을> 제호를 직접 써 보내주셨다. 18호부터 1990년 8월, 62호로 막을 내릴 때까지 사용한 이 제호에다 향파 선생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서 낙관과 두인을 편집해 조각하는 친구 김형득 선생에게 각을 부탁해 작은 것은 글방에, 큰 것은 고성 글집에 걸었다.
보리밭이 좋아서, 진달래꽃이 좋아서, 자운영 꽃이 좋아서 꺼병이 따라 들어온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작은 글마을’은 대숲 아래 따뜻한 촌집이 태풍에 허물어지고, 천만 원 계획했던 집이 삼천만 원에 완성되고, 호적에도 없는 망자가 주인으로 되어있어 법적으로 모호한 집이지만 ‘글마을’ 답게 전국에서 글동무들이 찾아와 오늘의 《열린아동문학》이 발간되고 ‘동시동화나무의 숲’이 태어나게 됐다. 그중에서 1990년대 중반 ‘연필시 동인’을 포함한 우리 글동무들이 ‘작은 글마을’에서 1박하고 고성 자란만 한 자락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우리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향파 선생 음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합천에서 태어나 아동문학, 소설, 번역, 만화, 서예, 그림 등 어느 하나에 기울지 않은 재능을 보여주신 선생은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시면서 생전에 ‘이주홍아동문학상’이 제자들에 의해서 제정되고, 《문예시대》와 《갈숲》 등도 발간한 부산 문화계의 큰 어른이시다. 《어린이문예》가 창간되고 첫 연재물로 선생의 「바다의 사자」가 연재되었는데, 중앙동 회사에서 배차를 받아 온천장 댁까지 원고를 받으러 가면 마감일을 하루 어긴 적도 없고, 스무 장 200자 원고지에 흐트러진 글자 하나 없었다. 어쩌다 잘못 쓴 글자가 있으면 칼끝으로 종이를 얇게 벗겨내고 그 위에 쓴 만년필 글씨가 눈 밝은 사람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향파 선생의 제호로 발간된 18호에는 ‘마음속에 단 꽃등’이 실렸으며, 글 끝에는 ‘하늘 높고 맑은 꽃이 되는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새 마음을 가지며, 향파 이주홍 선생님의 고마움을 깊이깊이 그리고 길이길이 새기고 싶다’고 적혀 있다. 시들어질 무렵 새 힘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매달은 아니지만 8년 동안 60여 편의 동화를 써 『냉이꽃의 추억』, 『큰바위와 산새』, 『꽃씨를 먹은 꽃게』, 『눈사람의 휘파람』, 『마음을 찍는 발자국』을 탄생시키면서 ‘대한민국문학상’을 비롯해 상도 여럿 받아 ‘빛나는 30대’를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30여 년 전 심은 메타세콰이어와 태산목, 은행나무, 목련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작은 글마을’에 봄이면 스무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향기를 뿜는다. 선생님의 향기일까? 2박3일 동안 마시면서 맥주병 빈병을 헤집고 화장실을 다녀오셨다는 선생님, 병석에서 맥주 한 모금만 마시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간청하셨다는 선생님이 문득문득 그립다. <작은글마을> 한 장 한 장마다 차곡차곡 접혀 있는 박홍근, 장수철, 권오순 등 전국의 아동문학가와 산골 초등학교 아이들의 편지까지, 스크랩을 펼치면 그 세월이 참 눈물겹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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