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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로 그린 그림, 3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생명의 숲에서 치유의 숲으로 가는 그 길

정종조(49년생, 고성군 거류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16일
ⓒ 고성신문
# 생명의 숲
숲으로 간다.
나뭇잎들이 시간을 압축하듯 다닥다닥 가지에 붙어 있다. 연두의 날숨에서 초록의 들숨까지 찰나의 순간에도 빛깔이 다르다. 장마의 날씨를 뚫고 햇살이 부채살을 펴면 나뭇잎은 일제히 빛을 반사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윗가지를 향해 기어오르던 개미들은 잠시 쉬는 중일까, 매미 한 마리가 신호를 보내자, 무리는 일제히 울음을 토해낸다.
살아가면서 공짜로 얻는 게 많아서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세상만사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따지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무상이다. 하늘의 맑음, 깊고 푸른 나무냄새, 밤이면 잊지 않고 떠오르는 별빛, 한 달에 스무날은 얼굴 내밀어 주는 달빛, 잊고 있는 동안에도 늘 내 곁에 다가오던 바람결, 고실고실 발밑에 쌓이는 황토, 배낭처럼 등에 얹히던 구름, 땅에 붙어 자라는 이름 없는 풀, 아아~~ 그리고 꽃과 나무들….
숲으로 또 간다.
올해 수국은 해거리를 하고 있다. 작년에 휘도록 피었던 꽃송이들이 올해는 느슨하다. 지난 겨울 추위에 얼어서 기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식물들은 대체로 해거리를 하기 마련이다. 이 해거리가 사람에게도, 아니 모든 동물에게도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풍년이 들면 다시 휴년(休年)이 찾아오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무엇으로 설명하랴.
이것은 미성숙한 인간에게 주는 교훈의 의미가 들어있을 법하다. 넘치게 주면 당연한 듯 받으며 감사한 줄 모르니, 다음 해에 미진하게 내놓아 풍년의 고마움을 스스로 새기게 하는 이치가 아닐까.
水菊이 뱉어내는 물내음이 청량하다. 꽃으로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내뿜는 음양오행의 모든 이치는 물(水)이다. 토양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는 수국의 특징을 살려 파란색 위주의 꽃밭에 하양과 분홍을 적절히 안배하는 스킬을 발휘했다. 수국은 초록색, 분홍색, 보라색, 하늘색 등의 여러 가지 색깔로 꽃을 피우는데 산성토양에서는 푸른색을, 알카리(염기)성 토양에서 붉은 꽃을 피우는 성질이 있다. 꽃에 포함된 안토사이아닌 색소가 알루미늄 이온과 반응하여 꽃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 유년의 숲
나는 고성읍내에서, 3남 7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볐다. 큰누님은 이미 혼인하여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출산을 하셨으니, 큰 조카는 나보다 몇 살 위다. 농사일을 거드는 아재들과 부엌일을 돌보는 어멈과 더러는 그 식솔까지 마당이며 방마다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보며 자랐다.
부친은 엄하셨고, 모친은 말이 없으며 인자하신 편이셨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집안의 막내답게 형과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용히 지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드물게 가죽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지만, 책 보따리를 등이나 허리에 매고 오는 친구들이 내 가방을 부러워하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부친은 조림(造林)사업을 하셨다. 땔감으로 잘려나가 헐벗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야 했고, 그 나무들의 어린 묘목을 키우고 식재하는 사업을 꾸준히 해 나가셨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궁핍하지도 않았다. 어느 해에 편백을 삽목하여 묘목을 많이 키우셨고, 그 일부를 고성군에 희사하여 지금의 갈모봉 편백림의 시발점이 되었다. 나는 이 일이 두고두고 자랑스럽다.
부친은 자식들 열 명을 모두 엄하게 키우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학교엘 갔다. 형의 책을 다음 형이, 누우(누나)의 책을 다음 누우가 물려받았고, 옷도 신발도 그렇게 물려받으며 집안의 질서와 절도를 익혔다.
나는 고성초를 졸업하고 진주중학에 진학하였다가 다시 고성농고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주농대(현,경상대) 임업과를 졸업했다. 특별한 꿈이나 각오보다는 자연스레 정해진 진로였다는 표현이 더 맞다.
대학 다닐 때 ROTC로 병역을 마쳤고 졸업하고서는 철강회사에 취업을 했다.
철판을 자르고 철근을 나르고 계측하는 업무를 하며 매달 받는 월급봉투에 내 젊음을 저당 잡혔다. 그러다가 동종의 무역업을 시작했다. 힘들고 고단했지만 수익이 생길 때마다 고향에 땅을 샀다. 그 땅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었다. 나무들은 해마다 자랐고 잎을 틔웠고 열매를 맺었다. 소나무는 사철 푸른 옷으로, 밤나무는 사철 다른 모습으로 내 숲을 꾸미고 있었다.

# 기다림의 숲
내가 마흔 되던 해에 부친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망설임 없이 무역업을 접었다.
나는 마흔이 될 때까지 내 삶의 주체로 살지 못했다. 모든 결정은 부친이, 형들이, 누나들이 해 주었다. 학교를 결정할 때도, 직장을 선택할 때도, 유사한 무역업을 시작할 때도, 모두 그들이 찬성했을 때에만 내 길이 주어졌다. 그 속에는 안주와 평화는 있었지만 ‘나-정종조’는 없었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우만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주장하면 늘 ‘하지마라!’만 따라왔다. 나 스스로의 선택에 ‘해라!’는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나는 마흔이 되었고, 부친의 부재를 통하여 ‘선택적인 내 삶’이 새로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생각해 둔 밑그림이 있었다. 무역업으로 일본 출장이 잦았을 때 ‘수국축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수 천 수만의 꽃송이들이 피어난 산기슭의 축제는 황홀했고 감동이었다.
나는 산그늘이 내리는 저물녘까지 수국이 흐드러진 그 산을 걷고 또 걸었다. ‘내 조국 대한민국에는 왜 이런 축제가 없을까?’ ‘내 고향에서 이런 축제가 열린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뜨거운 열망이 온 몸에 불덩이처럼 솟구쳐 올랐다.
완벽한 자유를 꿈꾸었다. 클레임을 걸어올까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아침마다 목을 조는 넥타이를 맬 일도, 널뛰는 환율에 따라 심장이 졸아드는 조바심도, 오더를 받기 위해 몇 종류의 견적서를 쓰는 일도, 고객의 갑질을 견디는 설움도 없는 자유로운 땅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흙과 나무가 자라는 나의 숲, 그 숲에 가면 이 모든 것이 한낱 도시의 도깨비불로 날아가 버리리라.
고향에 돌아와 부친께 물려받은 땅과, 내가 마련한 땅에 밑그림을 그렸다. 먼저 진입로를 만들고 벌목을 시작했다. 돌덩이를 들어내고 잡목을 쳐냈다.
모든 일은 내 머리에서 시작되어 내 손으로 집행되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괭이와 삽을 들었고 비닐하우스에 갖가지의 수국을 삽목했다.
어느 정도의 토목공사가 진행 된 뒤에 정원을 조성했고, 알맞게 자란 모종을 노지에 옮겨 심었다. 무럭무럭 잘 자라는 종류도 있었고, 마르거나 병들어 죽는 종류도 있었다. 그들의 생태를 하나하나 연구하면서 나는 수국 속에 내 삶을 심었다.
그러는 과정에 탁상행정과는 마찰이 일어나곤 했다. 현장과 책상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현장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행정의 규제와 법리 해석은 변함없는 철옹성 같았다. 나는 자주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내 숲으로 돌아와 심호흡을 하며 울분을 삼켰다. 그런 날 내 숲은 온유하게 나를 감싸 안았고, 푸른 숨결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기 죽을 내가 아니다. 나에게는 나무와 꽃이 있었다. 해마다 왁자하게 피어나 웃음꽃을 터트리는 꽃을 보며 나는 기다림과 세월의 강물을 흘려보냈다. 한철 피었다가 지는 꽃이지만, 다음 해를 기약하는 약속을 주고 가던 것을. 다음 해에도 또 꽃피우겠다는 약속만 있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림의 쥘부채를 접을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을.

ⓒ 고성신문
# 동행의 숲
2018년, 여름, ‘제1회 만화방초 수국 축제’가 열렸다. 그동안 피우고 지며 세월을 셈하던 수국은 화사함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관람객들은 환호하며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고 개인 sns를 통해 축제를 알렸다. 내가 굳이 알리려 애쓰지 않아도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축제를 소개했다.
‘萬花芳草’는 온갖 꽃들과 향기로운 풀을 뜻한다. 돌아가신 김열규(전,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인문학자께서 농장에 방문, 지어주신 이름이다. 독특한 이름 덕분에 일반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은 듯 하여 고마울 따름이다.
제2회 수국 축제에는 5만 여명의 관람객이 참여했다. 동행의 발걸음마다 수국이 환한 꽃을 피우는 모습을 함께 보며 즐거워했다. 5만 명이라면 고성군의 인구수와 맞먹는 숫자다.
외지인들이 축제에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경제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수국이 필 무렵이면 고성의 옥수수도 일제히 익어간다. 길목마다 옥수수를 쪄내는 농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찰지게 맛난 옥수수를 물고 사람들은 수국 축제장으로 발걸음을 뗀다. 그들이 와서 밥을 먹고, 특산품을 사고,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고, 차에 기름을 넣고, 숙식을 하는 모든 일정은 고성 경제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꽃이 핀 길을 혼자 걸으면 무슨 재민가! 누군가와 함께 걸어야 제 맛이지.’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제대로 된 축제를 기획하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꽃은 화사했다. 다른 어느 해보다 더 많은 꽃송이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여름을 증거했지만, 코로나란 거대 바이러스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올해, 제4회 축제가 열리는 동안은 여러 가지 상황이 나아졌고, 한 달이 눈 깜짝 할 새 지나갔다. 지금은 축제를 정리하며 그동안 관람객들에게 시달리느라 지친 꽃들을 달래고 쉼을 주는 중이다. 물론 꽃이야 보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꽃으로의 가치와 의미가 깊어지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린 꽃들도 피곤하지 않으랴~

ⓒ 고성신문
# 상생의 숲
수국은 여름의 대표 꽃이다. 팔월 땡볕을 받으며 처연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꽃들도 여름을 지키지만, 점점 수국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각지에 ‘수국 축제’가 열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봄에 해운대에 수국꽃밭을 만들어 주었다. 해수욕장의 경관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대표 여름꽃으로 수국이 선정되었고, 전국 각지의 수국을 조사했는데 만화방초의 수국이 최고라는 인정을 받았단다. 우리 농장의 일만으로도 손이 모자란다고 완강히 손사래를 쳤지만, 여러 정황상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삽목부터 시작하여 식재까지 내 손으로 마쳤다.
얼마 전에 해운대구 담당자로부터 수국이 어여쁘게 피었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사진을 전송받았다.
숲에 살던 수국이 바다로 이사를 갔지만, 그 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화사하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바다에도 숲이 있고, 숲에서도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쩌면 바다와 숲은 서로 깊은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게 아닐까?

# 치유의 숲
20여 년 전부터 ‘치유농업’이란 낱말이 생겨났다. 현대인들이 우울증, 스트레스, 정신질환, 불치병 등을 깊이 앓으면서 그 치유를 농업에서 찾는 방법이다. 식물을 기르면서 탄생과 성장의 과정을 직접 느끼며 감정적 만족감을 느끼고, 직접 기른 농작물을 먹으면서 유대감을 얻는 방법이다. 농업뿐만 아니라 숲을 걸으며 운동을 병행하고, 상쾌한 공기와 맑은 바람을 마시며 정신을 정화시키고, 나무를 안거나 등을 기대며 정서적 친밀감과 피톤치드를 흡입하고, 꽃을 보며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젖는 모든 과정에서 자연 치유가 이뤄지는 방법이다.
치료는 현대 의술을 통한 시술이나 수술, 그리고 약물로 상처를 아물리는 방법이라면, 그 이전의 과정이 치유에 해당된다. 숲에서 산책을 하며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음은 물론, 정서적 안정, 자가면역력과 자가치유력을 스스로 발견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꿈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꿈이 있다.’
내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여전히 형과 누나, 지인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나이에 뭔 사업을 자꾸 벌이냐, 이젠 안락하게 살아야지.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멋진 옷을 입고, 편안하게 살면 되는데, 왜 산골짝에서 손톱밑이 새까맣게 일만 하고 사느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는다. 사람들은 평화와 안락과 행복에 대한 개념이 저마다 다름을 왜 모르는 겔까? 누군가는 소파에 앉아 맛난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듣는 것이 행복할 것이지만, 최고급 요리와 와인을 마시며 평화로울테지만, 나는 괭이를 들고 흙을 밟으며 꽃을 돌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꽃들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내겐 최고의 가치며 최고의 기쁨이다.
나는 아직 할 일이 있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흙 위에 조용히 몸을 눕힐 것이므로. 아직 괭이로 그리는 내 그림은 완성되지도 끝나지도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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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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