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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유기견봉사단체 봉투 회원들과 유기견보호소 행복이네 고길자 씨(앞줄 오른쪽 네 번째)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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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투 회원들이 행복이네에서 청소, 사료급여, 산책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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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 유기동물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 마음이 다 같지는 않구나 싶다. 누군가에게는 두 발 달린 사람과 네발에 꼬리 달린 털복숭이 동물들이 같은 가족인데 누군가에게는 한참 예쁠 때는 과시하며 상전처럼 모시다가 아기 시기가 지나 덜 예뻐지거나 나쁜 습관이 생기거나 병이 생기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서는 서슴없이, 아무런 가책 없이 버려도 되는 ‘애완’동물로 취급된다. 한낱 미물일지라도 세상에 난 어느 생명도 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버려도 되는 생명은 세상에 없다.
제주에는 최근 5년간 연간 적게는 5천여 마리, 많게는 8천여 마리에 이르는 동물들이 버려졌다. 올해 5월까지 제주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유기동물만도 2천 마리를 훌쩍 넘어섰다.
직영 보호소로 예산을 지원받고 수의사 등 인력까지 갖춘 제주동물보호센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지만 그래도 수용가능 한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동물들은 ‘과밀’ 상태로 입양을 기다리다 공고 후에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사람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아야 한다.
말이 안락사다. 동물이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았고, 아파서 손 쓸 수 없이 생을 마감한 것도 아니다. 안락하지 않은데 안락사라 하는 것은 사람 마음 편하자고 붙인 단어다. 버려진 동물들은 사람의 이기심으로 사랑과 가족을 잃고 보호소에서는 희망을 잃고 마지막에는 사람에 의해 생명을 잃는다.
이 안타까운 생명들을 하나라도 더 살려내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유기동물을 줄이는 것은 행정의 관심도 물론 필요하지만 ‘보통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작은 생명들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 버림 받은 작은 생명에게 사랑을 전하는 행복이네
제주시 아라동 귤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면 멍멍 우렁찬 소리들이 ‘나 여기 있개’하는 신호마냥 들린다. 고길자 씨가 꾸리는 유기동물보호소 ‘행복이네’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흰 중형견 한 마리가 낯선 이를 반긴다. 그러다 이내 낡은 공 하나를 주워들고 신나게 공놀이를 시작한다. 고길자 씨가 구좌읍 평대리에서 구조해온 ‘평대’다. 보호소를 찾은 사람이 공을 던져주면 평대는 헤벌쭉 웃으며 공을 받는다. 혼자서도 던지고 받고 잡고 뜯고 흥이 넘친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운드 한 마리는 짐짓 사나운 척 왈왈대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발랑 드러누워 애교를 부린다. 행복이네 아이들은 유달리 표정이 밝다. 개엄마 고길자 씨의 손길에 봉사자들의 마음이 더해져서다.
행복이네에는 100마리가 넘는 동물가족이 고길자 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고길자 씨가 유기견의 대모가 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친구의 49재에 찾은 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개 한 마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절에서 만난 개와 가족이 되던 당시 고길자 씨는 이호테우 해변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었다. 해변을 떠도는 개 한 마리가 자꾸 눈에 밟혀 또 가족으로 맞았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마당이 있는 주택가로 이사했다. 개들은 한 마리가 짖으면 다 같이 짖는다.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여러 마리의 개가 사는 공간에는 냄새가 났다.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 마음이 불편해 아예 인적 없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땅주인이 말 없이 땅을 팔아버려 눈물을 머금고 이사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어느 제약회사 대표가 자신의 땅을 선뜻 내놨다. 필요하다면 금전적 지원도 하겠다고 했다. 울타리를 치고 견사를 나누고 자갈을 깔아 대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고길자 씨는 몸이 좋지 않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이라도 유기견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번개같이 현장을 찾아 개들을 구조한다. 도움을 주는 이들도 늘어났다. 제약회사 대표는 지인들까지 합세해 사료를 후원한다. 행복이네 아이들이 다니는 동물병원은 기백만 원의 병원비가 밀려있어도 독촉 한 번 하지 않는다. 병원비가 밀렸다는 소리가 들리면 어떤 이들은 몰래 가서 병원비를 내주기도 한다. 사료판매점 대표는 후원자들이 행복이네에 사료를 보내달라 하면 한 포라도 직접 배달한다. SNS를 통해 행복이네 소식을 접하는 수많은 이웃들은 사료와 간식, 이불과 수건, 영양제 같은 것들을 보내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대가족을 고길자 씨 혼자서 돌보기는 버겁다. 직영 보호소와는 달리 행정에서 지원받는 것도 없고 인건비는커녕 운영비도 모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봉투’나 ‘제멍냥’ 등 봉사동아리에서 손을 보태준다.
행복이네에서는 주말이면 입양데이도 연다.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행복이네를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보고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 번 방문해 바로 입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최소 3~4회는 방문해 입양희망견과 산책도 하며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입양비용은 없지만 최소 6개월은 아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행복이네에 전해야 한다.
고길자 씨는 “입양문의할 때 품종견을 찾고, 값어치를 먼저 생각하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개를 보내지 못한다. 다시 버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삶에서 늘 반려할 누군가가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다. 왜 동물들에게는 이 반려의 의미가 가볍게 적용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한다.
고씨는 “모든 생명은 쉽게 다룰 존재가 아니다”라면서 “그 귀한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이 아직은 많으니 우리 행복이네 아이들에게도 곧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 유기견 위한 봉사로 세상을 투명하게 만드는 봉투
선한 마음은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서울에서는 수퍼스타인 이효리 씨가 제주에서는 일명 ‘소길댁’으로 불리며 유기견들을 거두고, 그의 생활이 알려지며 유기견에 대한 관심이나 인식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봉사로 세상을 투명하게 만들자’는 생각이 모여 ‘봉투’가 됐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하는 젊은이들이 뭉쳐 유기견 봉사단체 봉투를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방법 중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행동은 ‘지속적인 봉사’라고 생각하여 직접 봉사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선한 마음들이 모여 ‘봉사로 세상을 투명하게 만들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희의 생각이 담긴 봉투가 되었습니다.”
3년 전 김다은 씨와 하수진 씨가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된 봉투는 유기견을 위해 친구들,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하던 봉사활동을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서 박은지, 박제희, 문소현, 김애련 씨까지 여섯 명의 동갑내기가 뜻을 모았다.
봉투는 매달 정기봉사자를 모집해 매주 일요일마다 제주도내 사설 유기견보호소 4곳에 봉사하고 있다. 이들이 찾는 보호소는 버려진 강아지들을 거둬 보호하는 곳으로, 보호소 한 곳당 적게는 30마리 많게는 150마리 정도의 유기견들이 생활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 9시 30분, 봉투가 행복이네를 방문해 봉사하는 날 동행했다. 봉투 회원들은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역복을 입고 장갑을 낀다. 행복이네 마당에 잠시 모인 회원들은 누구는 사료를 챙기고, 누구는 견사 물청소를 하고, 누구는 약을 바르고 등등 역할을 나눈다. 일사불란하다.김다은 씨는 사람에게 버려진 상처로 견사 밖을 나서지 못하던 강아지가 스스로 견사 밖으로 나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가족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 받고 얼마나 세상이 두려웠을까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을 거란 생각에 매주 더 정성을 기울였어요. 몇 주가 지나 평소처럼 산책하는 연습을 하는데 세상에, 그 강아지가 스스로 견사 밖으로 걸어나오는 거예요. 제 진심이 통한 것 같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가끔은 아니, 꽤 자주 동물이 사람보다 더 큰 감동과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김다은 씨는 그래서 더욱 이 유기견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다.
박제희 씨는 유기견쉼터 소장들에게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각 쉼터를 직접 운영하는 소장님들이 유기견의 이름과 사연을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각 쉼터에 있는 소장님들의 열정과 마음이 봉사를 꾸준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이성구 씨는 보호소의 동물들에게 오히려 치유를 받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내려온 지 6년 됐습니다.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동물들을 좋아하니 유기동물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합류했어요. 그런데 보호소 아이들의 신뢰 가득한 눈빛, 애정을 줄수록 점점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치유받는 기분이 듭니다.”
유기견보호소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같다. 동물을 사랑하고 그래서 버림 받는 동물들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행정적 지원과 함께 민간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뒤따라야 한다.
봉투는 지난해 제주청년센터의 ‘청년덕질’사업에 참여해 잡지도 발간했다. 유기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봉투와 함께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정기봉사도 중단되고 보호소에 찾아와주시는 봉사자분들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봉투에게 언제부터 다시 시작하냐는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얼른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봉사자분들과 봉사를 다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젠 저희를 통해서가 아니라 봉사자분들끼리 팀을 만들어 보호소를 찾아주고 계세요. 이러한 모습들이 저희의 활동이 선한 영향력을 끼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저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하나 둘씩 이뤄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는 예산이 지원되고 시설이나 인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개체수 유지를 위한 안락사를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설 보호소가 생겨나지만 개인이 유기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과 힘이 필요하기에 선뜻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고성은 유기동물 ‘보호’가 이제 막 시작됐다. 출발점을 갓 벗어난 지금은 유기동물 보호 그리고 보호시설의 운영방향에 대해 민과 관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