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길을 묻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7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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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만난 아이가 길을 묻는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그쪽으로 가면 사나운 개가 있고, 저쪽으로 가면 높은 언덕이 있다. 가장 안전하고 편한 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그러고는 길을 나서는 아이 뒷모습을 보며 걱정을 한다.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일까? 어느 길로 가든 목적지는 같은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가장 잘못된 길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닐까? 길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형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 무형의 방안이나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같은 목적지를 두고도 찾아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사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관계없다. 사나운 개가 있는 길을 선택한 아이는 용맹성을 기를 수 있다. 높은 언덕이 있는 길을 가는 아이는 인내심과 튼튼한 체력을 기를 수 있다.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반드시 좋은 길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합리적이고 온순함을 갖출 수 있지만, 대신 쉽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나약한 성품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고민 없이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교 교육과정에는 1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던지기, 윗몸 일으키기, 오래달리기, 턱걸이 등 다양한 종목으로 구성된 체력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청소년들의 기본 체력을 향상하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몇 건의 안전사고를 이유로 들어 1994년 이후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제도 하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후 청소년들의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 아이들 뒤를 따르며 호각과 회초리를 들고 함께 뛰는 체육 교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도리어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하여 심한 운동은 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힘들다 싶으면 그만두고 그늘에서 쉬어라.’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의 체력은 말 그대로 덩치만 큰 ‘약골’로 변했다. 이처럼 교육의 기본 본질을 잃어버린 과목이 체육뿐만 아니다. 음악 시간에는 개천절이나 광복절 등 기념식 노래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국어 시간에는 시 외기나 고전 읽기 대신, 말장난에 가까운 작문 짓기나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책을 읽힌다. 기념식 노래나 고전 읽기는 아이들이 싫어하고, 내용도 구태의연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긴 세상이 바뀌니 교육의 내용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 환경이 달라져도 ‘지‧덕‧체’라는 교육의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기초 체력이 없는 체육 수업이 어떻게 교육이 되며, 지식과 인성 함양을 경시하는 교육을 어떻게 바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교육을 무너뜨리는 데는 교육 주체의 권리 찾기 바람도 한몫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 강점기의 교육 방법을 답습해오던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권리 찾기 운동은 참신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용자보다는 소비자 위주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학부모들의 과다한 개입으로 본질이 훼손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가 한자리에 모여 교육의 지향점을 찾는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점차 학부모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면서 교육과정이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아이들이 안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교육을 받는 길’을 택하는 부정적인 요소가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교육 현장에 당연히 있어야 할 교사의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담임 교사나 수업 교사 선에서 해결되던 작은 사안까지도 매뉴얼을 통해야 해결되는 세상이 되면서 교사들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교육의 본질이 훼손되고 인권의 참뜻이 왜곡된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가라고 가르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안전하고 편한 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왜곡되고 변질된 제도에서 안전하고 쉬운 길만 찾아 걷도록 배운 아이들이 곧 마주칠 험난한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분노 조절 장애인들이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만든 사람은 안전하고 쉬운 길만 가도록 가르친 어른들이 아닐까?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아무나 때리고 찌르는 묻지마 폭행의 괴물은 잘못된 교육 제도가 만든 것이 아닐까? 부모라는 이유로, 교사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길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러기에 당신이 가르쳐 준 길이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길일까 고민해 봐야 한다. 아이의 장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아이에게 어떤 길로 가든 굴곡이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자. 아이가 감당할 수 있다면 때로는 위험한 길을 가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하고,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이 시대를 앞서서 살아온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갈림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길을 묻는다. “얘야, 너는 어느 길로 가고 싶니?”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7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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